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브라질의 이사벨라

레이 아우레아(Lei Aurea)

정준극 2010. 11. 24. 16:59

레이 아우레아(Lei Aurea)

  

도나 이사벨의 레이 아우레아 공표를 찬양하는 그림. 십자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이사벨 공주이다. 그 옆에는 남편인 갸스통 백작이 서 있으며 어린아이는 이사벨의 아들인 페드로이다.

 

레이 아우레아(Lei Aurea)는 1888년 5월 13일 제정된 브라질의 노예제도 폐지법을 말한다. 너무나 귀중한 법이기에 레이 아우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번역하면 황금법(Golden Law))이다. 신약성경에도 황금률(Golden Rule)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의 말씀이다. 브라질의 레이 아우레아라는 표현은 아마 성경말씀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인듯 싶다. 레이 아우레아는 이사벨 공주(당시에는 황제 직무대리, 즉 섭정)이 공포했다. 이로 인하여 이사벨 공주는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레이 아우레아는 단 두 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다. 법률 치고는 대단히 간단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이날로부터 브라질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됨을 선포한다. (From this date, slavery is declared abolished in Brazil.)

제2조 이와 함께 모든 노예양도는 무효로 한다. (All dispositions to the contrary are revoked.)

 

1887년의 돔 페드로2세 황제. 당시 61세였다.

 

실상 브라질에는 노예제도와 관련하여 두가지 법이 있었다. 1871년에 제정된 '리오 브랑코 법'(Rio Branco Law)와 1885년에 제정된 '사라이바 코테기페 법'(Saraiva-Cotegipe Law)라는 것이다. 리오 브랑코 법은 '자유 탄생법'(Law of Free Birth)라고도 한다. 노예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어린이는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를 갖는다는 법이다. 사라이바 코테기페 법은 일명 '60세법'(Law of Sexagenarians)이라고도 부른다. 어떤 노예든지 60세가 되면 자유가 된다는 법이다. 레이 아우레아는 이보다 더 발전하여 브라질에서 모든 노예제도를 폐지한다는 법이며 이 법이 발효될 당시에 이미 노예 매매, 증여, 양도 계약이 맺어져 있더라도 모두 무효로 한다는 것이다. 레이 아우레아는 어떤 노예든지 자유롭게 만드는데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는다는 대단히 간단명료한 법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를 얻은 노예에게는 물론이지만 노예를 소유하여 사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어떤 지원도 한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노예소유자들은 노예를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입는 손해에 대하여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노예들도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주인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였으며 국가로부터도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였다. '쪽박을 차던 말던 나는 모르겠다. 일단 노예를 해방한 것으로 그만이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1888년 5월 13일에 공표된 레이 아우레아. 단 한장의 문서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의 규정에 따르면 노예들은 개인적으로 재산을 소유할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한 교육도 받을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비록 자유를 얻었지만 동전한푼 없는 처지인데다가 배운 것도 없으니 노동 이외에는 할 일도 없었다. 그저 목숨을 운명에 맡기고 살수 밖에 없었다. 노예들은 브라질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브라질은 현대 사회에서 사회 계층간의 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브라질이 오늘날 까지도 계층간에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무런 대책도 없는 노예제도의 폐지에서도 원인을 찾을수 있다.

 

산 파울로의 반데이란테스 궁전(Palacio dos Bandeirantes)에 그려진 노예해방(Libertacao dos Escaravos) 기념화. 페드로 아메리코(Pedro Americo) 작품.

 

레이 아우레아는 브라질 의회의 상하 양원을 거친 후에 이사벨의 재가를 얻어 공표되었다. 레이 아우레아가 공표된데에는 상원의원 겸 농업장관인 로드리고 다 실바(Rodrigo da Silva)의 적극적인 주도가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로드리고 다 실바 의원은 브라질 노예폐지의 아버지라는 말도 듣고 있다. 이사벨 공주의 재가를 받아 공표된 것은 당시 황제인 돔 페드로2세가 유럽 여행중이었기 때문에 섭정(직무대행)인 이사벨 공주의 재가를 받았던 것이다. 이사벨 공주는 나중에 교황 레오 13세로부터 '황금장미'를 받았으며 로드리고 다 실바는 바티칸, 프랑스, 포르투갈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황금장미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에서 '황금장미'를 검색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수 있다.

 

레이 아우레아를 심의한 1888년 5월의 브라질 상원회의

 

브라질에서 노예폐지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물론 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노예제도 반대론자들의 끈질긴 주장도 큰 몫을 하였다. 그보다도 노예를 부린다는 것이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큰 배경이 되었다. 유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쓰는 것이 돈이 덜 들었다. 노예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저 조금만 더 경비를 사용하면 말도 잘 통하고 눈치도 빠른 유럽의 이민자들을 쓸수 있었다. 노예제도에 대한 국제적인 추세도 한 몫하였다. 브라질은 서방 세계에서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이와함께 브라질 정부는 여러 나라로부터 노예제도를 폐지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겉으로는 인권이니 도덕이니 하지만 실상은 경제적인 이유가 다분히 담겨 있는 압력이었다. 영국이 특히 앞장서서 브라질을 보고 어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라고 주문했다. 영국은 노예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나라이다. 그러다보니 식민지에서의 노동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설탕은 브라질에서도 생산되었지만 영국의 서인도제도 식민지에서도 많이 생산되었다. 영국으로서는 브라질의 설탕 생산이 경쟁 상대였다. 그러므로 브라질이 계속 노예를 사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레이 아우레아를 주도한 농업장관 겸 상원의원인 로드리고 아우구스토 다 실바

 

레이 아우레아로 인한 부작용은 이런 면에서도 생각할수 있다. 농장주(화첸데이로스라고 함)들은 노예들이 사라지자 일손이 부족하게 되었다. 어디서든지 일꾼들을 구해 와야 했다. 그리하여 1890년대에 들어서서 Sociedade Promotora de Imigracao(이민촉진협회)를 결성하였다. 이 협회를 통하여 유럽과 아시아, 특히 동구로부터의 이민자들이 브라질에 몰려왔다. 자유를 얻은 노예들은 거의 무조건 도시로 나와서 일자리를 찾으며 배회했다. 세계적인 리우 데 자네이로의 슬럼은 이미 그 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슬럼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점들은 일일히 열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온갖 범죄의 온상이었다. 그런데 레이 아우레아로 인한 더 큰 문제도 간과할수 없다. 노예를 부리던 농장주들과 상류층들이 제국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하여 브라질 제국은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과연, 브라질 왕정의 종말은 레이 아우레아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88년 5월 13일 레이 아우레아 공표 당시 리우 데 자네이로의 왕궁 앞에 모인 군중들. 대부분 이사벨의 결단을 환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