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카이저그루프트

카이저그루프트에는 누가 있나?

정준극 2013. 8. 6. 22:32

카이저그루프트에는 누가 있나?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어 있는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관들. 아기 천사들이 초상화를 들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다.

 

카이저그루프트는 기본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들만이 입주 자격이 있다. 정통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샤를르 6세의 서거후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레인의 프란시스와 결혼하는 바람에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이 생겨 그 가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의 사람들도 결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들이다. 카이저그루프트에는 모두 145명의 합스부르크 가문 및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의 사람들의 시신을 담은 관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 합스부르크 및 합스부르크-로레인 가문 사람 중에서 심장만을 담은 단지가 몇 개 보관되어 있으며 아울러 화장을 했을 경우, 유분을 담은 단지들 몇 개를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설명하면 기분이 께름직하고 심지어 섬뜩하기도 하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생의 연장인 것을 생각하면 사실 별것도 아니다. 아무튼 145개의 관과 몇개의 단지들이 10개의 볼트(Vault)에 분산되어 있다. 카푸친교회는 겉으로보면 다른 교회들에 비하여 초라한 편이지만 교회와 이에 연결되어 있는 수도원의 지하에는 생각보다도 규모가 큰 납골당이 있으니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오토의 운구행렬. 슈테판성당을 나와 카푸친교회의 카이저그루프트로 가는 행렬이다. 합스부르크 왕조를 생각케 하는 마지막 장례행렬일 것이다. 유럽의 여러 군주들이 조문객으로 참석한 웅장한 장례였다.

                                        

안치되어 있는 관들들 중에는 황제의 칭호를 받은 사람의 것이 12명개이며 황비의 칭호를 가진 사람의 것이 18개이다. 첫 안치는 1633년에 마티아스 황제와 안나 황비의 관을 안치한 것이었으며 가장 최근의 안치는 2011년 7월 1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를 지낸 오토와 그의 부인 레지나의 관을 안치한 것이다. 합스부르크의 오토(Otto von Habsburg)라고 불리는 오토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칼의 아들로서 1916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2년 후인 1918년 제국이 종말을 고하고 대신 공화국이 들어서자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되어 살아야 했던 사람이다. 오토는 남부 독일의 푀킹이라는 곳에서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오스트리아 정부가 오토의 시신을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하는 것을 허락하여 비엔나에서 엄숙한 장례식을 거행한 후 관례에 따라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기왕에 오토를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하는 것과 관련하여 오토보다 1년 전에 향년 85세로 역시 독일의 푀킹에서 세상을 떠난 부인 레지나의 관도 함께 안치하였다.

 

합스부르크의 오토와 레지나 공주는 우리나라에서는 6.26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에 프랑스의 낭시에 있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교황 비오 12세가 결혼을 축복했다. 두 사람은 모두 남부 독일의 푀킹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2011년 7월 16일에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칭함을 받은 사람과 1804년 오스트리아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 프란시스 1세 이후의 황제들, 그리고 한 때 오스트리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안을 합쳐서 도합 12명 황제들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프란스시 1세는 오스트리아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1세이지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시스 2세이다. 그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신성로마제국의 군대가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제국의 앞날이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고 더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고 대관식까지 갖자 속이 상해서 1804년에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만들어 황제가 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806년에 신성로마제국을 폐지하였다. 이제 카이저그루프트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12명의 합스부르크 황제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거명되지 않은 합스부르크의 다른 황제들은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다.

 

1. 마티아스 황제(Kaiser Matthias: 1612-1619): 그의 부인인 '티롤의 안나'가 카푸친 교회/수도원과 지하의 납골당을 만들어 자기와 남편 마티아스의 영묘로 삼기로 한 것이 카이저그루프트의 시작이다.

2. 페르디난트 3세 황제(Kaiser Ferdinand III: 1608-1657): 마티아스 황제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2세 황제(1578-1637)의 아들로서 1637년부터 1657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재위하였다. 그의 아들 중의 하나가 레오폴드 1세 황제이다. 페르디난트 2세는 독실한 가톨릭으로서 개신교를 탄압함으로서 30년 전쟁의 빌미를 주었다. 

3. 레오폴드 1세 황제(Kaiser Leopold I: 1657-1705).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중의 하나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4. 요제프 1세 황제(Kaiser Joseph I: 1705-1711): 레오폴드 1세의 장남으로서 9세때에 헝가리왕으로 대관식을 가졌고 11세 때에 신성로마제국가 되었으나 실제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가진 것은 아버디인 레오폴드 1세가 1705년에 세사을 떠나고서였다. 요제프 1세는 아버지 레오폴드 1세가 시작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을 이어 받아서 소모적인 나날을 보냈다.

5. 샤를르 6세 황제(Kaiser Charles VI: Karl IV: 1711-1740): 형인 요제프 1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부인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의 사이에 딸 둘만을 두었다. 큰 딸이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이다. 샤를르 6세는 여자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수 있다고 주장하여 물의를 빚었다가 나중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인 로레인의 프린시스 스테픈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간의 사정은 너무나 복잡하여 여기서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기고 한다.

6. 프란시스 1세 스테픈(Kaiser Francis I Stephen: 1708-1765,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여 합스부르크-로트링거(로레인) 왕가가 시작되도록 했다.

7. 요셉 2세 황제(Kaiser Joseph II: 1780-1790): 요셉 2세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로레인의 프란시스 1세 황재의 큰 아들이다. 그러나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동생인 레오폴드가 황제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요셉 2세 황제는 '계몽 군조'로서 유명하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독일어 대본의 오페라를 만들 것을 요처앟여 '후궁에서의 도주'가 완성되었다. 요셉 2세 황제의 검소한 장례의식 칙령으로 인하여 누구든지 재활용 관을 사용해야 했다. 모차르트의 장례에도 자활용관이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어디 묻혔는지 알수 없게 되었고 유해를 찾을수 없게 되었다.

8. 레오폴드 2세 황제(Kaiser Leopold II: 1790-1792):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시스 1세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형인 요셉 2세가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모차르트는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저 유명한 '대관식 협주곡'을 작곡했다.

9. 프란시스 2세 황제(Kaiser Francis II 또는 Kaiser Francis I: 1792-1835)

10. 페르디난트 1세 황제(Kaiser Ferdinand I von Osterreich: 1835-1848):

11. 프란츠 요셉 1세 황제(Kaiser Franz Joseph II von Osterreich: 1848-1916):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 군주로서 통치한 인물이다. 그가 재위일 때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변경되었다. 부인은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로 보통 '씨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세기의 미인이었다. 프란츠 요셉 1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제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자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로써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났다.

12. 막시밀리안 대공 (멕시코 황제) (Erzhherzog Maximilliam, Kaiser von Mexico: 1832-1867):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의 동생으로 멕시코 황제가 되었으나 멕시코인들의 공화국을 요구하는 반란으로 인하여 체포되어 총살 당했다. 그러니 시신은 비엔나로 옮겨져서 카이저그푸르트에 안치되었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동생으로서 멕시코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의 관. 그는 1884-1887년간 멕시코 제2제국의 황제였으나 멕시코 공화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18명의 황비들은 다음과 같다.

 

1. 안나(Anna von Tyrol): 마티아스 황제의 부인. 카이저그루프트를 처음 구상한 황비.

2. 마리아 안나(Maria Anna): 페르디난트 3세의 부인.

3. 엘레오노라 마그달레나(Eleonora Magdalena): 페르디난트 3세의 두번째 부인.

4. 마리아 레오폴디나(Maria Leopoldina): 페르디난트 3세의 세번째 부인.

5. 마르가레트 테레자(Margaret Theresa): 레오폴드 1세의 부인.

6. 엘레오노라 마그달레나(Eleonora Magdalena): 레오폴드 1세의 두번째 부인.

7.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Elisabeth Christina): 샤를르 6세의 부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

8.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샤를르 6세의 딸. 프란시스 스테픈의 부인. 요셉 2세, 레오폴드 2세, 마리 앙뚜아네트의 어머니.

9. 마리아 요제파(Maria Josepha): 요셉 2세의 부인.

10. 이자벨라 마리아(Isabella Maria): 요셉 2세의 두번째 부인.

11. 엘리자베트 빌헬미네(Elisabeth Wilhelmine): 프란시스 2세의 부인.

12. 마리아 테레자 카롤리나(Maria Teresa Carolina): 프란시스 2세의 두번째 부인.

13. 마리아 루도비카(Maria Ludowika): 프란시스 2세의 세번째 부인.

14. 카롤리나 아우구스타(Karolina Augusta): 프란시스 2세의 네번째 부인.

15. 마리아 루이제 대공녀(Erzherzogin Maria Louise): 프란시스 2세의 딸. 나폴레옹의 두번째 부인.

16. 마리아 안나(Maria Anna): 페르디난트 1세의 부인.

17. 엘리자베트(Elisabath von Bavaria): 프란츠 요셉 1세의 부인. 애칭은 '씨씨'.

18. 치타(Zita):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의 부인. 오토 황태자의 어머니.

 

마지막 황비 치타(Zita)의 관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어 있는 심장단지 중에서 두 개는 황비의 것이다. 하나는 레오폴드 1세의 황비인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Claudia Felicitas: 11653-1676)의 심장을 담은 단지이며 다른 하나는 요셉 1세 황제의 딸로서 바바리아의 샤를르 7세(나중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황비가 된 오스트리아의 아말리에 빌헬미네(Amalie Wilhelmine: 1701-1756)의 심장 단지이다. 아말리에 빌헬미네 황비의 시신은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전에 남편 샤를르 7세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합스부르크의 황비 중에서 심장만을 단지에 넣어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어 있는 황비들. 왼쪽이 클라우디아 펠레치타스 황비, 오른쪽은 바바리아의 샤를르 7세 및 신성로마제국의 황비인 아말리에 빌헬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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