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유태인/방랑하는 유태인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

정준극 2009. 11. 21. 16:41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등장]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전설은 실로 문학의 여러 장르에서 소재가 되었다. 조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한 부분인 ‘용서하는 사람의 이야기’(The Pardoner's Tale)에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가 비쳐있다. 초서는 ‘방랑하는 유태인’을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로 그렸다. 상당히 늙은 사람이지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여 마침내 다른 사람의 젊음과 자기의 나이를 바꾸려 했던 인물로 그렸다. 또한 그 노인은 세 사람의 형편없는 인간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쳤는데 제자들은 나중에 이 노인이 예수를 조롱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오히려 노인을 구박했다는 것이다.

 

초서 '용서하는 자의 이야기'(Pardoner's Tale) 삽화. 윌리엄 블레이크 작품.

 

17세기에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전설은 독일에서 대인기를 끌었다. 팸플릿으로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팸플릿의 제목은 Kurtze Beschreibung und Erzählung von einem Juden mit Namen Ahasverus(아하스베로라는 이름의 유태인에 대한 짧은 이야기)였다. ‘방랑하는 유태인’의 이름을 아예 아하스베로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50여년전 어떤 주교가 함부르크 교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으며 게다가 무언가 계속 후회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전설상의 ‘방랑하는 유태인’이라는 것이었다. 얘기의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그 주교는 슐레스비히(Schleswig)의 주교로서 이름은 파울루수 폰 아이젠(Paulus von Eisen)이라고 했다. 아하스베로에 대한 이야기는 급속도로 퍼져서 1602년에는 독일에서 제8판까지 인쇄될 정도였으며 이어 네덜란드어와 플레미시어로도 번역되었고 나중에는 프랑스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1625년에는 영국에서 비유서로서 발간되었다. 팸플릿은 덴마크어와 스웨덴어로도 번역되었다. 하기야 당시에는 핸드폰이나 MP3도 없어서 무료하던 판에 네 장짜리 팸플릿이 나오자 너도나도 읽어보았던 것 같다. 독일에서는 한술 더 떠서 당시 유명한 순회설교가인 위르겐(Jürgen)이라는 사람이 바로 ‘방랑하는 유태인’이므로 그분의 설교를 들어보라고 권면하는 일까지 있었다.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 왕비를 표현하기 위해 찍은 사진. 영국의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사진. 구약성서 에스더서에 나오는 파사제국의 아사수에로왕(크세르크세스)을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설정한 작품도 있다.

 

독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방랑하는 유태인’을 소재로 삼았던 시인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알로이스 슈라이버(Aloys Schreiber),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율리우스 모젠(Julius Mosen)등이었다. 소설로는 프란츠 호른(Franz Horn: 1818)의 작품이 대표적이며 비극으로서는 클링게만(Klingemann: 1827)의 ‘아하수에로’ 등이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의 저서인 ‘음악에서의 유태주의’(Das Judentum in der Musik)에서 클링게만의 ‘아하수에로’를 인용하였다. 그보다도 바그너의 오페라 ‘방랑하는 화란인’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분명히 전설적인 방랑하는 유태인을 거울 삼아서 쓴 것이라고 할수 있다. 한편,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인 파르지팔(Parsifal)에 나오는 쿤드리(Kundry)라는 여인은 ‘방랑하는 유태인’의 여자 버전이라고 볼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쿤드리는 천년 전에 헤로디아스였다고 한다.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했으며 세례 요한을 죽인 장본인인 헤로디아스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할 때에 예수를 보고 조소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헤로디아스는 예수를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히 방랑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르지팔에서 쿤드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랑하는 유태인'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지나치고 있는 삽화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로베르트 하멜링(Robert Hamerling: 1830-1889)은 그의 소설 ‘로마의 아하스베르’(Ahasver in Rom: 1866 비엔나)에서 폭군 네로를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설정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파트인 ‘그림자’(The Shadow)에서 자라투스트라의 그림자를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묘사했다. 독일의 유태계 작가인 슈테판 하임(Stephan Heym: 1913-2001)은 그의 소설 '아하스베르'(Ahasver: 영어 제목은 The Wandering Jew)에서 고대의 아하스베르와 루시퍼를 분단 이후 동독의 맑스주의와 비교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요셉 로트(Joseph Roth: 1894-1939)가 쓴 ‘방랑하는 유태인’(Juden auf Wanderschaft: 1927)은 이 소재를 사용한 최고의 작품으로 손 꼽히고 있다.

 

요셉 로트의 '방랑하는 유태인' 표지

 

영국에서는 앤드류 프랭클린(Andrew Franklin)이 1797년에 쓴 드라마 ‘방랑하는 유태인’(The Wandering Jew) 또는 ‘사랑의 가장무도회’(Live's Masquerade)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이전에는 토마스 퍼시(Thomas Percy)의 서정시 ‘성자의 유물’(Reliques)에 ‘방랑하는 유태인’의 얘기가 나오면 이 서정시를 프란시스 차일드(Francis Child)가 ‘영국 및 스코틀랜드 발라드’(English and Sctoch Ballads)로 재편하여 발간하였다. 시인 셀리(Shelley)는 ‘마브여왕’(Queen Mab)에서 아하수베로를 소개하였으며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사르토스 레사르투스(Sartos Resartus: 1834)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영웅인 디오제네스 토이펠스드뢰크(Diogenes Teufelsfroeckh)를 ‘방랑하는 유태인’에 비유하였다. 류 월레이스(Lew Wallace)의 소설 ‘인도의 왕자’(The Prince of India)에서는 주인공인 ‘방랑하는 유태인’이 세월에 따라 모험을 했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에벌린 워(Everlyn Waugh)의 ‘헬레나’(Helena)에서는 주인공 헬레나의 꿈에 ‘방랑하는 유태인’이 나타나 헬레나가 평생을 추구하는 십자가를 어떻게 찾을수 있을지를 일러준다.

 

'마브여왕'(Queen Maab)과 요정들. 요한 하인리히 휘슬리 작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챤 안델센은 그의 작품인 ‘의심 많은 천사’(Angel of Doubt)에 고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왕(크세르크세스)을 등장시켰다. 이어 ‘아하수에로의 방랑’(The Wandering of Ahasuerus)에는 주인공 헬러(Heller)를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묘사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작가인 호르게 루이스 보르게스(Jorge Luis Borges)는 그의 단편 ‘불멸의 사람’(The Immortal)에서 주인공 요셉 카라타필로(Joseph Cartaphilus)가 원래는 로마의 호민관이었으나 마법의 강물을 마신후 불사의 인간이 되어 겨우 192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유제느 수(Eugene Sue)는 그의 소설 Juif errant(방랑하는 유태인)에서 아하수에로와 헤로디아스의 이야기를 연결하였다. 알렉산더 뒤마의 Isaac Laquedem(이삭 라케뎀)은 위대한 서사시이다. 폴 페발(Paul Feval)의 La Fille du Juif Errant(방랑하는 유태 아가씨)는 실화를 삽입하여 실감으로 더해준 작품이다. 러시아에서는 바실리 추코브스키(Vasily Zhukovsky)의 서사시 Ahasuerus(아하수에로: 1857)에서 ‘방랑하는 유태인’을 등장시켰다. 알렉산더 푸쉬킨도 아하수에로에 대한 장편시를 시작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서른 줄만 쓰고 중단하였다. 폴란드의 위대한 작가인 얀 포토키(Jan Potocki)가 1797년에 쓴 The Manuscript Found in Saragossa(사라고싸에서 발견한 문서)는 ‘방랑하는 유태인’의 전설을 실감있게 그린 것이다. 브라질의 시인 겸 작가인 마하도 데 아씨스(Machado de Assis)는 그의 시집 Viver(살기 위해서: 1896)에서 마지막 장면에 ‘방랑하는 유태인’과 프로메테우스의 대화를 수록하였다. 헝가리의 시인 야노스 아라니(Janos Arany)는 The everlasting Jew(영원한 유태인)라는 제목의 발라드를 발표했다.


                        

알레비의 오페라 '유태여인'(La Juive)의 한장면. 엘레아자르에 닐 쉬코프.

 

[무대예술에서의 ‘방랑하는 유태인’]

프로멘탈 알레비(Fromental Halevy)의 오페라 ‘방랑하는 유태인’ 또는 ‘유태 여인’(La Jewess)은 1852년 4월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2시즌동안 48회의 공연을 가졌다. 오페라에 나오는 마주르카, 왈츠, 폴카는 대단히 사랑받고 있는 곡들이다. ‘방랑하는 유태인’을 소재로한 영화들도 여러 편이 있다. 1934년 영국에서 제작된 ‘방랑하는 유태인’(The Eternal Jew)은 템플 서스턴(Temple Thurston)의 극본에 의한 것으로 성경에 나오는 유태인을 시대를 초월하여 스페인의 악명 높은 종교재판관 앞에 서게 한다는 내용이다. 1948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방랑하는 유태인’은 명우 빗토리오 가스만(Vittorio Gassman)이 주역을 맡은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1940년에 나치가 반유태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선전용으로 만든 Der Ewige Jude(영원한 유태인)은 유태인들의 나쁜 관습들을 부각한 것이다. 1988년에 제작된 The Seventh Sign(제7의 징조)에서는 주인공 루치(Lucci)신부가 전설적인 ‘방랑하는 유태인’ 역할을 맡아 등장한다. 루치신부는 그가 2천년전 빌라도 저택의 문지기였던 카르타필로였으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그를 조소했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데미 무어 주연의 '제7의 징조' 포스터

 

2001년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글렌 버거(Glen Berger)의 단편 드라마 Underneath the Lintel(창문틀의 아래에서)는 도서관 사서가 113년 만에 반환된 책을 서가에 다시 올려놓으면서 책의 제목을 보니 ‘방랑하는 유태인’이었다는 내용이다. 1999년도 PC게임인 가브리엘 기사 3(Gabriel Knight 3)은 주인공 에밀리오 바자(Emillio Baza)가 나중에 ‘방랑하는 유태인’으로 판명되는 내용이다. 에밀리오 바자는 십자가 처형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초점을 둔 덴마크 쇠렌 키르커가르드(Soeren Kierkegaard)의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도 ‘방랑하는 유태인’에 대한 스토리가 나온다. 이밖에도 ‘방랑하는 유태인’을 소재로 한 내용은 수없이 많지만 지면상 생략.


'가브리엘 나이트 3'의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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