고난과 부활 이야기/이상한 주장들

도마행전의 비밀

정준극 2008. 10. 7. 18:17

[도마행전의 비밀]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역사문서 중에는 각 나라, 각 지방의 역사와 지리는 물론, 왕들에 대한 전설, 성자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도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역사문서에 등장한다. 코란에서는 그리스도를 이싸르(Issar)라고 표현하였고 터키의 아나톨리아 동부에 사는 쿠르드족의 역사문서에는 그리스도가 부활 이후에 터키 동부에 머물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이야기들은 자칫 기독교의 전통 신앙에 혼선을 줄수 있기 때문에 상당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주장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행적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을 계속 내놓아서 흥미를 주고 있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 중동에 가서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그전에는 이집트에 잠시 가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밝혔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후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상당기간 동안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집트(애급)로 다시 가서 잠시 지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 웬 불교냐고 말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일부 학자들이 기독교 시기 이전에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불교도를 교육하기 위한 학교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보면 그다지 놀랄 사항도 아닌듯하다. 석가모니 부처에 의한 불교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약 6백년에 완성되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불교적인 사상이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예수께서 이미 불교가 보급된 애급에서 불교에 대한 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카라바치오의 '의심 많은 도마'. 도마가 예수님의 허리에 있는 창으로 찔린 자국을 확인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행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른바 몇 몇 경외서(Apocrypha)에 적혀 있다고 한다. 경외서는 사도들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 경외서들을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경외서들의 내용중 상당부분이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에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수 기독교 종파들은 경외서들을 이단시 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도마가 썼다는 도마행전(Acts of Thomas)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이후 몇 번씩이나 도마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신약성경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단 한번만 도마를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도마행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도마를 인도에 보내어 전도토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같은 내용은 인도 북부 타지 마할(Taj Mahal) 인근의 화테푸르 시키리(Fatehpur Sikiri)에서 발견된 돌비석에도 적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어떤 역사학자는 도마가 인도를 거쳐 가야 시대에 한국에 와서 김해를 중심으로 전도를 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는 김수로왕의 묘석에 오병이어에 대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교회가 수용을 거부한 경외서에 예수님의 참 생활을 알수 있는 귀중한 내용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김수로왕릉의 건물에 그려진 물고기 두마리(이어)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본적으로 동양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karma: 업)와 윤회(re-incarnation)에 대한 내용은 당시에 일반적인 지식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들 지식을 하늘 나라의 복음으로 설명하는데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자기들이 만든 교리에 얽매어 놓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신학을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서구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자기들만의 전유물이었고 다른 문화의 유입은 한사코 금지했음은 오늘날 누구나 공감하는 사항이다. 서구의 기독교(주로 로마 가톨릭)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도를 방문했었다는 등의 내용이 거론되면 이를 무조건 이단으로 간주하여 핍박을 가했다. 유럽의 교회는 눈먼 신앙으로 지냈고 우물안과 같은 가르침 안에서 지냈다. 이들에게는 다른 종교와의 연계를 생각하는 것 보다는 원죄를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야 헌금을 많이 걷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부활후 행적에 대하여는 경외서인 도마행전과 도마복음(Gospel of Thomas)에 상당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들 경전은 시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4세기경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들 경전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기독교 신학의 주류에서 제외되어 있다. 어떤 경외서에 따르면 도마는 예수님이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지방의 안드라폴리스(Andrapolis)에 안드라파(Andrappa)왕의 귀빈으로 방문하셨다고 적었다고 한다. 파플라고니아는 지금의 아나톨리아 북단에 있었던 소왕국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얼마후 따로 이곳에 도착한 도마를 만났다고 한다. 안드라폴리스에서 도마를 만난 예수님은 도마에게 인도에 가서 가르침(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한다. 그후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터키의 서해안 쪽으로 가셨다고 한다. 고대 실크 로드가 통과했던 이 지방의 어떤 마을에 ‘마리아의 집’이 있음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이곳을 지나가셨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곳으로부터 지중해를 지나 프랑스로 가실수 있었고 프랑스를 통하여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가실수 있었다는 추측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영국에도 가셨다는 주장이 있다. 영국의 어떤 지방에 있는 아주 오래된 참나무는 ‘거룩한 나무’(Hallowed Tree)라고 부르는데 그 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심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국에도 가셨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아리마대의 요셉이 와서 심었다는 나무도 있었으나 몇년전 고사하여 지금은 볼수 없고 사진만 남아 있다.

 

성모가 영면에 들어갈 당시에 도마는 인도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에 옮겨져서 성모의 무덤을 방문하였으며 성모의 승천을 목격한 유일한 제자로 알려졌다. 성모는 도마에게 허리띠(거들)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림은 성모의 무덤에서 성모의 승천을 목격하고 거들을 받는 도마.

 

예수님은 페르시아를 통해 인도까지 가셨다고 설명한바 있다. 예수님을 페르시아를 거쳐 가실 때에 유즈 아사프(Yuz Asaf)라고 불리셨다는 설명도 했다. 유즈 아사프라는 말은 ‘병을 고치는 지도자’라고 말한바 있다. 카쉬미르의 역사문서에 이사(Isa)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실제로 유즈 아사프였다고 한다. 이사(Isa)라는 이름은 코란에서 그리스도를 뜻하는 단어이다. 카쉬미르의 자미-우프-타마리크(Jami-uf-Tamarik)라는 문서에는 유즈 아사프가 마쓸리게(Masslige) 마을을 방문하여 노아의 아들인 셈(Shem)의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예수님(유즈 아사프)이 페르시아의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는 기록이 몇 개 더 있다. 예를 들면 아가 무스타파(Agha Mustafa)가 쓴 Ahwali Shahali-i-paras에도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즈 아사프(예수님)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도 방문하시어 축복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기록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가즈니(Gazni)라는 곳에 있는 평야의 이름이 유즈 아사프인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도마행전에는 도마가 예수님과 함께 주후 47년경 탁실라(Taxila)의 군다포르(Gundafor)왕의 궁전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탁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서쪽의 고대도시로서 간다라 미술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탁실라의 왕과 왕제(王弟)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이사(Issa) 또는 유즈 아사프(Yuz Asaf)로 알려진 예수님이 카쉬미르에서 가르치시고 사셨다는 내용을 적은 고대 역사문서가 20개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Bhavishyat Mahapurana 제9권에도 이사-마시(Issa-Masih: 메시아 예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는 예수님이 인도의 카쉬미르에 오시어 쿠샨(Kushan)조의 샬리바하나(Shalivahana)왕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님은 샬라바하나 왕의 환대로 이곳에서 상당기간을 지내셨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인도에 와서 지내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재의 기독교의 근간에 큰 도전이 되는 것이 아닐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기독교 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바울 신학은 한낱 광신적인 껍질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물라 나디니(Mullah Nadini)는 고파다타(Gopadatta)왕의 시대에 유즈 아사프가 활동했다고 기록하고 유즈 아사프는 일명 이사, 즉 예수라고 불린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인도 북부의 여러 마을에는 성모 마리아가 지내셨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리(Mari)라고 하는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에는 Mai Mari da Asthan(마이 마리 다 아스탄)이라는 오래된 무덤이 있다. ‘마리아의 마지막 안식처’라는 뜻이다. 현지의 무슬림들은 이 무덤이 이사(Issa)의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믿고 경배하고 있다. 이사는 그리스도를 별도로 부르는 명칭이다. 이 무덤은 무슬림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이 일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 무덤은 힌두교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의 힌두교도들은 화장을 하고 재를 뿌렸기 때문에 무덤이 없다.


카쉬미르의 스리나가르 지역 남쪽 40km쯤 되는 곳에 유즈-마르그(Yuz-Marg)라는 초원이 있다. 유즈-마르그라는 말은 유스 아사프의 초원, 즉 예수님의 초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아이슈 무캄(Aish Muqam)이라는 건물이 있다. 지역 사람들은 이 건물을 무척 신성시하고 있다. 아이슈(Aish)는 이사(Issa)에서 비롯된 말이며 무캄(Muqam)은 안식처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아이슈 무캄이라는 건물 안에는 여러 가지 성스러운 유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모세의 지팡이’ 또는 ‘예수님의 지팡이’라는 것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지팡이는 모세가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으며 나중에 예수님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스리나가르 마을 북쪽에는 ‘솔로몬의 보좌’(The Throne of Solomon)라는 사원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사원이 주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인도에 오셨을 당시 이지역의 왕인 고파다타(Gopadatta)가 이 사원을 크게 보수했다고 한다. 보수공사는 페르시아 건축가가 담당했는데 그는 사원의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내용인즉 유즈 아사프는 예언자 예수로서 이스라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도를 방문했다는 역사학자 케르스텐의 주장이 신빙성을 더하는 기록이다.


역사학자 케르스텐은 인도에 오신 예수님이 인도의 남쪽으로도 여행하셨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남쪽이라는 것은 스리랑카를 말한다. 인도대륙과 스리랑카 사이의 좁은 해협의 이름은 ‘아담의 다리’(Adam's Bridge)이다. 오랜 옛날부터의 전설에 의하면 에덴동산을 떠난 아담이 동쪽으로 발길을 향하다가 스리랑카까지 왔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중앙에 있는 캔디 부근의 산정의 명칭도 '아담의 정상'(Adam's Peak)이다. 산정에는 커다란 바위에 아담의 발자국이란 것도 남아 있다. 그건 그렇고 인도의 남쪽을 여행하셨던 예수님은 다시 카쉬미르로 돌아와 향년 약8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갈보리 언덕에서 숨을 거두셨다가 부활하신 후 거의 50년을 더 살으셔서 사역을 했다는 얘기다. 앞에서도 잠시 설명한대로 카쉬미르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은 스리나가르의 옛 마을에 있으며 현지인들은 그 무덤을 로자발(Rozabal)이라고 부른다. 로자발은 라우자 발(Rauza Bal)을 줄인 말로서 ‘예언자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로자발의 입구에는 ‘유즈 아사프가 다른 무슬림 성자와 함께 이곳에 묻혀있다’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다. 무덤 안에 있는 돌판(시체를 얹어 놓았던 돌판 또는 비석)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다. 무슬림 전통이다. 그러나 이 방의 뒤편에 또 다른 작은 방이 있다. 유즈 아사프의 석관이 있었다는 방이다. 이 방의 돌판은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인도의 로자발. 예수의 무덤이 있다는 집이다.

 

로자발을 연구한 하쓰나인(Hassnain)교수는 무덤 안의 돌판(또는 비석)에 유즈 아사프의 두 발의 모습이 새겨져 있음을 눈여겨보았다. 두 발에 모두 상처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입은 상흔이라는 것이다. 이 상흔들은 토리노의 수의에 나타난 상흔과 일치한다. 오른쪽 발 위에 왼쪽 발을 얹고 못을 박은 모습이다. 십자가 처형은 아시아에서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로자발에 있는 족적의 상흔은 중동지역에서부터 유입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흔을 지니신채 인도에 오셔서 지내시다가 승천하셨다는 얘기다. 로자발은 Hazrat Issa Sahib라고도 불린다. 번역하면 ‘주 예수의 무덤’이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이 무덤은 주후 112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