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브라질의 이사벨라

브라질 제국(Empire of Brazil)의 흥망

정준극 2010. 11. 24. 09:51

브라질 제국(Empire of Brazil)의 흥망

 

지구 저 편의 브라질은 우리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유럽보다도 관심을 덜 가지게 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도 일고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도 한 때는 위대한 제국이었다. 1822년부터 1889년까지 67년을 제국으로서 지탱하였다. 제국으로 있었던 것이 위대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때도 있었다는 얘기다.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는 포르투갈 왕실의 혈통을 이어 받은 페드로 1세였으며(1822-1831) 2대 황제 겸 마지막 황제는 그의 아들인 페드로 2세(1831-1889)였다. 그러나 제국의 막바지에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의 자격으로서 제국을 통치한 사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섭정이라고 하면 황제나 국왕이 나이가 어리거나 병마와 싸우고 있어서 모후나 삼촌 등이 맡지만 브라질 제국의 경우에는 황제의 큰 딸, 즉 황제 후계자로 지명된 이사벨라 공주가 섭정으로서 잠시나마 제국을 통치하였다. 아버지인 황제가 외국 여행을 다니는 기간에 직무대리로서 제국을 통치하였다. 아버지 황제가 자주 해외 여행을 나가면 어떤 때는 1년이 넘게 집에 오지 않으므로 아무리 직무대리라고 하지만 권위가 당당했다. 이사벨라 공주가 황제의 직무대리를 했으면 했지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은 대단했다. 가장 대단한 치적은 브라질의 오랜 고질인 노예제도를 독단으로 과감하게 폐지한 것이다.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브라질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며 인간이하의 대접을 했었다.

 

브라질 제국의 영명한 군주역할을 한 이사벨 공주 

 

그러한 입장에서 마침내 이사벨 공주가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1888년의 일이었다. 이사벨을 브라질의 링컨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선행에 대하여 불만을 품는 인간들이 없을수가 없었다. 이른바 지배층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층은 옳지 않은 일을 위해서는 서로 단결을 잘 하는 법이었다. 제국에 반기를 들고 왕정타파를 주장했다. 그리하여 67년의 브라질 제국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현재의 공화국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브라질 제국(Imperio de Brasil)이 탄생한 배경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코자 한다. 유럽을 정복하여 하나의 커다란 나라로 만들고 싶어했던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의 끝에 있는 비교적 작은 나라인 포르투갈도 점령하였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는 비교적 작은 나라이지만 보라! 남미에서는 브라질을 식민지로 가질만큼 대단한 나라였다. 바스코 다 가마의 기여가 컸었다. 1807년 나폴레옹이 포르투갈 왕국을 점령했을 당시에 포르투갈은 브라간사스(Braganzas 또는 포르투갈어로 Bragancas) 왕가가 통치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점령하자 섭정왕자인 요아오6세(Joao VI: John VI)를 비롯한 브라간사스의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식민지인 브라질행 배를 탔다.

 

나폴레옹이 포루투갈을 점령하자 브라질로 추방당한 요아오(요한)6세. 요아오6세는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말하자면 망명정부 형태의 포르투갈 제국을 수립하였다. 참으로 훌륭하게 생겼다.

 

브라질에 온 요아오6세는 브라질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브라간사스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인 것을 어여삐 여겨 이들의 요청대로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새로운 포르투갈 왕국을 수립하였다. 명칭은 '포르투갈 제국'(Portuguese Empire)이었다. 그후 1815년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제국의 이름을 '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르베스 대제국'(United Kingdom of Portugal, Brazil and the Algraves)이라고 변경했다. 본국인 포루트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서도 포르투갈과 알가르베스 지역을 포함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알가르베스(아랍어로 서부라는 뜻)는 포르투갈 국토의 서남단에 있는 작은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독립을 주장해온 곳이었다. 그러던 차에 유럽 대륙에서의 정세가 심상치 않게 변화하고 있었다. 포르투갈 독립지사들은 영국과 연합하여 나폴레옹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1815년쯤 해서는 객지에 나가있던 요아오6세가 귀국해서 다시 국왕이 되어도 좋을만한 사정이 되었다. 포르투갈의 대신들은 브라질에 있는 요아오6세에게 연락하여 이젠 국내 사정이 종전처럼 평온해 졌으니 돌아오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그럭저럭 안락하게 지내고 있던 요아오6세는 당장 귀국하지 않고 눌러 붙어 있다가 1820년 브라질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요아오6세에게 포르투갈로 돌아가라고 하자 어쩔수 없이 1821년에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돔 페드로1세 황제

 

하지만 요아오6세는 포르투갈로 돌아가면서도 브라질 제국에 미련이 있어서 아들 페드로1세를 브라질 담당으로 남겨 놓았다. 1822년 요아오6세가 다시 브라질로 가서 브라질 제국이라는 것이 확실히 포르투갈의 속령이라는 것을 다짐하고자 했다. 요아오6세는 아들 페드로1세에게 브라질을 잘 관리하고 있으라고 당부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지배층은 기왕에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당하고 페드로1세를 초대 황제로 하는 새로운 브라질 제국을 수립하였다. 1822년 9월 7일이었다. 이 제국이 1889년 11월 15일 공화국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67년간 지속되었다. 페드로1세 황제의 아버지인 요아오6세는 어떻게 되었는가? 포르투갈이 브라질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명목상으로만 브라질 황제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는 브라질에 오지 못하도록 했다.

 

요아오6세가 리우 데 자네이로에 거처했던 황궁. 빈약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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