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방랑하는 유태인

아리마대의 요셉?

정준극 2009. 11. 21. 16:39

'방랑하는 유태인'은 아리마대의 요셉?

 

십자가의 길. 라파엘 작품

 

또 다른 전설이 있다. 1228년에 웬도버의 로저(Roger of Wendover)라는 사람이 쓴 Flores Historiarum(영국 역사를 기록한 '역사의 꽃'이라는 타이틀의 저서)에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전설이 나온다. 얘기의 발단은 이러하다. 어느 때 아르메니아의 어떤 대주교가 영국을 방문하였다. 영국 성알반스수도원(St Albans Abbey)에 있는 어떤 수도승이 마침 그 수도원을 방문한 아르메니아 대주교에게 ‘저, 죄송한데요, 혹시 아리마대 요셉 선생께서는 잘 계시는지요?’라며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 와서 영국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한 사도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무척 존경을 받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런 아리마대 요셉은 영국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아르메니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아르메니아에서 대주교가 왔으므로 안부를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마대 요셉이 영국에 왔다가 다시 아르메니아로 돌아갔다고 한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르메니아에서 온 대주교는 ‘아, 아리마대 요셉 말씀이지요? 그 분은 아직도 아르메니아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대주교는 아르메니아에서 카르타필로(Carthaphilus)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아리마대 요셉일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고 한다. 대주교의 설명에 따르면 카르타필로는 원래 신발장이였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에 와서도 신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에 너무 힘들어서 길바닥에 쓰러지시자 무슨 억한 심정이 들어선지 예수에게 가까이 가서 예수를 손으로 때리고 ‘어서 가지 못해? 빨리 가란 말이야! 왜 빈둥거리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카르타필로에게 ‘나는 일어서서 쉬려니와 너는 마지막 날까지 걸어야 할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 대주교는 이어 카르타필로가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뜻한바 있어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예수의 말씀대로 이곳저곳 정처없이 방랑하고 지낸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조롱했던 카르타필로라는 사람이 바로 ‘방랑하는 유태인’이라는 것이었다.

 

성알반스수도원 입구. 아르메니아 대주교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현재 아르메니아에서 아리마대 요셉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려 1천여년이 지났는데....하기야 아담도 거의 1천년을 살았으니...

 

매튜 패리스(Matthew Paris)라는 사람은 로저의 이야기에 한 술 더 떠서 아르메니아에서 다른 어떤 사람이 1252년에 영국의 성알반스수도원을 방문하였는데 전에 왔던 대주교와 똑 같은 말을 했으며 아르메니아의 교회에서는 신발장이가 ‘방랑하는 유태인’이라는 얘기를 사실로 믿고 있다는 내용을 그의 역사서에 기록하였다. 13세기 이탈리아의 귀도 보나티(Guido Bonatti)라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포를리(Forli)에 ‘방랑하는 유태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만났다는 얘기를 썼다. 비엔나의 교회는 ‘방랑하는 유태인’을 비엔나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저주를 받아 예수께서 재림할 때까지 세상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방랑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은 유태 민족이 고국을 떠나 정처 없이 방랑하고 있는 현실과 부합된다. 그런 의미에서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전설은 사실로 들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 총리를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있다. 유태인들은 아하수에로 왕이 어리석어서 유태인들을 모두 죽일뻔 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을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렘브란트 작품.

 

‘방랑하는 유태인’에게는 두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하나는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영원히 방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어에서는 ‘방랑하는 유태인’을 Der Ewige Jude(불멸의 유태인)이라고 부른다. 라틴어 계통의 국가에서는 Le Jiuf Errant(방랑하는 유태인)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에서는 Juan Espera a Dios(하나님을 기다리는 요한)이라고 하지만 El Judio Errant(방랑하는 유태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면 우선 ‘방랑하는 유태인’의 이름에 대한 전설부터 알아보자. 17세기에는 어쩐 일인지 ‘방랑하는 유태인’의 이름이 아하스버(Ahasver)라고 알려졌다. 구약성경 에스더에 나오는 파사(페르시아)왕 아하수에로(Ahasuero)의 변형이다. 우리가 보통 세르세(Xerse)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유태인이 아니지만 그의 이름은 중세 유태인 사회에서 미련한자, 어리석은 자를 일컫는 대명사였다. 총리대신 하만의 말만 듣고 하마트면 파사제국내에 있는 유태인들을 모두 죽일뻔 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이름들도 나왔다. 마타티아스 부타데우스(Matathias Buttadeus)라는 어려운 이름도 나왔고 이삭 라케뎀(Isaac Laquedem)이라는 이름도 나왔다. 이삭 라케뎀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전설에 나오는 잘 알려진 이름으로 심지어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선 에스더. 니콜라 푸쌩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