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참고자료] 영화 씨씨 3부작

정준극 2010. 9. 21. 12:28

[참고자료]

영화 씨씨 3부작 (Sissi - Trilogy. Spielfilme)

에른스트 마리슈카 감독

로미 슈나이더 - 칼하인츠 뵘 주연

 

비엔나의 제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에는 마리슈카프로메나데(Marischkapromenade)라는 길이 있다. 예술가 집안인 마리슈카 형제들을 기념하기 위한 거리이다. 그중에서 에른스트 마리슈카(Ernst Marischka)는 영화감독 및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비 엘리자베트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한 씨씨(Sissi) 3부작이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1952년도 비엔나 일러스트레이트지(Wiener Illlustrierte)의 표지를 장식한 씨씨 역의 로미 슈나이더 

무도복을 입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비 엘리자베트(씨씨)

 

오스트리아제국(나중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엘리자베트(씨씨) 황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세계 각국에서 여러 편이 나와 있지만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영화감독 겸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에른스트 마리슈카가 감독한 3편의 연속물이 가장 인기가 있다. 1편은 1955년에 나왔다. '오스트리아의 씨씨(Sissi, Österreich)'라는 제목이었다. 2편은 이듬해인 1956년에 나왔다. '오스트리아의 젊은 황비 씨씨'(Sissi, die junge Kaiserin, Österreich)가 타이틀이다. 3편은 1957년에 나온 '씨씨 - 오스트리아 황비의 운명의 해'(Sissi - Schiksalsjahre einer Kaiserin, Österreich)이다. 3편의 영화 모두 비엔나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Romy Schneider)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상대역인 프란츠 요셉 황제 역은 칼하인츠 뵘(Karlheinz Böhm)이 맡았다. 칼하인츠 뵘은 역시 오스트리아가 낳은 위대한 지휘자인 칼 뵘의 아들이다. 3편의 연작영화는 1950년대에 나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근자에는 DVD로 출시되어 더욱 쉽게 접할수 있게 되었다.

 

씨씨 콜렉션 5장의 DVD

 

 제1편 '씨씨'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프란츠 요셉이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어머니 조피는 아들의 결혼을 서둘렀다. 적당한 규수를 찾는 중에 아무래도 믿을만한 사람은 가족이 제일이라는 생각에서 자기 여동생의 큰 딸인 헬레네(애칭: 네네)을 장차의 며느리로 점찍는다. 조피 황대비의 여동생인 헬레네는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과 결혼했다. 젊은 황제의 어머니인 조피와 그의 여동생 루도비카는 미리 연락을 해서 오스트리아의 경치 좋은 잘츠캄머구트의 마을인 바드 이슐(Bad Ischl)에서 프란츠 요셉과 헬레네가 만나 아예 약혼발표를 하는 것으로 각본을 짰다. 루도비카에게는 둘째 딸도 있었다. 엘리자베트(씨씨)는 아직 어리지만 성격이 명랑하고 활발한 아가씨이다. 루도비카는 바드 이슐에 작을 딸 엘리자베트도 함께 데리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바드 이슐에 도착한 프란츠 요셉 황제는 잠시 시간이 있어서 산책을 하던중 우연히 낚시를 하고 있는 엘리자베트를 만난다. 두 사람은 그날 오후에 함께 등산을 하며 어느덧 친해 진다. 저녁이 되어 무도회가 열리는데 프란츠 요셉 황제는 뜻밖에도 엘리자베트에게 청혼한다. 황제가 공식적으로 청혼하였기에 변경이란 있을수 없다. 씨씨는 프란츠 요셉과 결혼하기 위해 뮌헨에서부터 비엔나로 온다.드디어 씨싸는 프란츠 요셉과 비엔나의 아우구스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백성들이 환호한다.

 

바드 이슐에서 씨씨와 만나 산책하고 있는 프란츠 요셉 황제

 

제2편 '젊은 왕비 씨씨'에서는 씨씨와 프란츠 요셉의 행복한 결혼생활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비엔나 궁전에서의 생활을 불편하기만 하다. 씨씨의 시어머니인 조피는 궁정 에티켓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씨씨는 어릴 때부터 바바리아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즐거운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얼마후 첫 딸이 태어난다. 그런데 시어머니인 조피는 씨씨가 너무 어려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수 없다고 하며 아이를 데려가서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다. 씨씨는 낙담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러다가 얼마후 첫 딸이 그만 세상을 떠난다. 씨씨는 바바리아의 친정 집으로 잠시 돌아간다. 어릴 때 즐겁게 지내던 고향이었지만 이제 그런 즐거움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남편 프란츠 요셉은 점점 씨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들을 많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가정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씨씨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면서 지내야 했다.

 

첫 딸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씨씨의 슬픔

 

제3편 '씨씨 - 어떤왕비의 운명의 해'에서는 씨씨의 행복하지 못한 삶이 조명된다. 씨씨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국사 때문에, 그리고 시어머니 조피의 냉대 때문에 더욱 어려워 진다. 씨씨는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갈구하는 헝가리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갖게 된다. 헝가리가 마치 자기의 운명과 같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씨씨는 어느새 헝가리 자주독립 운동가인 안드라씨 백작과 가까워 진다. 안드라씨 백작은 씨씨를 대단히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연인처럼 서로 사랑한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 조피는 씨씨가 안드라씨 백작과 심상치 않은 관계라고 하면서 아들 프란츠 요셉에게 주의를 준다. 그러나 프란츠 요셉은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는다. 씨씨는 제국의 황비로서 본분을 잊지 않았다. 결국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화해하여 하나의 제국 아래에 있게된다. 그리고 헝가리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적인 운영이 보장된다. 한편, 베니스 공국에서도 오스트리아제국에 대한 반감이 계속되고 있다. 프란츠 요셉과 씨씨는 베니스를 방문하여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씨씨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씨씨는 건강을 위해 남쪽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곳을 여행다닌다.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은 비엔나에 가서 있다.

 

베니스 공국에서 백성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씨씨와 프란츠 요셉

 

영화의 타이틀은 Sissi 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결코 Sissi라고 쓰지 않는다. Sisi라고 쓴다. 씨씨에 대한 영화는 에른스트 데치(Ernst Decsey)와 구스타브 홀름(Gustav Holm)의 희곡인 Sissys Brautfahrt(씨시의 신부여행)을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씨씨가 결혼을 위해 뮌헨으로부터 비엔나까지 먼거리를 여행하는 얘기에 초점을 두었다. 희곡의 원작은 Maie Blank-Eismann(마리 블랑크 아이스만)이 1952년에 쓴 소설이다. 씨씨는 1837년에 태어나서 1898년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의 흉기에 찔려 어이없이 세상을 떠난다. 향년 61세였다. 씨씨는 1854년17세가 되던 해에 프란츠 요셉과 결혼하였다. 우리나라로 보면 강화도령 이원범이 철종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씨씨는 국민들로부터 Kaiserin der Herzen(마음의 왕비)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  

 

씨씨 골드 에디션. 머리에 꽂은 핀은 다이아몬드 스타라고 부르는 씨씨 특유의 악세사리이다.

 

2009년에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가 합동으로 제작한 Sissi 라는 영화도 있다. Martina Gedeck(마르티나 게데크)가 씨씨의 역할을 맡았고 Herbert Knaup(헤르베르트 크나우프)가 프란츠 요셉 황제 역할을 맡은 것이다. 호프부르크, 쇤브룬 궁전, 락센부르크 궁전, 에커스타우, 브룬제, 베니스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1991년에는 Sonja Kircherger(존냐 키르흐버거)가 씨씨를 맡은 영화도 나왔었다.

 

스페인에서 나온 씨씨 DVD

 

씨씨 3부작을 감독한 에른스트 나리슈카는 주로 찬란했던 제국의 영화에 대한 향수를 그린 작품들을 감독했다. 그는 진정으로 비엔나 풍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 중에서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피아니스트 소팽의 생애를 그린 A song to Remember(회상의 노래)는 1946년 오스카상 후보로 올라갔었다. Cornel Wilde(코넬 와일드)가 쇼팽 역을 맡았고 Paul Mini(파울 무니)와 Merle Oberon(메를레 오베론)이 공연한 작품이다. 이제 나리슈카가 감독한 대표적인 영화들로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제목만 보더라도 제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는 것들이 아닐수 없다.

 

1962 Forever My Love(내 사랑 영원히)

1961 Saison in Salzburg(잘츠부르크의 계절)

1959 Alt Heidelberg(고도 하이델베르크)

1957 Sieben Jahre Pech(역경의 7년)

1957 Scherben Bringen Gluck(고난이 행운으로)

1957 Sissi, Schiksalsjahre einer Kaiserin(씨씨, 어떤 왕비의 운명의 해)

1956 Der Opernball(오페라무도회)

1956 Sissi, Die Junge Kaiserin(씨씨, 젊은 왕비)

1955 Sissi(씨씨)

1955 Die Deutschmeister(독일기사단장)

1954 Mädchenjahre einer Königin(여왕의 소녀시절)

1953 Du bist die Welt für mich(그대는 나의 세상)

1952 Hannerl(한네를)

1951 Verkluges Wien(사랑스런 비엔나)

1948 Eternal Melodies(영원한 멜로디)

1947 Addio Mimi(잘 있어요 미미)

1945 In mir klingt ein Lied(A Song to Remember: 회상의 노래)

1943 Abenteuer im Grand-Hotel(그랜드 호텔에서의 모험)

1942 Wiener Blut(비엔나 기질)

1941 Frau Luna(루나 부인)

1940 Rosen in Tirol(티롤의 장미)

1940 Spring Parade(스프링 퍼레이드)

1937 The World's in Love(사랑이 넘친 세상)

1937 Nacht mit dem Kaiser(황제와의 하루 밤)

1935 The Runaway Queen(도망간 여왕)

1934 My Heart is Calling(마음 속의 소리)

1933 Ein Lied für Dich(그대를 위한 노래)

1933 Hochzeitreise zu Dritt(세번째 결혼여행)

1932 Ich will nicht wissen wer du bist(그대가 누군지 알수 없어요)

 

 영화감독 에른스트 마리슈카, 로미 슈나이더, 그의 어머니인 막달레나 알바흐. 어머니도 유명한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