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링공동묘지/슈베르트공원(Friedhof Währing/Währinger Schubertpark)
비엔나의 18구 배링에는 두곳의 공동묘지가 있다. 하나는 배링공동묘지로서 오늘날 슈베르트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슈베르트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슈베르트의 묘지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묘지는 1888년 중앙공동묘지(첸트랄프리드호프)로 이장되었고 배링의 슈베르트 묘지자리에는 슈베르트의 흉상이 있는 기념비만이 있다. 슈베르트의 흉상은 당대의 조각가 요셉 디알러(Joseph Dialer)의 작품이다. 슈베르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배링의 슈베르트공원. 공동묘지였으나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묘지를 중앙공동묘지로 이관한 후에 공원으로 조성했다.
슈베르트공원인 옛 배링공동묘지는 일찍이 1769년 배링교구를 위해 조성된 것이다. 당시에는 공동묘지를 가톨릭 교구별로 조성토록 하였으며 그럴 여우가 없으면 교회 구내에 묘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배링공동묘지에 구내 예배처가 생긴 것은 한참후인 1829년이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묘지가 계속 증가하여 한차례 확장하였으며 중앙공동묘지가 생긴 직후인 1873년부터는 폐쇄하고 더 이상 묘지로서 사용하지 않았다. 묘지를 조성하는 데에도 스타일이 있어서 배링공동묘지는 비더마이어(Biedermeier) 고전주의 양식을 따랐다. 비더마이어 양식은 1차 대전과 2차대전의 중간시기에 유행하던 실질적이며 간편한 건축양식이다. 배링공동묘지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이외에도 극작가인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 배우 겸 극작가인 요한 네스트로이(Johann Nestroy), 화가 요한 밥티스트 람피(Johann Baptist Lampi), 괴테의 손녀딸인 알마 폰 괴테(Alma von Geothe), 궁정배우였던 안토니 아담버거(Antonie Adamberger)등의 묘지가 있다.
슈베르트공원(구 배링공동묘지)에 아직도 간직되어 있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비.
슈베르트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925년이었다. 설계 공모결과 카를 디른후버(Karl Dirnhuber)라는 사람이 선정되었다. 그는 배링공동묘지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한 곳은 공원으로 만들고 또 다른 구역은 담을 쌓아 원래의 공동묘지를 유지토록 했다. 공원에는 정자와 분수를 세우고 여러 시설들을 만들었다. 오늘날 분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옛 묘지에는 오래된 묘비들이 아직도 늘어서 있으며 바로크 양식의 그리스도의 수난 조각상은 고목들 사이에 서 있다. 2003년에 비엔나 시당국은 슈베르트공원의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여러 가지 시설들을 추가하여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슈베르트공원은 2005년에도 한차례 보수하여 재개장하였다. 23구 리징(Liesing)에 슈베르트공원이라는 이름의 장소가 무려 세군데 있다. 인처스도르프(Inzersdorf)와 마우어(Mauer), 그리고 칼크스부르크(Kalksburg)에 각각 슈베르트공원이 있다. 마우어의 슈베르트공원은 보트루바교회(Wotrubakirche)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처스도르프의 슈베르트공원은 푸르키트가쎄(Purkytgasse)에 있다. 슈베르트가 생전에 친구들과 함께 이곳까지 마차를 타고 와서 놀다가 갔기 때문에 슈베르트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만 확실치 않다. 혹자는 이곳의 풍광이 슈베르트의 가곡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슈베르트공원이라고 했다는 설명이지만 그것도 더 확실치 않다.
인처스도르프 슈베르트공원 마우어의 슈베르트공원
배링에 있는 또 하나의 공동묘지는 1784년에 문을 연 유태인공동묘지이다. 비엔나 이스라엘 문화기구(Israelitische Kulturgemeinde Wien)의 멤버들을 위한 공동묘지였다. 배링과 되블링이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현재는 행정구역의 변동으로 19구 되블링에 속하여 있지만 명칭은 계속 배링공동묘지로 불리고 있다. 배링의 유태인공동묘지는 생맑스 공동묘지와 함께 비엔나에 남아 있는 유일한 비더마이어 양식의 공동묘지이다. 배링유태인공동묘지는 1880년대에 문을 닿았다. 히틀러의 제3제국 시대에는 이곳이 유태인공동묘지라는 이유 때문에 크게 파손되었다. 묘비가 파괴되었고 묘지가 파헤쳐지는 비운을 겪었다. 도굴도 성행했다. 유태인은 귀중품을 함께 매장한다는 소문 때문에 도굴꾼들이 이곳에 있는 상당수 유태인 묘지를 파헤치기도 했다. 오늘날 베링유태인공동묘지는 일부분만 들어갈수 있다. 상당 구역이 황폐해 졌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는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이므로 복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어나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슈베르트공원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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