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성묘교회

골고다는 과연 어디인가?

정준극 2008. 10. 8. 07:12

골고다는 과연 어디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와 예언자 마호멧은 물론, 진시황도, 알렉산더 대왕도, 네로 황제도, 이집트의 바로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장소는 어디인가? 현대의 고고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주장에 대한 대체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장소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대단히 성스럽고 중요한 곳이다. 물론 이 위대한 역사적인 사건은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라면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에서 돌아가시고 어디에 묻히셨으며 어디에서 부활하셨는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예수께서 고난 당하신 곳, 무덤에 묻히신 곳, 부활하신 곳을 직접 보고 싶어한다.

 

 골고다 언덕의 해골처럼 보이는 모습.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있다. 앞에 간판에는 해골처럼 보이는 부분을 사진으로 붙여 놓았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

성경에는 이들 장소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을 골고다(Golgotha)라고 한결같이 기록하고 있다. 골고다라는 말은 아람어로 ‘해골’(Skull)이라는 뜻이다. 갈보리(Calvary)는 골고다의 라틴어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골고다가 정확히 어는 곳을 말하는지 설명이 없다. 단순히 예루살렘 성밖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되어 있다. 요한복음 19장 20절을 보면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고 되어 있으며 또한 히브리서 13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고난의 장소가 성문 밖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시 유대법에 따르면 사람을 성내에서 처형하거나 묻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골고다 상상도


나아가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 부근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이 분명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하여 모욕하고 조롱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7장 39-40절에 보면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임이 분명하다. 마가복음 15장 29절에도 거의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한편,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보면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라는 기록이 있다.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이름이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아버지 시몬이 길을 지나가는데 로마병사에게 억지로 끌려나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갔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예수. 영화


로마인들은 중요한 죄인을 처형할 때에 누구나 잘 볼수 있는 장소에서 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한 것도 아마 사람들이 멀리서도 잘 볼수 있는 언덕 위일 것이다. 마가복음 15장 40절에 보면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멀리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잘 볼수 있다면 언덕 위가 분명하다. 한편, 이 기록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멀리 있었으며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요한과 함께 야고보도 비록 멀리이긴 하지만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는 누구인지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십자가상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가’ 십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는 기록이 있다(요한복음 19장 26절). 그때부터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한다(요한복음 19장 27절). 또한 마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멀리 서 있었다고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은 십자가의 곁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요한복음 19장 25절). 후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고 지금의 터키 에베소 부근에서 살았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고든이 발견한 갈보리


예수님을 묻은 무덤에 대하여는 요한복음 19장 41절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십자가의 장소와 무덤이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묘교회


[라이발 장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지낸 장소에 대하여는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곳이 후보지로 제시되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 두곳으로 압축되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장소로서 예루살렘 구시가지 기독교구역에 있는 성묘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성묘교회는 생각보다 건물의 규모가 대단히 크다. 성묘교회는 라틴 갈보리(Latin Calvary)라는 언덕에 있는 오래된 성벽을 감싸 안고 있다. 이곳이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전통적인 장소이다.


또 다른 장소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북쪽에 있는 이른바 고든의 갈보리(Gordon's Calvary)라는 곳이다. 영국군 사령관인 챨스 고든(Charles Gordon)이란 사람이 19세기에 바위투성이의 이 지역을 발굴하고 갈보리가 틀림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고든의 갈보리라고 부른다. 고든의 갈보리 부근에는 조용한 정원(동산)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동산무덤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


동산무덤 안내판


[성밖에 있는 골고다]

최근 고고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고학자들은 2천년전 당시 예루살렘 성벽의 루트를 발견하였다. 이에 따르면 골고다는 옛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다. 그런데 현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냈다는 장소인 성묘교회는 예루살렘 성벽 안에 있다. 그러면 성묘교회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예수님 당시의 성벽이 아니다. 이 성벽은 16세기에 터키의 술탄인 술레이만(Suleiman)이 축조한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이나 문서에 나와 있는 증거로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성벽은 성묘교회의 남쪽으로 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


동산무덤. 안내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곳이라고 적혀 있다.


성묘교회를 예수님의 무덤으로 보는 것은 오랜 전통 때문이다. 성묘교회에 대한 전통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황제이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주장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Helena) 모후가 주후 326년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을 때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이 헬레나 모후에게 갈보리 언덕과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는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 곳이 현재의 성묘교회가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헬레나 모후를 수행하였던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가 그런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당시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이 지적한 장소는 생각 밖의 장소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적한 장소는 주후 135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여 봉기한 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이 예루살렘 성벽 안에 세운 비너스 신전의 바닥아래였기 때문이었다.

 

헬레나가 십자가를 발굴하는 장면 그림

 

헬레나 모후는 사람들을 시켜 비너스 신전을 허물고 그 아래에서 갈보리 언덕의 유적과 예수님 무덤의 흔적을 찾도록 했다. 발굴 결과 몇 개의 오랜 무덤들이 나왔다. 그중에서 하나가 예수님의 무덤인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헬레나 모후는 로마의 비너스 신전 바닥 아래에서 십자가로 사용되었다고 추측되는 나무 토막들과 쇠 못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구나 이 장소가 골고다 언덕이라고 믿게 되었다. 발굴하는 인부들은 갈보리 언덕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도 찾아냈다. 주후 335년에 이곳에 현재의 성묘교회의 전신인 교회가 세워졌다. 예수님 당시의 일도 아니고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4세기의 일인데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 주후 135년 예루살렘에서의 유대인들의 봉기를 분쇄한 하드리안 황제는 칙령을 내려 어떤 유대인도 예루살렘 성안에 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대인을 조상으로 두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안에서 살수 있었다.


성묘교회의 내부


사학자 유세비우스는 초대교회시절부터 하드리안 황제시대까지의 이방인으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사람들의 명단도 확인했다. 그러므로 당시 예루살렘에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를 미루어 보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까지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전제도 가능하다. 이렇듯 초대교회 시절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까지 예루살렘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이 지적한 곳이므로 갈보리 언덕과 예수님의 무덤은 신빙성이 있다고 볼수 있다. 헬레나 모후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비너스 신전 자리가 갈보리 언덕과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장소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헬레나 모후에게 속히 보기 싫은 비너스 신전을 제발 철거할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만일 그 장소가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던 장소가 아니라면 많은 돈을 들여서 발굴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아무튼 오늘날 고든의 갈보리에는 예수님이 십자가게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무덤에 묻히신 곳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수많은 순례자들이 매일 찾아와 기도도 하지만 주로 사진을 찍고 간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성헬레나 기념상. 십자가를 붙들고 있다.

 

[해골이라는 곳]

그러면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다가 비너스 신전이 있던 곳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골고다라는 말은 지형이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비너스 신전이 있던 장소는 해골처럼 생기지 않았다. 해골이라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두 눈이 있던 자리, 코가 있던 자리, 입이 있던 자리가 휑하니 들어간 모습이다. 해적선의 깃발을 생각하면 된다. 19세기에 영국의 고든 장군이 발견한 곳이 바로 해골처럼 생겼다.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아, 이곳이 해골이라는 골고다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면 정말 고든의 갈보리가 골고다 언덕이란 말인가? 고든이 발견한 골고다 언덕이라는 곳은 예루살렘 성 밖이다. 현대의 성묘교회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다 보니 비록 고든의 갈보리가 해골 모습 처럼 생겼지만 어쩐지 골고다 언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태복음 27장 33절을 보면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라는 기록이 있다. ‘해골의 곳’이라고 말했으며 ‘해골 모습을 한 곳’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곳 언덕의 모습이 해골처럼 보인다고 생각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그전의 사람들은 그같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해골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기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고든의 갈보리 언덕이 해골과 같은 모습으로 형성된 것은 골고다 사건이 있은지 거의 2천년이 지난후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상 초기 기독교인들은 골고다라는 이름이 그 지역의 모습이 해골과 같아서 붙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형수들을 많이 처형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처형된 사람들의 해골과 뼈들이 흩어져 있는 곳을 골고다라고 생각했다고 본다.


고든의 갈보리는 예수님 당시에 하나의 독립된 언덕이 아니라 산줄기에 붙어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여 현재의 해골 비슷한 모습은 1세기경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채석장이나 광산으로서 지난 2-3세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바위가 잘려 나간 형태로 보아서 수천년 전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의 전통 기독교인들은 고든의 갈보리 지역을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너무 오래된 동산 무덤]

마태복음 27장 60절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은 사람이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고든의 갈보리 언덕에 있는 동산 무덤이 1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예수님 당시에 이미 새 무덤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고고학자들은 현재 성묘교회 안에 있는 돌 판들이야 말로 1세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돌을 다듬을 때 사용한 연장들을 추정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 동산 무덤의 바위들을 주전 7-8세기의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유대왕국의 후기 열왕(列王)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무덤 안의 구조, 사용한 연장의 형태 등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산무덤은 새 무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사항은?]

고고학자들의 판결은 '고든의 갈보리'에 있는 동산 무덤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성묘교회에 있는 장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장사지낸 무덤이 있는 곳으로 더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100% 장담할수는 없다. 그리고 실은 어느 곳이 진짜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는 않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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