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English Class/소브리케

The Hick from French Lick(프렌치 리크에서 온 시골뜨기)

정준극 2010. 12. 9. 07:39

The Hick from French Lick(프렌치 리크에서 온 시골뜨기): 농구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이라면 래리 버드를 모를 리가 없다. 레리 버드는 매직 존슨에 버금하는 유명한 농구선수이다. The Hick from French Lick 라는 별명은 Larry Bird(래리 버드: 1956-)에게 붙여진 것이다. Hick 라는 단어는 시골뜨기, 촌놈이라는 뜻이며 Lick 라는 단어는 핥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프렌치 리크라고 하니까 프렌치 키스 등을 연상하여서 혹시 요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프렌치 리크는 마을 이름이다. 프렌치 리크라는 마을은 인디애나주 오렌지 카운티에 있으며 래리 버드가 자란 곳이다. 래리 버드는 원래 프렌치 리크의 옆 마을인 웨스트 바덴(West Baden)에서 태어났지만 두 마을이 서로 붙어 있어서 한 마을이나 마찬가지이다. 래리 버드가 농구선수로서 이름을 떨치자 사람들은 그를 '프렌치 리크에서 온 히크(시골뜨기)'라면서 애정어린 별명을 붙여 주었다. 레리 버드는 NBA 경력을 통해 통산 21,791 점을 기록하였다. 게임당 24점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키가 2m 6cm였던 그는 리바운드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통산 9,87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게임당 10개가 된다. 래리 버드의 경력이나 활동상에 대하여는 농구 팬들이 더 잘 알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그의 가정에 대하여는 한마디 하고자 한다.


백넘버 33번의 래리 버드.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던 때였다. 1985년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혼자 60점을 넣었다.

 

래리 버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하루 하루 끼니를 때우기가 힘든 날도 많았다. 아버지 조셉 조 버드(Joseph 'Joe' Bird)는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조 버드는 한국전에서 북한 공산군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여 그 후유증에 시달렸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일자리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조 버드는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생길 지경이었다. 어머니 조지아(Georgia)가 식구들을 보살펴야 했다. 래리의 어머니는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의 집에 파출부로 나가서 일했고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였다. 어머니에게는 아이들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예를 들어 은행에 갚을 돈이 있고 아들 래리의 운동화가 헤어져서 새로 사아야 형편이면 헌 운동화를 들고 은행을 찾아가 자기가 어떤 것을 택하면 좋겠느냐고 얘기하여 은행에 돈을 갚는 것을 연기받은 일도 있다. 그런 중에 아버지 조 버드는 알콜 중독이 되어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한국전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였고 당국으로부터 따듯한 지원을 받지 못하여서였다. 결국 래리의 부모는 1975년, 래리가 19살 때에 이혼하였다. 그 해에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조 버드는 자살하여 괴로운 인생길을 마감하였다.

 

래리 버드는 농구장학생으로 인디애너주립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래리는 무슨 생각을 했던지 고등학교 시절의 여자친구였던 자넷 칸드라(Janet Condra)와 결혼하였다. 결혼생활은 11개월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편, 자넷은 딸을 낳아 길렀다. 1977년에 태어났다. 자넷은 딸의 이름을 코리 버드(Corrie Bird)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10년후, 래리는 유명한 농구선수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코리는 잘 자라서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 1988년에 코리는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자기가 래리 버드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래리 버드에게 큰 딸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사실 래리는 자넷과 이혼하고나서 자넷으로부터 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래리는 그럴리가 없다고 하면서 부인해 왔다. 그러기를 십수년이 지났다. 코리가 아버지인 래리 버드를 처음 만난 것은 코리가 17세 때였다. 하지만 래리로서는 딸 코리와 만나는 것을 크게 선전할 일도 아니어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코리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서 래리가 아버지라고 밝히자 스토리를 좋아하는 스포츠 잡지들은 물론, 일반 잡지들도 래리와 코리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석했다. 코리는 역시 아버지 래리의 핏줄을 이어 받았기 때문인지 여자 농구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인 인디애나주립대학교를 다녔다. 전공은 아동교육학이었다. 래리는 1989년에 다이나 매팅리(Dinah Mattingly)와 결혼하여 아들 카너와 딸 마리아를 두었다. 가난에 찌들려서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농구만 했던 래리 버드는 2009년에 저 유명한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래리에 대한 인기가 얼마나 높았느냐는 것은 다음의 에피소드에서 알수 있다. 오클라호마 시티에 사는 에릭 제임스 토르피라는 청년이 있었다. 2005년에 강도 및 살인미수로 30년의 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그 청년은 33년으로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래리 버드의 등번호가 33번이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별일이 다 있다. 래리 버드는 영화에 세번이나 출연하였다. 1994년도 파라마운트의 Blue Chips 라는 영화와 1996년에 워너 스라더스가 제작한 Space Jam 이라는 영화, 그리고 역시 1996년에 나온 Celtic Pride 라는 작품이었다. 모두 농구에 대한 영화였다. Space Jam에는 마이클 조단, 빌 머레이도 함께 출연하였다. 비디오 게임에도 래리 버드를 주인공으로 삼은 프로그램이 여럿 있다. Jordan vs Bird: one on one 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스턴에 본거지를 둔 Dispatch 라는 밴드는 Just Like Larry 라는 노래를 작곡하여 인기를 끌었다. 래리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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