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Ferchergasse(훼르허가쎄)로부터 Güpferlingstrasse(귀펄링슈트라쎄)까지
- Ferchergasse(훼르허가쎄): 작가인 요한 페르허 폰 슈타인봘트(요한 클라인훼르허라고도 부름: 1828-190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의 작품은 이상주의적 국가주의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세계주의적인 양상으로 변하였다. 그는 여러편의 드라마를 썼지만 극장에서 공연된 일은 없고 다만 학생극장에서 한번 공연된 일이 있다. 그는 뛰어난 문학평론가이기도 했다.
- Föderlweg(회더를베그): 민속적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칼 회더를(1885-1953)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30-40년대에 가장 유명한 비엔나 노래(Wienerlied)작곡가였다. 대표작은 Die Reblaus(포도나무 벌레), Da fangt der alte Stephansturm zu plaudern an(오래된 슈테판탑이 재잘거리기 시작했네) 등이다. 그는 약 800곡의 비엔나노래를 작곡하였는데 가사는 에른스트 마리슈카(Ernst Marischka)와 같은 당대의 시인들이 썼다. 그는 영화음악도 여러편 작곡했다. 또한 헤르날스에서 커피하우스를 경영하였다. 그는 중앙공동묘지의 예술가 묘역에 안장되었다.
- Forsthausweg(포르스트하우스베그):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다. 소농장인 Hügelwiese(휘겔뷔제)로 가는 길이다. 포르스트하우스는 숲속에 있는 산장을 말한다.
- Franz-Glaser-Gasse(프란츠 글라저 가쎄): 주택건설자인 프란츠 글라저(1822-1885)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도른바흐 시장을 지냈다.
- Frauenfelderstrasse(프라우엔펠더슈트라쎄): 도른바흐에 있는 들판(또는 경작지)의 이름이다. Frauen(프라우엔: 부인)이라는 단어는 Nonne(논네: 수녀)를 의미한다. 일찍이 이 경작지가 잘프부르크의 상크트 페터수도원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당시 상크트 페터수도원장인 발더리히는 Petersfrauen(페터스프라우엔)이라는 수녀원도 설립하였다. 도른바흐의 경작지는 상당 기간 동안 그 수녀원이 운영하였다. 그래서 프라우엔펠트(수녀들의 들판)라는 표현이 생겼다.
잘츠부르크의 성베드로교회에 있는 십자가의 길(Kreuzergang)
- Frauengasse(프라우엔가쎄): 역시 페터스프라우엔에서 연유한 지명이다. 프라우엔가쎄에서는 168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 때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683년 비엔나 교외의 일부가 터키에게 점거당한후 이를 탈환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프라우엔가쎄 전투는 특별히 역사에 남아 있다.
- Geblergasse(게블러가쎄): 공직자이면서 희곡작가인 토비아스 필립 프라이헤르 폰 게블러(Tobias Philipp Freiherr von Gebler: 1726-1786)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공직자로서는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고 나중에는 제국의 보헤미아 수상부(호프칸츨라이)에서 부수상까지 지냈다. 작가로서는 여러편의 코미디극본을 남겼다. 주로 코미디극장(Sprechtheater)에서 공연되었다. 대표작은 Thamos, König von Ägypten(이집트의 여왕 타모스)등이다. 모차르트가 그의 코미디극본에 음악을 붙인 경우도 있었다.
비엔나 1구 유덴플라츠에 있는 보헤미아 수상관저(호프칸츨라이).
- Gerhard-Fritsch-Gasse(게르하르트 프릿츄 가쎄):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게르하르트 프릿츄(1924-196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원래 비엔나시립문서보관소(Stadtischen Buchereien der Stadt Wien)의 사서였다. 그러면서 Wiener Bücherbriefe(비엔나 서평), Wort in der Zeit(보르트 인 데어 차이트), Literatur und Kritik(문학과 비평) 등 간행물의 편집장을 지냈다. 작가로서 그의 대표작은 Moos auf den Steinen(1956)이다. 이 작품은 1968년에 게오르그 로츠키(Gerhard Lhotsky)와 에리카 플르아르(Erika Pluhar)의 주역을 맡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U6 정류장인 부어가쎄-슈타트할레에 있는 비엔나시립문서보관소(Stadtischen Buchereien der Stadt Wien)
- Geroldgasse(게롤드가쎄): 서적상, 출판가, 인쇄인으로 유명한 형제인 모리츠 폰 게롤드(1815-1884)와 프리드리히 게롤드(1813-188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오스트리아작가의 걸작선집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 외에는 주로 학교 교과서를 발간했다.
- Gersthofer Strasse(게르스트호퍼 슈트라쎄): 게르스트호프 마을과 연관하여 붙인 거리이름이다. 게르스트호프 마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기록상 1497년이다. 게르스트호프라는 말은 게오르그 게르스틀러(Georg Gerstler)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저택(호프)에서 연유한 것이다.
게르스트호프 역
- Glimgasse(글림가쎄): 법조인이며 시인인 헤르만 폰 글림 추 로제네그(Hermann von Glim zu Rosenegg: 1812-186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주로 정치적 성향의 시를 썼는데 자기의 정치적 열정을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예수회에 반대하는 풍자적인 시를 남겼다. 그의 생전에는 오직 Tiroler Schützenleben(티롤에서의 은둔생활)이라는 작품집만이 출판되었다.
- Goldscheidgasse(골드샤이드가쎄): 사회학자인 루돌프 골드샤이드(1870-1931)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특히 Menschen-Ökonomie(멘쉔 외코노미)에 헌신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재정사회학(Finanzsoziologie)의 선구자로서 알려져 있다. 평화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Friedens-Warte(평화의 파수꾼)이라는 간행물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1921년에 독일인권연맹의 대표로서 활동했다.
- Grabengasse(그라벤가쎄): 소농장인 Mitterberg und Trenkwald(미터버그-트렌크봘트)로 가는 길이다. 아마 길가에 묘지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Gräffergasse(그래퍼가쎄): 사서이며 작가인 프란츠 그래퍼(1785-185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모리츠 폰 리히텐슈타인(Moritz von Liechtenstein) 대공과 칼 하라흐 백작의 사서로서 헌신했다. 작가로서 그는 주로 비엔나 민속과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썼다. 그는 나중에 출판사를 설립했고 아울러 고서점을 운영했다.
모리츠 폰 리히텐슈타인 대공
- Grasgasse(그라스가쎄): 소농장인 Mitterberg und Trenkwald로 가는 길이다. 아마 길에 잡초가 많이 나서 그런 이름을 붙인것 같다.
- Grünbeckweg(그륀베크가쎄): 헤르날스 의회의원을 지낸 여관집 주인 세바스티안 그륀베크(1819-1884)를 어쩔수 없이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Gschwandnergasse(그슈봔트너가쎄): 1839년 헤르날저 하우프트슈트라쎄에 유흥업소를 건설한 여관집 주인 요한 그슈봔트너(1802-1862)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몇 년후 그는 1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유흥업소로 확장하고 이름도 Der Gschwandner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무도회장, 연주회장, 민요극장 등이 있었다.
- Güpferlingstrasse(귀펄링슈트라쎄): 이 지역에 있던 경작지의 이름이다. 일찍이 1375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경작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Gupf(구프)라는 단어는 꼭대기에 삐져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이 헤르날스의 끝머리에 삐죽하게 나온 곳이기 때문에 그런 단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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