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오궁소고

오궁소고(五宮小考)

정준극 2009. 3. 23. 11:36

오궁소고(五宮小考)


오궁소고라는 말은 서울에 있는 오궁에 대하여 약간 고찰해 본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의 4자성어가 아니라 필자가 붙인 제목이다. 오궁은 조선시대의 다섯 궁궐이다. 사람들에게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섯 궁궐이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면 ‘아, 그거야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그리고 에 또 그 뭐더라? 창경원도 궁전이던가? 그럼 전부 네 개뿐인가?’라며 말끝을 흐린다. 창덕궁의 정식 이름이 비원(秘苑)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비원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덕궁의 후원을 관리하는 부서로서 비원(秘院)을 두었는데 이 말이 나중에 비원(秘苑)이라고 변형되었고 그로부터 비원이 마치 창덕궁의 대명사처럼 되었던 것이다. 창덕궁을 외국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Secret Garden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외국인들은 Secret Garden이라고 하니까 무슨 대단한 비밀이 간직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와서는 두리번거리지만 사실 비밀이라고 말할 정도의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어찌하여 시크릿 가든이라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면 '이곳 창덕궁의 한 쪽에 아직도 조선왕조의 마지막 사람들이 실제로 조금 살고 있는곳이 있어요. 그곳은 일반인들이 들어갈수 없는 곳이기에 출입금지라는 의미에서 비원이라고 부르게 되었지요'라는 설명을 한다. 창경원은 일본 사람들이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놓고 창경원(昌慶苑)이라고 부른 것이지 정식 명칭은 창경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희궁(慶熙宮)이 있다. 규모가 작아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고 평일 점심 시간에는 인근 공무원 나리들의 산책장소이지만 5궁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서울의 궁궐5형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다. 이제 궁궐5형제의 나이를 살펴보자.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이로 보면 경복-창덕-창경-덕수-경희의 순서이다. 규모로 보면 창덕-경복-창경-덕수-경희의 순서이다. 경희궁은 이래저래 막내이다.

 

덕수궁 대한문앞에서의 수위군 교대식


- 경복궁은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세웠다. 송악(개성)으로부터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며 경복궁을 건축했다. 임란이후 폐허처럼 되어 있었는데 고종때 대원군이 원납전을 거두어 복원했다. 그후 일제시대에 일본놈들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고 다시 해방후 김일성 도당이 일으킨 6-25전쟁 때 참화를 입어 말이 아니었으나 최근 점차 복원하고 있다. 그리고 경복궁에 연결하여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어서 오궁 중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 창덕궁은 태종이 1405년에 건축했다.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었다. ‘만일 경복궁에 불이 난다든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에서 예비로 건축한 것이 창덕궁이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으로서는 또 다시 정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 창경궁은 태종이 1418년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자기가 기거할 궁전으로 지은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창경원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일제는 창경궁을 변형하여 동물원도 만들고 놀이터도 만들었다.

- 덕수궁은 임진왜란 이후인 1593년, 선조가 서울의 궁궐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 기거할 곳이 없자 월산대군의 저택을 확대개조하여 궁궐로 삼은 것이다. 처음에는 경운궁이라고 불렀다가 1907년 고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순종은 고종이 오래 사시라는 뜻에서 덕수궁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덕수궁의 정문도 인화문-대안문이었는데 근세에 대한문으로 변경되었다. 실상 덕수궁의 관할지역은 상당히 넓어서 오늘날 조선웨스틴호텔에 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야금야금 줄어 들었다.  

- 경희궁은 광해군시절인 1620년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경덕궁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영조 시대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의 시호가 경덕(敬德)이어서 발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바꾸었다. 일제가 작정하고 폐쇄코자 했던 궁궐이다.

 

경복궁 흥예문 안쪽에서의 위군

 

이제 각 궁궐에 대한 사정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혹시 자녀들이 서울의 궁궐에 대하여 물어볼 때 그럴듯하게 대답해 줄수 있으며 외국인 손님이 와서 함께 관광할 때에도 문화백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5궁에 대하여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궁궐이든지 정문은 모두 화(化)자 돌림이다. 경복궁은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은 홍화문(弘化門), 덕수궁은 원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화재로 잿더미가 되자 동쪽에 있던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꾸어 정문으로 삼았다. 경희궁의 정문은 흥화문(興化門)이다. 각 궁궐에는 정전(正殿)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루던 집이다. 모두 정(政)자 돌림이다. 광화문은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은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은 명정전(明政殿), 경희궁은 숭정전(崇政殿)이다. 덕수궁만이 정전의 명칭이 중화전(中和殿)이다. 서울에는 이상의 5궁 이외에도 일부 왕비 및 후궁들이 퇴직후 기거하던 칠궁(七宮)이 있으며 또한 종로구 운니동에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雲峴宮), 경복궁 안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건청궁(乾淸宮)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식 궁궐이 아니다. 궐이라고 하면 적어도 4대문이 있고 금천이 있으며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할 것이다. 궁궐은 아니지만 궁궐보다도 더 위세가 있는 곳이 있다. 종묘(宗廟)이다.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들을 모신 사당이다.

경복궁의 흥예문 

 

경희궁의 흥화문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명정문


매주 월요일에는 창덕궁과 덕수궁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는 경복궁과 창경궁이 쉰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은 월요일에 쉬며 국립민속박물관은 경복궁과 함께 화요일에 문을 닫는다. 따라서 요일을 잘 보고 궁궐들을 방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경일이나 공휴일에는 모두 개방한다. 창덕궁만은 안내요원을 따라 다녀야 관람이 가능하다. 한국어 안내는 하루에 대략 15회 있다. 일어는 4-5회, 영어는 3회, 중국어는 2회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안내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이다. 영어안내는 오전11시 30분, 오후 1시 30분과 3시 30분이다. 외국인과 함께 갈 때에는 시간을 잘 맞추어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창덕궁의 경우, 평일에는 안내를 받아야 하지만 4-11월의 매주 목요일에는 개인적으로 관람할수 있다. 안내를 따르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람하는 자유관람시에는 입장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 평일에는 3천원이지만 목요일 자유관람의 경우에는 무려 1만 5천원이다. 종묘도 매주 화요일에는 문을 닫는다.  

 

고궁에서는 구석구석에서 아름다움을 찾을수 있다. 경복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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