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십자군 오페라

볼테르와 자이르

정준극 2011. 11. 3. 05:58

볼테르와 자이르 

                 

볼테르는 필명이며 원래 이름은 François-Marie Arouet 이다.

          

볼테르의 자이르(Zaïre)는 '자라의 비극'(The Tragedy of Zara)라고도 한다. 173323년 8월 13일 파리의 생 제르맹에 있는  Théâtre de la rue des Fossés 에서 초연되었다.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 여인의 비극적인 운명은 그 여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질투심에 불타는 연인과 인내심이 없는 기독교인 친구에 의해서 결정지어진 것이라는 내용이다. '자이르'의 스토리는 실화에 기본을 둔 것이 아니라 가공된 면이 많다. 뤼시냥(Lusignan) 가족과 샤티용(Chatillon)가족간의 사건이라고 되어 있지만 비유일 뿐이며 확실한 것은 볼테르가 살던 시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리지널 프랑스어로 된 극본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오로스망(Orosmane: Osman): 예루살렘의 술탄이다.

자이르(Zaïre: Zara): 기독교 노예로서 오로스망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무슬림 군대가 이스라엘의 가이사라(Cesarea: 세사리아)를 포위했을 때 어린아이로서 납치되었다.

네르스탕(Nérestan): 프랑스의 기사로서 자이르의 오빠이지만 그 사실을 서로 모른다.

뤼시냥(Lusignan): 기독교도인 예루살렘 공자의 후손이다. 현재는 술탄의 포로가 되어 있다. 자이르의 아버지이지만 서로 알지 못한다.

화탱(Fatime: Fatima): 술탄의 노예소녀로서 자이르의 친구이다.

샤티용(Châtillon): 프랑스의 기사로서 네르스탕의 친구이다.

코라스맹(Corasmin)과 멜레도(Mélédor): 술탄의 장교들이다.

 

이 희곡의 멜로드라마적인 스토리와 동양적인 배경은18세기 후반과 19세기초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으로서 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의 테마로 즐겨 사용했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오페라로서는 13편이 있다. 가장 먼저 나온 오페라 중의 하나는 1805년 초연된 피터 윈터(Peter Winter)의 Zaire(자이르)이다. 런던의 킹스 티어터(The King's Theatre)에서 초연되었으며 이탈리아의 유명한 콘트랄토인 주세피나 그라씨니(Giuseppina Grassini)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벨리니도 1829년에 Zaira(자이라)를 발표했다. 역시 볼테르의 희곡을 기본으로 한 오페라이다. 파르마의 테아트로 레지오(Teatro Regio)의 오프닝을 위해 작곡했으나 불행하게도 초연이 실패하여 그 이후로는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인 Zaide(자이데)는 1778년의 징슈필인 Das Serail(The Seraglio: 하렘: 후궁) 또는 The Unexpected Reunion of Father, Daughter and Son in Salvery(노예인 아버지와 딸과 아들의 뜻밖의 만남)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모차르트의 22개 전체 오페라 중에서 유일하게 모차르트의 생전에 공연되지 못하고 186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되었다. 이밖에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인 조셉 니콜라스 팡크라스 로이어(Joseph Nikolas Pancrace Royer: 1705-1755)의 Zaïde, reine de Grenade(그라나다의 여왕 자이드)가 있으며 현대작곡가로서는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가 모차르트의 Zaide에서 서곡 등을 인용하여 작곡한 Vor, während, nach Zaide(자이데의 전, 중, 후)가 있다. 이스라엘의 작곡가인 Chaya Czernoowin(1957-)이 작곡한 Adama/Zäide(아다마/자이드)도 모차르트의 Zaide에서 여러 파트를 가져와 완성한 오페라이다.

 

이탈리아의 콘트랄토 주세피나 그라씨(Giuseppina Grassi). 피터 윈터(Peter Winter: 1754-1825)의 오페라 Zaire의 초연에서 자이르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예루살렘 해방'과 '자이르'에 바탕을 둔 오페라 리스트]

 

'예루살렘 해방'을 주제로 삼은 첫 오페라는 아마도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지아코비(Girolamo Giacobbi)가 작곡한 Il Tancredi(탄크레디)일 것이다. 오페라가 아직도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615년에 볼로냐의 어떤 궁전에서 초연되었다. 일반적으로 오페라 다운 최초의 오페라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L'Orfeo(오르페오)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오르페오'는 1607년 2월 만투아의 공작궁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스코어가 정식으로 완전 출판된 것은 1615년의 일이다. 그 해에 지아코비의 '탄크레디'가 볼로냐에서 초연을 가진 것이다. 당시 오페라는 연극의 막간에 짧은 내용의 음악극을 비르투오소 노래로서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말하자면 인터메디(Intermedi)이다. 지아코비의 '탄크레디'도 그런 형태였다. 당시에는 이같은 오페라 형식의 음악극 이외에도 Madrigale concertato(연주회 형식의 마드리갈)도 유행했었다. 성악과 기악을 위한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내용은 주로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17세기 초반, 타쏘의 '예루살렘의 해방'에 바탕을 둔 인터메디로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1612년 로마에서 초연된 인터메디로서 리날도가 포로가 되고 마법에 이끌리며 나중에는 탈출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세트 작품이다. 체사레 마로타(Cesare Marotta)라는 사람이 작곡했다.

- 1629년에는 조반니 로베타(Giovanni Rovetta)가 La lagrime di Erminia(에르미니아의 탄식)을 작곡하여 출판했다.

- 1624년에는 몬테베르디가 Il Combattimento di Tancredi e Clorinda(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결투)를 완성했다. 베니스에서 초연되었다.

- 1637년에는 도메니코 마쪼키(Domenico Mazzocchi)가 Olindo e Sofronia(올린도와 소프로니아)를 작곡했다.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결투' 음반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