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Haydn(미하엘 하이든)
요셉 하이든의 동생
동생 미하엘 하이든 형 프란츠 요셉 하이든
요한 미하엘 하이든(1737-1806)은 프란츠 요셉 하이든의 동생으로서 역시 작곡가였다. 미하엘은 헝가리 국경지대에 가까운 로라우(Rohrau)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티아스 하이든(Mathias Haydn)은 마차바퀴 수선공이었지만 마을에서는 시장과 같은 역할(Marktrichter)을했다. 미하엘의 어머니인 마리아 콜러(Maria Koller)는 하라흐(Harrach)백작궁전의 요리사였다. 하라흐백작은 로라우 마을의 영주와 같은 귀족이었다. 하이든의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쪽도 악보를 읽을줄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 마티아스는 민속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청년시절에 하프를 배웠으며 아이들에게는 노래를 베우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형인 요셉 하이든은 소년 소프라노로서 비엔나의 슈테판성당 합창단에 들어갈수 있었다. 실제로 형인 요셉 하이든은 소년시절에 노래를 대단히 잘 불렀다.
당시 슈테판성당의 음악감독인 칼 게오르그 로이터(Carl Georg Reutter)는 하이든의 아버지에게 ‘나는 요셉의 재능에 대하여 정말로 감동했다. 그와 같은 아들을 둔 당신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만일 당신에게 아들이 열두명이 있다면 모두 재능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하여 열두명 아이들을 모두 보살펴 주겠다.’고 말했다. 이말에 감격한 아버지는 정말로 5년후에 요셉의 동생인 미하엘을 슈테판성당의 로이터 음악감독에게 보냈고 그 후에는 또 다른 동생인 요한(Johann)을 보냈다. 요셉 하이든의 두 동생들은 모두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요셉은 나중에 동생들의 음악교육을 책임 맡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동생 미하엘은 형 요셉보다 더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노래를 더 잘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이터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요셉에게 찬사를 보냈다가 나중에는 미하엘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미하엘은 슈테판성당의 합창학교를 떠나자마자 그로쓰봐르다인(Grosswardein) 성당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1762년에는 잘스부르크에 가서 활동하게 되었다. 미하엘은 잘츠부르크에서 무려 43년을 보내며 360편의 교회음악과 기악곡을 작곡했다. 미하엘 하이든은 성악가인 마리아 막달레나 리프(Maria Magdalena Lipp)와 결혼했다. 미하엘은 레오폴드인지 볼프강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모차르트와 잘 알고 지냈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식구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리프가 너무 잘난 체를 한다고 해서 싫어했다. 미하엘은 술을 좋아했다. 하물며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미하엘의 술버릇을 탓하는 글을 적어놓기까지 했다. 미하엘은 칼 마리아 폰 베버, 안톤 디아벨리(Anton Diabelli)와도 친분을 가지고 지냈다. 요셉 하이든은 동생 미하엘의 재능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 특히 종교음악에 있어서는 자기보다 훌륭하다고 얘기했다. 미하엘도 형 요셉을 매우 존경했다. 미하엘은 마리아 막달레나 리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을 형을 생각하여 요세파(Josepha)라고 지었다. 미하엘은 향년 68세로 1806년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 중에서 진혼곡 C 단조는 가장 걸작이라고 알려졌다. Requiem pro defuncto Archiepiscopo Sigismundo(지그문트 대주교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곡은 나중에 모차르트의 진혼곡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미하엘의 작품이 모차르트에게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는 K 141에 미하엘의 Te Deum을 인용하였으며 G장조 사중주곡 (K 387)의 피날레에는 미하엘의 교향곡 23번의 피날레를 인용했다고 한다. 미하엘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디플롬(Diplom) 학위를 받았다. 이를 기념하여 스톡홀름대학교에 헌정한 곡이 Missa Hispanica(스페인 미사)이다. 이 역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하엘의 작품에 대하여는 오늘날까지도 몇가지가 혼란을 주고 있다. 요셉 하이든의 사후에 작성된 작품목록에 보면 간혹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 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하이든의 작품을 정리하던 사람이 미하엘이라고 분명히 적혀있지 않고 다만 하이든이라는 이름으로 된 작품이 있으면 생각 없이 요셉 하이든의 리스트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나중에는 정리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잘 살펴보면 그런 요소가 잇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37번으로 K 444로 분류된 작품은 최근 미하엘 하이든의 교향곡 25번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왜 이런 혼선이 일어났는가하면 모차르트의 교향곡 37번 제1악장의 첫 페이지에 모차르트의 서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항이지만 모차르트는 1악장만 작곡했고 나머지 악장은 미하엘 하이든이 작곡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밝혀진 1907년 이후로는 콘서트에서 모차르트의 교향곡 37번이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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