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3구 리징

[참고자료] 빈필 지휘자 요셉 크립스(Josef Krips)

정준극 2010. 10. 12. 06:07

[참고자료]

전후의 전설적인 빈필 지휘자 요셉 크립스(Josef Krips)

 

요셉 크립스

 

요셉 크립스는 2차 대전 직후 빈필의 지휘자로 부임하여 침체되어 있던 빈필을 정상궤도에 오르게 하였으며 이로써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음악으로서 희망을 불어 넣어준 위대한 인물이다. 1902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요셉 알로이스 크립스(Josef Alois Krips)는 지휘자가 되려는 큰 뜻을 품고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때에 음악학자이며 작곡가인 루마니아 출신의 오이제비우스 만디체브스키(Eusebius Mandyszewski: 1857-1929)를 찾아가서 조수로서 일하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어 역시 당대의 위대한 지휘자인 펠릭스 봐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하였다. 그때 봐인가르트너는 비엔나 폭스오퍼(Volksoper)의 상임지휘자였다. 크립스는 19세의 젊은 나이로 폭스오퍼에서 봐인가르트너의 조수로서 오케스트라 연습지휘와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그러기를 3년을 하였다.

 

음악학자, 작곡가, 음악사서였던 오이제비우스 만디체브스키. 비엔나악우회 도서관장을 지냈다.

 

1926년, 크립스는 칼스루에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초청을 받았다. 크립스가 24세 때였다. 칼스루에에서 7년을 지내며 경험을 쌓은 크립스는 1933년 비엔나 폭스오퍼의 상임지휘자로 초청을 받아 비엔나로 돌아왔다. 그는 폭스오퍼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비엔나미술대학교의 교수로서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35년부터 3년 동안은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고정 지휘하였다.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크립스는 나치의 박해를 피하여 비엔나를 떠났다. 크립스는 로마 가톨릭이었지만 아버지가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크립스는 아직 나치의 손이 뻗어있지 않은 유고슬라비아의 벨그라드로 가서 오페라와 교향악 연주회를 지휘했다. 그러다가 유고슬라비아도 2차 대전에 휩싸이게 되자 지휘활동을 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식품공장에 들어가 노동자로 일했다.

 

크립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지휘자 펠릭스 봐인가르트너

 

전쟁이 끝나자 온갖 고난 끝에 살아남은 크립스는 비엔나로 돌아올수 있었다. 크립스는 나치 치하에서 부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휘활동을 재개 할수 있었다. 크립스는 전후 시대의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빈필과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지휘한 인물이었다. 1950년까지 전후의 빈필을 5년동안 지휘했던 크립스는 1950년, 한국에서는 김일성이 남침하여 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런던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초청을 받았다.4년동안 런던에서 지낸 그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버팔로교향악단, 샌프란시스코교향악단을 지휘하며 1970년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한편, 크립스는 1947년에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오페라 지휘로 데뷔하였고 미국 메트로 오페라에서는 1966년 처음으로 지휘를 하였다. 메트로에서는 1966년 이래 몇년동안 수시로 지휘를 맡았었다. 이어 그는 1970년 베를린의 도이치 오페 상임지휘자로 초빙을 받아으며 이와 함께 비엔나 심포니의 수석지휘자도 맡아하였다. 아무튼 크립스는 전후에 가장 바쁜 지휘자였다.

 

비엔나의 폭스오퍼 건물. 크립스가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곳이다.

 

크립스는 1974년 향년 72세로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생인 헨리 크립스는 비엔나에서 지내다가 뜻한바 있어서 1949년 멀리 호주로 건너가 아델레이드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동생 헨리는 호주에서 23년을 지냈다.

 

비엔나 노이슈티프트 공동묘지에 있는 요셉 크립스의 묘지 

 

크립스는 1955년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취입을 지휘했다.Sesare Siepi, Walter Berry, Suznne Danco, Lisa Della Casa, Hilde Gueden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이 역할을 맡은 취입이었다. 크립스 지휘의 이 음반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돈 조반니'라는 평을 받았다. 1957년에는 아서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을 지휘했다. RCA Victor의 음반으로서 사실상 비엔나 최초의 스테레오 취입이었다. 1960년에는 Everest Records의 주관 아래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모두 취입하였다. 교향곡 제9번의 솔리스트들은 Donald Bell(Bar), Jennifer Vyvyan(Sop), Rudolf Petrak(Ten), Shirley Carter(Shirley Verrett: Mezzo Sop)였다. 합창은 BBC 방송합창단이었다. 크립스의 베토벤 교향곡은 당시 가장 훌륭한 연주로서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콘세르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Philips Records의 모차르트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은 나중에 Decca 라벨로서 몇번이나 재발행되었다. 그의 지휘로 음반을 만든 성악가로서는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에르나 버거, 루치아 폽, 세자레 시에피, 니콜라이 겟다 등 수없이 많다.

 

말년의 요셉 크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