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이스터 몬데이

유럽의 딘구스 데이

정준극 2010. 6. 12. 16:54

유럽의 딘구스 데이

 

폴란드왕국의 국부인 미에츠코 1세. 폴란드에 기독교를 처음 도입한 국왕. 딘구스 데이는 그날을 기념하는 축제라는 주장도 있다.

 

앞에서도 잠시 소개했지만 폴란드에서는 이스터 몬데이를 스미구스-딘구스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간단히 다인구스 데이(Dyngus Day) 또는 웻 몬데이(Wet Monday)라고 부른다. 체코공화국에서는 폼라츠카(Pomlazka)라고 부른다. 역시 물을 뿌리는 날이라는 뜻이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시바카(Sibacka) 또는 오블리에바카(Oblievacka)라고 부른다. 나라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풍습은 비슷하며 오늘날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공화국에서는 총각들이 부활절 월요일의 이른 아침에 처녀들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가지고 간 버킷(양동이)의 물을 아가씨의 얼굴에 붓고 가느다란 나무 회초리로 처녀들의 다리를 탁탁 두드리는 풍습이 있다. 먼지털이(총채)처럼 생긴 회초리는 주로 버들강아지나 자작나무 가지로 만든다. 그러나 이런 풍습이 반드시 부활절과 관계가 있다고 볼수는 없다. 왜냐하면 폴란드에서는 이런 풍습이 주후 750년부터 있어왔는데 폴란드는 그로부터 250여년이 지난 10세기경에 기독교를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의 딘구스 데이에 아가씨에게 억지로 물을 뿌리는 장면. 물세례를 받으면 시집을 갈수 있다고 했다. 삽화 

 

 한편, 폴란드에서 딘구스(영어로는 다인구스) 풍습이 시작된 것은 폴란드의 국부라고 하는 미에츠코1세(Mieszko I: 935-992)가 부활절 이후의 첫 월요일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다. 미에츠코1세는 폴란드를 기독교의 깃발 아래에 하나로 통일하였다. 딘구스-스미구스가 슬라브 민족에게 전래되어 온 우상숭배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딘구스와 스미구스는 쌍둥이 우상신이었다고 한다. 딘구스는 물과 촉촉이 젖은 땅을 말한다. 이 경우에 딘구스라는 단어는 딘 구스(Din gus), 즉 묽은 수프(Thin soup)라는 뜻인데 묽다는 말(Thin)은 메마르다(Dry)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스미구스는 번개와 우레를 말한다. 아무튼 이방인의 우상인 물의 신이라는 단어가 기독교의 세례를 뜻하는 단어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폴란드의 어떤 지방에서는 딘구스 데이에 아가씨들이 남자에게 오히려 물을 퍼부어 장난했다고 한다.

 

부활절 월요일, 즉 딘구스 데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버드나무 가지로 때리는 풍습은 고대로부터의 풍습인 물을 퍼붓고 우상 장대(Pole)를 흔드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가오는 해에 복을 받기 위해 주위를 청결히 하고 정화하는 것을 말하여 이로써 풍요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 어떤 주장에 따르면 채찍이나 회초리로 가볍게 때리는 풍습은 기독교에서 신앙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살짝 때리는 의식에서부터 비롯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폴란드에서는 굿 프라이데이(성금요일)에 부모가 아이들을 회초리로 가볍게 때리면서 사순절 기도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상처들!’(Boze rany: 보제 라니)이라고 외치는 풍습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초기에는 딘구스와 스미구스의 풍습이 서로 완전히 달랐다. 딘구스는 주로 색칠한 계란을 선물로서 교환하는 풍습이었다. 이때 상대방이 선물할 계란을 준비하지 못했으며 대신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미구스는 순전히 가볍게 때리는 풍습이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딘구스와 스미구스는 청혼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대상도 미혼의 여자들에게 국한하게 되었다. 총각이 자기가 좋아하는 처녀의 방에 몰래 스며들어가서 양동이에 가득 담을 물을 퍼부어 깨웠다고 한다. 여기에는 약간의 인간적인 배려가 있다. 총각이 상대 처녀의 집에 들어갈수 있는 것은 딸을 얼른 시집보내고자 하는 처녀의 어머니가 노골적으로 주선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딘구스 데이에 아가씨에게 물세례를 주는 총각. 폴란드 삽화. 아가씨는 '어머머 나에게 맘이 있는 모양이야'라면서 별로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가씨를 좋아하는 총각은 물을 뿌리는 척 하다가 다른데다 뿌려 아가씨가 젖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건대 부활절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처녀들이 하루 종일 물세례를 받거나 회초리도 다리를 맞아야 하는 수난 속에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우를 많이 받은 처녀일수록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물세례도 받지 못하고 버들강아지나 자작나무 회초리로 다리를 한번도 맞아보지 못한 처녀들인 자기들이 얼마나 매력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시집도 가지 못할 형편을 실감하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근자에 이르러 딘구스-스미구스의 콤비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물세례를 주는 딘구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물세례를 받은 아가씨들은 옛날처럼 ‘아, 나야 말로 매력적인 여자로다’라면서 흡족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니, 이것들이 감히 나에게 물을 퍼부어?’라며 오히려 남자들에게 공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폴란드에서는 거의 모두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가씨들이건 총각들이건 고층아파트의 베란다에 잠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아무나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수공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이 스미구스 채찍. 위에는 리본을 달았기 때문에 아무리 탁탁 쳐도 실은 아프지 않았다. 코르바크라고도 부른다.

 

폴란드의 일부 지방에서는 물세례보다 더 혹독한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재를 뿌리는 것이다. 석탄재를 주로 많이 사용하지만 장작을 태워서 재를 만들고 부활절 다음날 월요일에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뿌린다는 것이다. 만만하게 재를 뿌릴 아가씨를 찾지 못했으며 그 아가씨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서 재를 뿌렸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폴란드의 마쭈리아(Mazuria)와 마소비아(Masovia)와 같은 지역에서는 행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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