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영화 속의 막달라 마리아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정준극 2009. 9. 26. 22:14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서울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에 마틴 스코세스(Martin Scorsese)가 감독한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1953년도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도무지 신앙적이지 못한 이상한 내용, 특히 외설적인 내용 때문에 수많은 비난을 받은 영화이다. 예수 역할은 윌렘 다포(Willem Dafoe)가 맡았고 바라바 허세이(Barbara Hershey)가 막달라 마리아를, 하베이 키틀(Harvey Keitel)이 가롯 유다를,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본디오 빌라도를, 해리 딘 스탠튼(Harry Dean Stanton)이 바울을 맡았다. 촬영은 전적으로 모로코에서 수행되었다.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제로 삼았다. 가장 중심 되는 주제는 예수가 비록 죄악에서 자유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모든 유혹을 다 받는 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포, 의심, 절망, 반항,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청년 예수는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육욕적인 유혹에 빠져 든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가 신성한 예수에 대하여 그런 내용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상 영화의 내용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과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과 맞지 않는 점이 많이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영화제작자는 아무래도 후환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양해를 구했다.

 

예수와 제자들

 

[줄거리]

나사렛 예수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태의 목수이다. 그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활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계획하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과연 내가 누구인가라는 갈등에 싸인다. 예수의 이같은 번뇌와 갈등은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목수 일이나 하며 세월을 허송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더구나 예수는 목수로서 유태 혁명주의자들을 처형하는 십자가를 만들어야 했다. 이것이 자신을 더욱 증오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동족을 처형하는 십자가를 만드는 일이 나라와 백성들을 반역하는 행위로 보여 지기 때문이었다.

 

원작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가롯 유다(Judas Iscariot)는 열심당원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압정에 항거하여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다는 목수로서 십자가를 만드는 등 로마에 협조하는 예수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고 나사렛으로 보내진다. 그때 이미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유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예수가 메시아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한다. 유다는 예수에게 만일 메시아라면 유태인들의 혁명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는 유다에게 자기가 전할 메시지는 사랑이며 이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예수가 메시아로서 백성들을 이끌고 로마의 압정에 항거할 것으로 믿어서 일단 예수의 사역에 함께 참여키로 한다. 그러면서 예수에게 만일 혁명에 배반되는 일을 하면 서슴없이 죽이겠다고까지 말한다. 예수에게는 말 못한 고민이 하나 있다. 젊은이로서 예수는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와 관계를 가진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얘기는 결코 남들에게 말할수 없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예수는 세상을 떠나서 은둔과 고행의 생활을 할 생각이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 숨어서 지내지 말고 함께 지내자고 계속 간청하는 바람에 결심을 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얼마후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간음한 여자이며 더구나 안식일에도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 하여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려 한다. 이때 예수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쳐라’고 설득하여 위기에 처한 막달라 마리아를 구해준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예수에게 사탄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와서 인간으로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설득한다. 

 

이윽고 예수는 제자들을 택하여 함께 전도여행을 다닌다. 그렇지만 아직도 메시아로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예수는 세례 요한을 만난다. 예수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자 한다. 세례 요한은 망설인다. 세례는 죄를 회개한 사람에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베푸는 것인데 예수는 죄 없이 태어난 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예수는 세례를 받아 원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마침내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각자 자기들의 생각에 대하여 토론을 벌인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기 전에 먼저 로마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예수는 사랑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두 사람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를 알고자 광야로 나간다. 예수는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세 차례의 유혹을 받는다. 그때마다 예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다. 그런 후에 예수는 자기가 도끼를 들어 어떤 사과나무를 찍어내는 환상을 본다. 예수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자기를 따르라고 말한다. 이윽고 예수는 메시아라는 확신이 서자 용기를 가지고 여러 징표를 보이고 기적을 행한다. 예수는 소경을 눈 뜨게 하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며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다. 백성들이 예수에 대하여 열광한다.

 

 막달라 마리아역을 맡은 바바라 허쉐이. 1948년 할리우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문도박사였다. 가운데는 예수님 역할의 윌렘 다포, 오른쪽은 가롯 유다역의 하베이 키틀

 

예수는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바꾸는 사람들을 보고 분노하여 이들을 성전에서 쫓아낸다. 예수는 심지어 민병대를 동원하여 성전을 무력으로 장악하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던중 예수는 성전 계단을 올라가다가 자기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폭력은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깊이 깨닫는다. 예수는 군중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중지시킨다. 예수는 메시아로서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속(救贖)하기 위해 자기가 대신 죽어야 한다고 결심한다. 예수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며 든든한 제자인 유다에게 자기를 잡아 헤롯 궁의 병사들에게 넘기라고 요청한다. 유다는 그렇게 할수 없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방법만이 군중들을 한데 묶어 로마에 대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헤롯 궁의 병사들에게 넘기기로 한다.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가 그린 '베로니카의 베일'. 수건에 예수의 얼굴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가진다. 최후의 만찬이 끝난후 예수는 기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다. 사실은 잡혀가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것이다. 과연 이때 유다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를 체포하여 헤롯 궁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메시아라고 믿었던 예수가 병사들에게 끌려가게 되자 분노한 베드로가 칼을 빼어 말쿠스(Malchus)의 귀를 베지만 예수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면서 말쿠스의 귀를 다시 붙여 준다. 예수는 빌라도의 앞에 선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평화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채찍질을 당하며 가시면류관을 쓴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끌려가 못박힌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에 어떤 소녀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그와 얘기를 나눈다. 소녀는 천사였다. 천사는 예수에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며 메시아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며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그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해 준다. 천사는 예수가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은근히 주장한다. 천사는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결혼식에 나가는 막달라 마리아

 

천사는 예수를 막달라 마리아에게 데리고 간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는 결혼식을 올리고 서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태어난다. 두 사람은 북유럽의 어느 숲속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뜻하지 아니하게 죽는다. 슬픔을 참지 못하여 소리 내어 우는 예수에게 천사가 다시 나타나 모든 여인이 마리아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그리하여 예수는 나사로의 동생이며 마리아의 언니인 마르다와 다시 결혼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날 예수는 메시아에 대하여 설교하는 사도 바울을 우연히 만난다. 예수는 바울에게 자기가 바로 메시아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바울은 사울일 때에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를 사탄이라고 여겨 칼로 베어 죽인 일이 있다. 바울은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예수를 거부한다.

 

이제 예수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예수는 폐허가 된 어떤 도시에 있다. 이 세상을 의미한다. 옛날에 제자로 삼았던 사람들이 죽음을 앞둔 예수를 찾아온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유다는 예수에게 배신자라고 소리친다. 메시아로서 세상을 구원해야할 사람이 여인에게 빠져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면서 비난한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막달라 마리아에게 안내한 천사(소녀)는 실은 사탄으로 밝혀진다. 사탄은 예수를 인간으로서 안락한 생활을 하도록 유혹하여 성공한 것이다. 홀연히 예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저 멀리 예루살렘은 유태인들의 반란으로 불길에 휩싸여 있다. 예수는 자기가 전에 십자가에 매달렸던 골고다로 가서 하나님께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는 즉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도망한 일, 결혼하여 가족을 가진 일, 예루살렘 성전이 불길에 휩싸이는 재난은 한낱 환상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십자가의 뒤에 남겨두어야 할 꿈이었다. 예수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다 이루었도다! 다 이루었도다!”라고 울부짖는다.

 

그리스도를 기둥에 묶고 채찍질을 함.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잔혹하게 핍박한다.

 

[논란]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기독교계에서는 영화의 내용이 성경에도 없는 허황된 것이라고 하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영화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는 복음서에 전적으로 근거한 것이 아니며 픽션’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물결은 도처에서 솟아 올랐다. 가장 문제가 되는 장면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꼬임에 빠져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결혼한 두 사람이 짙은 베드신을 연출한 것은 특히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장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제작자는 그처럼 농도 짙은 베드신의 배경을 ‘사탄이 그리스도에게 일반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도록 유혹하였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여 천사처럼 아름답고 순진한 아이로 변장한 사탄이 예수에게 ‘당신은 실은 메시아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주고 예수가 갈망했던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런 식으로 낯 뜨겁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항의였다. 아무튼 사탄의 유혹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예수이지만 이번에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십자가에서 내려와 여자 중에서도 하필이면 창녀인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성경에도 없는 황당한 줄거리로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검소하나마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예수

 

예수가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할 때 쯤에 예수에게 가장 헌신적이었던 제자 가롯 유다는 예수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일깨워준다. 즉, 가롯 유다는 오히려 예수를 배반자로 낙인찍은 것이다. 가롯 유다의 외침을 들은 예수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자기의 사명인 것을 깨닫는다. 돌이켜보아 예수는 인간으로서 살도록 유혹을 받았으며 이제 인간으로서 평화스런 죽음을 마지하게 되지만 가롯 유다의 비난이 동기가 되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는 유태인들의 반란으로 불타고 있는 예루살렘 거리로 기어나가 가까스로 골고다로 다시 향한다. 예수는 ‘제발 그러지 말고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죽음을 마지하라’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며 하나님에게 제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예수는 바로 예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게 된다. 예수는 사탄의 유혹에서 탈피했음을 알고 ‘다 이루었도다’라고 말하며 숨을 거둔다. 이런 내용들은 전통적인 성경의 내용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교회가 이 영화의 허구성을 탓하는 장면은 이밖에도 많다. 예를 들면 예수가 로마을 위해 십자가를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 다른 남자와 입맞춤을 했다는 것(동성연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지 않고 고통을 받았다는 것, 그가 지은 수많은 죄를 탄식했다는 것, 성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주여’ 또는 ‘당신’이라고 존칭으로 부르지 않고 제호바(Jehovah)라고 함부로 불렀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가 죽자 언니인 마르다와 재혼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항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전에 각 종교단체의 항의가 빗발쳤다. 스튜디오는 항의의 물결로 폐쇄될 정도였다. 이런 항의는 과거에도 없었던 거센 것이었다. 1988년 10월 22일 프랑스의 기독교근본주의 단체 회원들은 파리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던 생미셀(Saint Michel)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화염병을 던져 13명에게 화상을 입었다. 1989년, 애리조나 주의 알버커크에 있는 어떤 고등학교 선생은 이 영화를 역사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후 분노한 학부모들과 지방 기독교방송국이 합세하여 그 선생을 심하게 공격하였다. 멕시코와 칠레에서는 수년 동안 이 영화의 상영이 금지되었다. 필리핀,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상영금지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서도 기독교계가 이 영화에 대하여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을 높이 평가했다. 교회가 금기하고 있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 즉 인성(人性)을 강조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핑게였다.

 

2004년에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고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했다고 하면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죽음의 방법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리고 가롯 유다와 본디오 빌라도의 인간적인 고뇌에 대하여도 많은 비중을 둔 작품이었다.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