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7구 헤르날스

13. Waldegghofgasse - Zwerngasse

정준극 2010. 11. 8. 11:43

13. Waldegghofgasse(봘데그호프가쎄)로부터 Zwerngasse(츠베른가쎄)까지

 

- Waldegghofgasse(봘데그호프가쎄): 이곳에 있던 저택의 이름이었다. 이 저택은 나중에 황제의 자문관인 슈테판 아글러(Stefan Agler)라는 사람이 1530년에 사서 수리하고 살기 시작했다. 수리했기 때문에 노이봘데거 호프(Neuwaldegger Hof)라고 불렀다. Neuwaldegg라는 지명은 이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노이봘데그 호프는 1765년 프란츠 모리츠 폰 라씨 백작이 매입하여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슐로쓰 노이봘데그(Schloss Neuwaldegg)라고 불렀다. 그 전에는 주변이 공원과 같아서 파르크가쎄(Parkgasse)라고 불렀다.

 

슐로스 노이봘데그

 

- Waldhüttelweg(봘트휘텔베그): 이곳에 있던 소농장인 봘트휘텔을 기억하여 붙인 것이다.

- Waldrandweg(봘트란드베그): 소농장인 휘겔뷔제에 있는 길이다. 비너봘트(비엔나 숲)의 가장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비엔나 숲의 겨울

 

- Waldzeile(봘트차일레): 비너봘트(비엔나 숲)를 따라 나 있는 길이다.

- Wallishausergasse(봘리스하우저가쎄): 출판인인 요한 밥티스트 봘리스하우저(1757-1810) 아버지와 아들 요한 밥티스트 봘리스하우저(1790-1831)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아버지 봘리스하우저는 1782년 독일 헤힝겐(Hechingen)으로부터 비엔나에 와서 현재의 플란켄가쎄(Plankengasse)에 출판사를 차렸다. 그의 아들이 1820년에 출판사를 호엔 마르크트(Hohen Markt)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요셉슈타트로 옮겼다. 손자인 요한 밥티스트 봘리스하우저 3세(1831-1904)가 도른바흐에 빌라를 짓고 살았는데 그는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광고탑(Litfasssäule)을 세운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광고탑을 리트파쓰(Litfass)라고 부르는 것은 베를린의 리트파쓰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고안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최초의 거리 광고탑. 베를린의 리트파쓰라는 사람이 개발했기 때문에 리트파쓰조일레(탑)라고 부른다. 베를린에 최초로 광고탑이 등장했을 때의 광고. 둥근 광고탑이서 사방에서 볼수 있는 잇점이 있다.

 

- Wanthalerweg(봔탈러베그): 비엔나노래의 작곡가인 구스타브 봘탈러(1808-186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Wattgasse(봐트가쎄): 증기기관을 처음 발명한 아일랜드의 제임스 와트(736-181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제임스 와트

 

- Weidmanngasse(봐이트만가쎄):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프란츠 칼 봐이트만(1787-1867)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를 널리 여행하고 요한 대공의 요청에 따라 기행문을 책자로 펴냈다. 이 책은 오늘날 오스트리아 여행자들을 위한 지침서가 되어 있다. 그가 쓴 Neuester illustrierter Femdenführer in Wien(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비엔나 안내서)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823년 비엔나의 52개 명소를 소개하는 Panorama von Wien(비엔나 파노라마)을 펴냈으며 이어 발간한 Eisenhahnlinien der Monarchie(제국의 철도)는 기차여행자를 위한 핸드북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는 극장평론가 및 대본가로서도 활약했다.

 

그라츠 중심가와 요한 대공의 기념상. 요한 대공은 봐이드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요한 대공은 요들송의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 Weissgasse(봐이쓰가쎄): 헤르날스 초대 시장이며 지방판사였던 미하엘 봐이쓰(1802-1863)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 Werfelstrasse(베르펠슈트라쎄): 보헤미아 출신의 작가인 프란츠 베르펠(1890-1945)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17-39년에 비엔나에서 살다가 나치의 압박을 피하여 미국으로 갔다. 그는 1929년 구스타브 말러의 미망인인 알마 말러와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은 Das Lied von Bernadette(베르나데트의 노래)이다.

 

비엔나 시내 쉴러파르크에 있는 프란츠 베르펠 기념조형물

 

- Wichtelgasse(뷔히텔가쎄): 헤르날스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베네딕트 뷔히텔(1808-1868)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이 거리에 주택들을 건설하여 사람들이 정착토록 했다.

- Wielemansgasse(뷜레만스가쎄): 후기역사주의 건축가인 알렉산더 뷜레만스 폰 몬테포르테(843-1911)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시내에 있는 Justizpalast(유스티즈팔라스트: 법원청사), 브라이텐펠트 교구교회, 노이오타크링거 키르헤, 그라츠시청(Grazer Rathaus)등을 완성하였다.

 

뷜레만스가 완성한 그라츠 시청

 

- Wildweg(빌트베그): 소농장인 가이스티거 아르바이터에 있는 길이다.

- Wilhelminenstrasse(빌헬미넨슈트라쎄): 몽레아르 작센 쿠어란트의 대공녀인 빌헬미네(Wilhelmine von Montleaft-Sachsen-Curland: 1827-1895)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1887년에 세상을 떠난 부군 모리츠 폰 몽레아르대공은 미망인에게 갈리친버그(Gallitzinberg)에 있는 궁전을 유산으로 상속하였다. 모리츠 대공은 슐로쓰 갈리친버그를 슐로쓰 빌헬미넨버그로 변경코자 하여 작업을 진행하던중 세상을 떠났다. 미망인인 빌헬미네 대공녀는 유산 중에서 상당부분을 자선사업을 위해 기증하였다. 빌헬미네병원(Wilhelminenspitals)의 건설을 위해서는 15만 굴덴을 희사하였다.

 

 

빌헬미넨슈트라쎄의 만너 공장

 

- Wilhelm-Stemmer-Weg(빌헬름 슈템머 베그): 교사이며 정치가인 빌헬름 슈템머(1909-198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45-65년간 비엔나시교육위원으로서 전후의 학교건물 복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945-73년간 헤르날스를 대표하는 주정부의원, 지방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65-73년간에는 의장으로 있었다.

- Winklergasse(빈클러가쎄): 기업가인 미하엘 빈클러(1822-189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862년부터 비엔나의 주소시스템을 개발하여 응용토록 했다. 이에 의하면 비엔나 중심지를 중심으로 방사선형태로 주소를 정하도록 했으며 거리의 양쪽에 늘어선 건물에 대하여는 홀수와 짝수로 구분하도록 했고 옆길의 주소는 시계방향으로 돌도록 했다. 이를 빈클러 시스템(Winklersches System)이라고 부른다. 그는 집주소 및 거리주소 표지판을 제작하였다.

 

빈클러가쎄

 

- Wurlitzergasse(불리처가쎄): 오타크링에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개설한 파울 불리처(1784-1857)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커피하우스 개점 문제로 이웃인 마티아스 간스테러와 해묵은 분쟁을 했다. 그리하여 자기 상점의 옆에 새로운 커피하우스를 개설할수 있었다.

- Zeillergasse(차일러가쎄): 법조인인 프란츠 폰 차일러(751-182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 법과 교수를 거처 1803-07년에는 학장을 지냈다. 오스트리아의 민사소송법 체제를 완성하였다.

- Zwerngasse(츠베른가쎄): 이 지역의 경작지 명칭이다. 츠베른이라는 단어는 십자로를 말한다.

               프란츠 폰 차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