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eral(제느럴): 아일랜드의 악명높은 절도범인 마틴 카힐(Martin Cahill: 1949-1994)의 별명이다. 마틴 카힐은 대담하고 신출귀몰한 도둑이었지만 오히려 한때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는 등 관대한 성품을 보여주어 The General(장군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 카힐은 어떤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능란하게 빠져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때문에 언론은 위대한 전략가라는 뜻에서 The General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틴 카힐은 생전에 우리 돈으로 약 8천억원을 훔쳤다. 그의 생애와 활동을 담은 영화만 해도 여러편이 제작되었다. 마틴 카힐은 평소에 얼굴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려하였다. 언론에 노출될 경우에는 항상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 때문에 온전한 얼굴 모습을 촬영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마땅한 사진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영화를 통하여 그의 모습을 추측할수 있다. 그의 딸인 프란시스 카힐이 'Martin Cahill - My Father'라는 자서전적 책을 썼는데 그 책의 표지에 그나마 작게 마틴 카힐의 사진이 나와 있다.
마틴 카힐의 딸인 프린시스 카힐이 쓴 책의 표지. 하단에 그이 사진이 조그맣게 나와 있다.
마틴 카힐은 더블린 사우스 사이드의 슬럼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등대직이여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지 않았다. 식구는 많고 수입은 적어서 먹는 것조차 넉넉하지 못했다. 마틴 카힐과 형 존(John)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배가 고파서 빵을 훔친 일이 있다. 마틴 카힐은 11살 때에 그나마 살고 있던 집이 무허가여서 도시계획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 살아야 했다. 마틴과 형 존은 수시로 학교를 빠지면서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틴은 15세 때에 해군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전과기록 때문에 거절당했다. 16세 때에는 두번이나 도둑질을 하다가 체포되어 오팔리(Offaly)군에 있는 어떤 수도원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에 들어가는 판결을 받았다. 이곳을 나온 마틴은 더블린의 집으로 돌아갔으나 살던 집은 월세를 내지 못하여 더블린시청에 의해 쫓겨난 후였다. 마틴의 가족은 더블린 교외의 라트마인스(Rathmines)라는 곳에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건물에 들어가 살수 있었다. 마틴의 가족들이 들어간 곳은 말이 건물이지 실제로는 노숙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신세였다. 얼마후 마틴은 프란시스 롤레스(Frances Lawless)라는 이웃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어 없는 살림이었지만 결혼하였다. 마틴은 먹고 살기 위해 형과 함께 도둑질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부자집만을 골라 물건을 훔쳤다. 어떤 부자집은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 신문에 나고 경찰이 찾아오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때 마틴은 형과 함께 근처의 병영에 숨어 들어가 무기를 훔치기도 했다. 카힐 브러더스는 무장 절도단이 되었다. 마틴은 절도에서 두가지 원칙을 두었다. 첫째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서는 절대로 훔치지 않는다는 것이며 둘째는 마약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틴의 동생인 피터 카힐은 한때 헤로인을 공급한 죄로 기소되기도 했었다.
영화 The General 에서 마틴 카힐의 모습(브렌단 글리슨 역). 항상 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 배우 브렌단 글리스은 마틴 카힐의 모습과 대단히 흡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1978년 더블린 시청(Dublic Corporation: 1661년 이래 2002년까지의 명칭이었다. 줄여서 The Corpor 라고 불렀다.)은 마틴의 가족들과 다른 무주택자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홀리필드(Hollyfield) 건물을 철거키로 했다. 마틴은 무주택자들의 숙소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하다가 체포되어 4년형을 살았다. 감옥에서 나온 마틴은 시당국에 항의하는 뜻에서 폐허가 된 홀리필드 건물의 장소에 가천막을 세우고 계속 지냈다. 연일 매스컴의 세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더블린 시장인 벤 브리스코(Ben Briscoe)가 직접 마틴을 찾아와 설득하여 마틴은 라트마인스 구역의 새 집으로 이사갈수 있었다. 마틴 카힐과 그의 동료 갱들은 해롤드 크로스(Harolds Cross)에 있는 오코너(O'Connor)보석공장을 털어 2백만 아일랜드 파운드(약 255만 유로 상당)의 다이어몬드와 금을 훔쳤다. 이로 인하여 보석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으며 약 1백명에 달하는 보석공장 종업원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 마틴 카힐은 유명한 러쓰보로 하우스(Russborough House)에 침입하여 귀중한 그림들을 훔쳐갔으며 나선 김에 더블린의 나이트 클럽 지역에 있는 몇군데의 식당과 핫덕 상점을 털었다.
더블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저택인 러쓰보로 하우스. 카힐은 일당과 함께 이 저택의 주인인 베이트여사의 소장 미술품을 교묘하게 훔쳐갔다.
1994년 8월 18일 마틴 카힐은 라트마인스에 있는 집에서 나와 자동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비디오 가게에 며칠 전에 빌려온 A Bronx Tale 이라는 비디오를 반납하러 갔다. 마틴이 옥스포드 로우드와 챨스턴 로우드의 네거리에 도착했을 때 어떤 괴한이 달여와서 그의 얼굴과 가슴에 매그넘 총을 쏘아댔다. 범인은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틴 카힐의 장례식은 로마 가톨릭 진혼미사로서 치루어졌다. 마틴 카힐은 마운트 제롬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2001년이래 오늘날까지 마틴 카힐의 묘지는 괴한들에 의해 세번이나 손상을 입었다. 비석을 깨트리기도 하고 묘지를 파헤치기도 했다.
더블린의 마운트 제롬 공동묘지. 악명 높은 마틴 카힐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누가 마틴 카힐을 죽였느냐에 대하여는 몇가지 주장이 있다. 마틴 카힐이 총격을 당하여 죽은지 불과 몇 시간 후에 IRA 급진파(Ireland Republic Army Provisional: Provos 라고도 부름)는 보도자료를 내고 자기들이 마틴 카힐을 처치했다고 주장했다. 마틴 카힐이 북아일랜드의 IRA 적대부대에 속한 포르타다운(Portadown) 마을 부대를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포르타다운은 30년이 넘게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영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민병대성격의 세력(이를 Ulster Volunteer Forse: UVF라고 부름)간에 전투를 벌여온 곳이다. 포르타다운 세력은 심지어 더블린까지 침투하여 테러 행위를 감행하였다. UVF는 1994년 5월 더블린에서 북아일랜드 돕기 모금행사를 하고 있던 어떤 주점을 공격하였다. 이 주점의 도어맨인 마틴 도허티(Martin Doherty)라는 청년이 UVF 분자들의 난입을 저지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마틴 도허티는 IRA의 더블린 여단의 지원병이기도 했다. IRA는 마틴 카힐이 더블린의 UVF에게 무기를 팔았기 때문에 테러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마틴 카힐의 일단이 러쓰보로 하우스에서 훔친 베이트여사(Lady Beit)의 소장품을 UVF에게 팔아 넘긴 일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UVF는 그림을 밀매하여 돈을 마련하여 남아공으로부터 총을 사는데 썼다는 것이다. 이로써 마틴 카힐은 IRA의 제거목표 1순위에 들어가게 되었다.
더블린 시청. 전통적으로 더 코르포(The Corpo)라고 불렀다. Dublin Corporation의 약자였다.
다른 이유는 아일랜드의 범죄 저널리스트인 폴 윌리엄스의 소설 The General 에 수록된 내용에 따른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마틴 카힐은 후배 갱들인 존 길리간과 존 트레이노가 마약 밀수를 하는 것을 제지하였으나 일단 밀수가 성사되고 돈을 받아오자 카힐이 후배들에게 이익금의 일부를 내어 놓으라고 요청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후배들이 IRA를 찾아가 마틴 카힐이 마약 밀수에 관여하였으며 그 돈으로 UVF를 지원코자 하고 있다는 식으로 고해바쳤다. IRA는 마약 밀매를 극히 증오하였다. 왜냐하면 마약이 아일랜드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IRA는 마틴 카힐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안되겠다고 판단하여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틴 카힐도 마약에 대하여는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폴 윌리엄스의 소설 The General 에 나온 얘기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또 다른 주장은 후배인 존 길리간(John Gilligan)이 마틴 카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인 헨리 맥도날드라는 사람이 특히 그러한 주장을 내세웠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길리간은 1993년 감옥에서 나와 마틴 카힐로부터 40만 파운드를 빌렸다. 이 돈은 마틴 카힐이 러쓰보로 하우스의 베이트여사 소장품을 도둑질하여 마련한 돈의 일부였다. 길리간은 빌린 돈으로 화란으로부터 카나비(Cannabi: 마리화나)를 수입하는데 사용했다. 마틴 카힐이 길리간에게 카나비를 판매하여 생긴 이익금으로 빌려간 돈과 이자를 합쳐 백50만 파운드를 갚으라고 요구하자 길리간은 골치덩이 보스인 카힐을 제거키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길리간은 더블린해방군(INLA) 장교를 만나 카힐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길리간은 암살자에게 2만6천 파우드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어서 길리간은 IRA의 간부로서 더블린에서 경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뇌물을 주고 IRA가 카힐을 죽였다고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카힐이 저격을 당하여 죽자마자 IRA 본부에 연락하여 자기들이 카힐을 제거했다고 보고했다. 그리하여 IRA 본부는 자기들의 간부가 카힐을 저격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IRA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유명한 영화베우 케빈 스테이스는 영화 Ordinary Decent Criminal 에서 마틴 카힐의 역할을 맡았다.
1998년에 존 부어맨(John Boorman)은 폴 윌리엄스의 소설 The General을 마틴 카힐의 자서전적 영화로 만들었다. 유명한 배우 브렌단 글리슨(Brendan Gleeson)이 마틴 카힐의 역할을 맡았고 존 보이트(Jon Voight)가 네드 케니 형사의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칸느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때에 감독인 부어맨의 집에 카힐이 침입한 일이 있었다. 카힐은 부어맨이 감독한 영화 Deliverance에 삽입된 벤조 듀엣으로 골드 디스크를 받은 금제 상패를 훔쳐갔다고 한다. The General 영화에는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이 잠시 비추어진다. 2003년의 영화 Veronica Guerin에는 존 길리간이 마틴 카힐의 살해에 연관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길리간이 카힐의 부하가 아니라 라이벌 갱단의 보스로 등장한다. 케빈 스페이스(Kevin Spacey)가 주연한 Ordinary Decent Criminal도 The General에서 스토리를 가져온 것이다. 2004년에 매튜 하트(Matthew Hart)는 The Irish Game: A True Story of Crime and Art 라는 소설을 발간했다. 1986년 카힐이 관련된 러쓰보로 하우스의 미술품 도난사간을 다룬 것이다. 마틴 카힐의 딸인 프란시스 카힐은 2007년에 Martin Cahill - My Father 라는 자서전적 책을 펴냈다.
존 부어맨이 감독하고 브렌단 글리슨이 마틴 카힐의 역을, 존 보이트가 네드 형사역을 맡은 영화 The General의 포스터
'Simple English Class > 소브리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d's Own Land(신의 땅) (0) | 2010.12.08 |
---|---|
God(신) (0) | 2010.12.08 |
Freddie Mercury(프레디 머큐리) (0) | 2010.12.07 |
Elephant Man(엘레판트 맨) - 코끼리 인간 (0) | 2010.12.06 |
Emerald Isle(에메랄드 아일) - 아일랜드 (0) | 201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