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3구 리징

[참고자료] 락센부르크(Laxenburg)

정준극 2010. 10. 12. 11:13

[참고자료]

락센부르크 성(Schlösser von Laxenburg)

합스부르크의 화려한 영광이 남아 있는 곳

 

락센부르크의 블라우어 호프. 블라우(Blau)라고 해서 파란색의 집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비엔나를 방문하는 중에 하루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락센부르크 성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엔나에서 가깝다. 시내로부터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강남에서 용인 민속촌을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비엔나 시내에서 30분이면 갈수 있다. 뫼들링(Mödling)에서 락센부르크로 가는 급행기차를 타도 그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비엔나 교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서 시간을 내어 가볼만한 곳으로는 바덴, 멜크, 아이젠슈타트, 마이엘링,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등이 있지만 락센부르크는 사실상 이런 곳보다 훨씬 가까워서 우선 하루 만에 갔다가 오기에 편하다. 더 시간이 있다면 하루정도 락센도르프 마을에서 쉬고 천천히 구경한 후에 오는 것도 바람직하다. 락센부르크 성은 13세기에 형성된 락센도르프(Lachsendorf) 마을에 있다. 락센보르크 성이 락센도르프 마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락센부르크 성 때문에 락센도르프 마을이 생긴 것이다. 황제의 가족이 락센부르크에 오면 수많은 신하들도 따라 와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마을에는 에스터하지, 다운(Daun), 아우어슈페르그(Auersperg), 코테크(Chotek), 비트겐슈타인(Wittgensein)과 같은 명문 귀족들이 별도의 저택을 짓고 지냈다. 락센부르크는 리틀 비엔나였다. 락센도르프는 니더외스터라이히의 뫼들링 구에 속하여 있다.

 

프란첸스부르크. 프란츠1세(프란츠2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성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락센부르크 성은 단순히 웅장한 건물 한 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궁전(Altes Schloss), 신궁전(Neues Schloss)이라고 불리는 블라우어 호프(Blauer Hof), 프란첸스부르크(Franzensburg)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한없이 넓은 공원(Schlosspark)이 있다. 공원 안에는 호수도 있어서 보트 놀이도 할수 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 흥미로운 시설들도 있다. 신비스런 느낌을 주는 바위동굴도 있고 사원도 있으며 중세 기사들이 무술시합을 벌이던 장소도 있다. 락센부르크 성은 쇤브룬(Schloss Schönbrunn) 다음으로 중요한 합스부르크의 여름 궁전이었다.

 

락센부르크 성이 있는 자리는 13세기 락센부르크(Lachsenburg)라는 영주의 사냥터였다. 락센부르크 영주가 사냥숙사를 세웠다. 락센부르크 영주가 얼마후 전쟁에서 전사하자 넓은 영토는 1333년에 합스부르크의 알브레헤트3세 대공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면서 넓은 사냥터는 마르크트게마인데(Marktgemeinde)로 인정되었다. 마르크트게마인데는 국가로부터 세금의 면제를 받은 별도의 영토를 말한다. 알브레헤트3세는 전부터 있었던 사냥숙사를 크게 확장하여 바로크 양식의 성을 건설했다. 이것이 오늘날 구궁전(Altes Schloss))이다. 알테스 슐로쓰는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 때에 터키군에 의해 파손되었다. 복원된 것은 1693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18세기에 들어서서 외부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성주변에 해자를 두르고 물을 채웠다. 오늘날 물을 채운 해자는 메꾸어져서 찾아볼수 없다.

 

1389년에 알테스 슐로쓰에는 성탑을 설치되고 건물 내에는 예배처(카펠레)가 마련되었다. 예배처의 성상들은 레오폴드스버그 카펠레에서 가져온 것이다. 예배처는 1703년부터 1723년 사이에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확장개축되었다. 그리고 비엔나 시내에 있는 성안나교회의 지교회가 되었다. 알테스 슐로쓰와 그 옆에 있는 노이에 슐로쓰는 1차 대전 직전까지 합스부르크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정부의 소유로 되었다가 1970년대에 ‘락센부르크 관리사무소’가 생겨 민간기관이 운영을 맡았다. 알테스 슐로쓰 건물에는 1970년 이래 오스트리아 필름보관소(Filmarchivs Österreich)가 들어섰다. 현재 12만 롤의 필름이 보관되어 있다. 예배처에서는 음악회가 열리거나 결혼식 장소 또는 연회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1973년부터는 비정부국제기구인 IIASA(International Institute for Applied Systems Analysis)가 입주하였다.

 

락센부르크 교회. 예전에는 작은 예배처(카펠레)였는데 차츰차츰 확장되었다.

 

블라우어 호프는 1544년에 멜히오르 아르구엘로(Melchior Arguello)라는 사람의 소유였다. 그후 1710-20년 사이에는 제국부수상을 지낸 프리드리히 칼 폰 쇤보른(Friedrich Karl von Schönborn)의 소유가 되었고 그 후에는 세바스티안 폰 플뢴슈타인(Sebastian von Ploenstein)이라는 사람의 소유가 되어 대대적인 확장을 했다. 당시 확장공사는 거장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맡았었다. Ploenstein은 Blauenstein(청석)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으로 플라우어 호프라는 명칭은 플뢴슈타인에서 비롯한 것이다. 블라우어 호프를 비롯한 락센부르크 성은 1762년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유가 되었다. 블라우어 호프는 1835년 궁정건축가인 유명한 니콜로 파카시(Nikolo Pacassi)에 의해 다시 확장되었다. 파카씨는 연회장소로 사용되는 슈파이제잘트락트(Speisesaaltrakt)와 궁전극장(Schlosstheater)를 추가로 완성했다. 블라우어 호프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종말과 함께 비엔나시의 소유로 되었다가 2차 대전후 점령시기에는 소련 적군(Roten Armee)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있었다. (* 자료마다 연도에 차이가 있어서 혼돈을 주지만 대충 그정도 연도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알테스 슐로쓰의 계단

 

슐로쓰파르크(공원)가 완성된 것은 1780년의 일이었다. 공원은 쇤브룬궁전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식 정원으로 조성하였으며 훗날 영국 정원의 스타일을 포함하였다. 공원에는 커다란 인공호수가 있으며 호수 안의 섬에 프란첸부르크 성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란첸부르크라는 이름은 이 건물을 지은 프란츠2세(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1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기념하여서 붙인 것이다. 블라우어 호프에 있는 가구와 설비들은 모두 오스트리아의 보물로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이 건물에는 락센부르크 박물관이 있어서 옛 영화를 볼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스타일의 대접견실은 대관식홀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다.

 

겨울의 슐로쓰파르크

 

락센부르크 구내에는 알테스 슐로쓰, 노이에스 슐로쓰(블라우어 호프), 프란첸부르크 이외에도 여러 채의 역사적 건물들이 있다. 휴게소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은 Grüne Lusthaus(그뤼네 루스트하우스)라고 부른다. Concordiatempel(콘코르디아템펠)은 화합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Turnierplatz(투르니어플라츠)는 중세 기사들이 마상무술시합을 벌이던 장소이다. 투르니어라는 단어는 마상무술시합을 말한다. 요한 페르디난트 헤첸도르프 폰 호헨버그가 건축한 Haus der Laune(기분전환의 집)은 흔적만 남아 있다. Felsengrotte(펠젠그로테)는 바위동굴로서 스위스에 있는 합스부르크 성을 모델로 꾸미려고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Ritergruft(리터그루프트)는 기사들의 영묘이다. 그 앞에는 리터조일레(기사탑)가 세워져 있다. 오늘날 슐로쓰파르크는 비엔나 사람들의 하이킹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또한 호수에서는 보트 놀이를 즐길수 있다. 슐로쓰파르크를 비롯한 락센부르크 성은 ‘Natura 2000'이라는 유럽연합의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어서 자연보호의 모델이 되고 있다. 

 

슐로쓰파르크에 있는 콘코르디아템펠 

 

슐로쓰파르크는 씨씨가 승마를 즐기던 장소였다. 프란츠 요셉1세 황제와 결혼한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씨씨)는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는 아우구스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후 락센부르크 성으로 신혼여행을 왔으며 이곳에 머무는 동안 락센부르크 숲에서 승마를 즐겼다. 락센부르크 성에서는 1856년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씨씨)의 첫 딸인 기젤라(Gisela)가 태어났으며 1858년에는 비운의 황태자 루돌프가 태어났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의 동생인 요셉 슈트라우스는 루돌프 황태자의 탄생을 축하하여서 ‘락센부르크 폴카’를 작곡했다. 이 폴카는 그해 가을 요셉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락센부르크 성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훗날 루돌프 황태자는 벨기에의 스테파니 공주와 결혼하였으며 역시 락센부르크 성으로 신혼여행을 왔고 1883년에는 이들의 유일한 딸인 엘리자베트 마리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루돌프 황태자. 락센부르크 성에서 태어났다.

 

락센부르크 성과는 직접 연결된 건물이 아니지만 락센부르크 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기차역이 있다. Kaiserbahnhof(카이저반호프)이다. 뫼들링에서 떠나는 기차의 종착역이다. 2000년에 보수공사를 끝낸 카이저반호프에는 식당이 있으며 모임을 가질수 있는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카이저반호프는 유럽의 철도역으로는 유일하게 비더마이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락센부르크 성은 매년 종려주일 전날인 토요일부터 11월 초까지 일반에게 공개되며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프란첸스부르크는 매일 11시, 14시, 15시에 가이드가 있으며 입장요금은 어른이 6유로이다. 성탑에 올라가려면 5유로를 추가로 내야하며 매일 오후 4시에 가이드가 있다.

 

카이저반호프. 식당-카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