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십자군 오페라

십자군과 오페라

정준극 2011. 11. 3. 05:53

십자군과 오페라

 

이탈리아의 서사시인인 토르쿠아토 타쏘. '예루살렘 해방'을 썼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오페라들의 소재를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져온 것이 가장 많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엘렉트라, 알체스테, 외디푸스, 디도와 이니아스, 세멜레, 율리시스, 다프네, 메데아, 테세우스,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소재가 아마 십자군에 대한 것일 것이다. 십자군을 소재로 한 오페라는 중세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십자군에 관한 오페라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도 있지만 단순히 전설을 기본으로 삼은 것도 상당수가 있다. 십자군 오페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갈릴리의 왕'이라고 하는 탄크레디(Tancredi: 1075-1112)일 것이다. 그 다음이 프랑크의 기사인 '부이용의 고드프리'(Godfrey of Bouillon: 1060-1100), 12세기의 음유시인으로서 '블라예의 공자'(Prince of Blaye)인 조프르 루델(Jaufre Rudel) 등이다. 탄크레디는 1차 십자군전쟁에서 노르만 병사를 이끈 기사로서 나중에 '갈릴리 공자'와 '안티옥 공국의 섭정'(Regent of Principality of Antioch)을 지낸 인물이다. 부이용의 고드프리 역시 1차 십자군 전쟁의 사령관으로서 1099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함락하는데 큰 공을 세워 예루살렘 왕국의 통치자(Ruler)가 된 인물이다. 그는 왕(King)이라는 타이틀은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므로 세상의 통치자들은 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주장하여 왕이라는 칭호를 버리고 스스로를 그저 통치자라고만 불렀다. 조프르 루델은 2차 십자군 전쟁의 기사로서 Love from afar(Amour de loin)이라는 사랑의 주제를 인용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조프르 루델이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십자군 관련 오페라의 대부분은 배경을 성지 예루살렘, 또는 주변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설정했으며 내용은 기독교도와 무슬림간의 전투에 대한 것이 중심을 이룬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기사들의 불행을 다룬 내용도 있다. 예를 들면 도니체티의 Gabriella di Vergy(베르지의 가브리엘라)이다. 라울(Raoul)이라는 기사가 제3차 십자군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와 정혼한 가브리엘라는 라울이 전사한줄 알고 이미 파옐(Fayel)이라는 귀족과 결혼한 후였다. 라울과 파옐이 결투를 벌인다. 라울이 죽임을 당한다. 파옐은 라울의 심장을 꺼내어 작은 단지에 담아 가브리엘라에게 주어 먹으라고 한다. 가브리엘라는 분노와 원통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다. 십자군과 관련한 오페라 중에서 유일한 코미디는 로시니의 '오리 백작'(Le comte Ory)일 것이다. 오리 백작과 그의 친구들은 남편들이 십자군 전쟁에 나갔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포르무티에(Formoutier) 백작부인 등을 유혹코자 하며 이로써 벌어지는 웃기는 사건들이 내용이다. 오리 백작은 수녀원에 머물고 있는 백작부인 등을 유혹하기 위해 수녀로 가장하여 접촉하지만 그때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기사들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탄크레디'. 도이체 오퍼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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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해방과 오페라

            

십자군 관련 오페라의 대본은 주로 이탈리아의 토르쿠아토 타쏘(Torquato Tasso: 1544-1595)가  1580년에 내놓은 La Gerusalemme liberata(Jerusalem Delivered: 예루살렘 해방)과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가 1732년에 발표한 Zaïre(자이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볼테르의 연극은 자이르라는 여인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것으로 그러한 운명은 그 여인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질투심에 불타는 무슬림 연인과 자이르의 친구로서 인내심이 없는 기독교도의 분규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토르쿠아토 타쏘는 자기 자신을 심히 자학한 인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Torquato Tasso는 비록 십자군 전쟁과는 관련이 없지만 타쏘의 험난한 생애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는 십자군 관련 오페라는 대부분이 토르쿠아토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예를 들면 헨델의 '리날도'이다. 이밖에 십자군 관련 오페라의 기본이 된 작품들은 니콜로 포르트게리(Niccolò Forteguerri)의 1735년도 서사시인 Il Ricciardetto(리키아르데토), 도르몽 드 블리오(Dormont de Belloy)의 1777년도 희곡인 Gabriella de Vergy(베르지의 가브리엘라), 장 안투안 마리 몽페를리에(Jean-Antoine-Marie Monperlier)의 1813년도 희곡인 Les Cheval!iers de Malte(말타의 기사들), 아우구스트 폰 코체부이(August von Kotzebue)의 1820년도 희곡인 Die Kreuzfahrer(십자군), 월터 스콧 경(Sir Walter Scott)의 1825년도 소설인 The Talisman(탈리스만), 토마소 그로씨(Tommaso Grossi)의 1826년도 서사시인 I Lombardi alla prima croaciata(롬바르디의 첫 십자군) 등이 있다.

 

'예루살렘 해방'의 한 장면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을 바탕으로는 최소한 1백 편의 오페라가 힌트를 얻어 작곡되었다. 타쏘가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대서사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직도 학생시절이었으며 완성한 것은 그가 30세가 되던 해인 1575년이다. '예루살렘 해방'의 등장인물들은 실존인물들도 있지만 타쏘가 창조해 낸 전설적인 인물들도 있다. 타쏘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주인공들인 리날도(Rinaldo)와 아르미다(Armida)는 오페라의 주제로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리날도와 아르미다의 사랑 이야기는 '예루살렘 해방'에서 가장 유면한 에피소드로서 약 50편의 오페라가 이 에피소드를 주제로 삼아 작곡되었다. 리날도와 아르미다를 주제로 하여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긴 것은 수도 없이 많다. 다음은 '예루살렘 해방'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에르미니아가 부상당한 탄크레디를 발견하고 치료해 준다.

 

['예루살렘 해방'의 등장 인물들]

 

고프레도(Goffredo: Godfrey of Bouillon): 1차 십자군을 이끈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중에 예루살렘 왕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타쏘의 La Gerusalemme liberata의 처름 타이틀은 실제로 Il Goffredo(고프레도) 이다.

 

피에트로 레레미타(Pietro l'eremita: Peter the Hermit: 은자 피터): 십자군 병사들의 정신적인 리더이다.

 

탄크레디(Tancredi, Prince of Galilee): 노르만 기사로서 갈릴리와 안디옥의 통치자가 되었다. 탄크레디는 베아른의 갸스통 4세(Gaston IV, Viscount of Béarn)와 함께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이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을 때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인물이다. 타소의 서사시에서는 탄크레디가 클로린다(Clorinda)와 사랑에 빠지지만 무슬림인 안디옥 왕의 딸인 에르미니아(Erminia)도 탄크레디를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리날도(Rinaldo): 타쏘가 서사시에서 만들어낸 인물로서 용감한 기독교 기사이다. 타쏘는 그의 후원자인 페라라의 공작 '에스테의 알폰소 2세'(Alfonso II d'Este)에게 감사의 뜻으로 '예루살렘 해방'에서 탄크레디를 에스테 가문의 선조로 그려 놓았다. 리날도라는 이름은 아리오스토(Ariosto)의 서사시 Orlando Furioso(광폭한 올란도)에 등장하는 리날도 디 몬탈바노(Rinaldo di Montalbano)에서 따온 것이다. 리날도는 아르미다의 마력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탈출하여 감람산을 찾아가 사랑 때문에 기독교를 버렸던 것을 참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에 참가한다. 이 플롯은 탄호이저가 비너스에게 빠져 환락 중에 있다가 다시 순례자가 된다는 내용과 연관이 있다.

 

아르미다(Armida): 역시 타쏘가 서사시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다메섹(다마스커스) 출신의 아름다운 귀부인으로서 마법사이기도 하다. 아르미다의 할아버지로서 다메섹의 통치자인 이드라오테(Idraote)도 마법사이다. 아르미다는 자기의 미와 마법으로 기독교 십자군들을 유혹하여 결국 십자군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아르미다는 십자군의 용감한 기사인 리날도는 유혹하여 마법의 섬으로 데려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얼마후 리날도가 정신을 차리고 전쟁터로 떠나자 아르미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르미다의 설정은 호머의 치르체(Circe)와 아리오스토의 알치나(Alcina)와 같은 맥락이다.

 

리날도가 아르미다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장면

 

에르미니아(Erminia): 타쏘가 창조한 인물이다. 에르미니아는 안디옥의 왕(카싸노)의 딸이다. 안디옥 왕은 십자군이 안디옥을 점령하였을 때 전사했다. 십자군의 탄크레디는 에르미니아를 존경하여 그를 보호한다. 이에 에르미니아는 탄크레디를 사랑하게 된다. 에르미니아는 탄크레디가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울 때 안디옥 백성들을 배반하고 특별한 약초를 찾아 탄크레디를 치료하여 살린다. 에르미니아는 탄크레디가 클로린다(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왕의 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질투심에 탄크레디를 버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클로린다(Clorinda): 무슬림 편에서 기독교 십자군과 싸운 용감한 전사이다. 클로린다는 실제로 에티오피아 기독교 왕의 딸이다. 하지만 클로린다는 백인으로 태어났다. 클로린다의 어머니는 에티오피아의 백성들이 백인으로 태어난 클로린다를 자기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믿지 않자 하인인 아르세테(Arsete)를 시켜 클로린다를 이집트로 도피케 한다. 클로린다는 이집트에서 무슬림으로 양육된다. 탄크레디와 클로린다는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예루살렘에 대한 마지막 공격 때에는 전쟁터에서 대적한다. 그러나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클로린다는 탄크레디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클로린다는 죽으면서 탄크레디에게 기독교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소프로니아(Sofronia)와 올린도(Olindo): 역시 서사시에서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손에 함락되기 전에 살던 기독교도 연인들이다. 예루살렘의 무슬림 통치자인 알라디노(Aladino)가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을 때 이들도 함께 처형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클로린다가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여 화형 직전에 구해준다.

 

아르간테(Argante):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성미가 급하여 격하기 쉬운 사라센의 전사로서 이집트 왕의 사자였다. 아르간테는 결국 탄크레디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이스메네(Ismene):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무슬림 왕인 알다디노를 섬기는 마법사이다. 어느때 이스메네는 알라디노 왕에게 기독교도의 성전에 있는 성모의 성화를 훔쳐와서 모스크에 걸어 놓으면 왕도 마법을 행할수 있다고 설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