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카이저그루프트

카이저그루프트의 구성

정준극 2013. 8. 10. 12:59

카이저그루프트의 구성

 

카이저그루프트는 1960년에 대대적인 재배치 작업에 들어갔다. 대체로 볼트마다 포화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 '어린이 납골당'(Children's Columnbarium)과 '신 볼트'(Die Neue Gruft)가 생겼다. 많은 수의 관들이 이 두 곳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조치는 투스카니 볼트와 페르디난트 볼트에서 일부 관들을 옮겨서 페르디난트 볼트의 코너의 벽면에 책장처럼 만든 시설로 옮긴 것이다. 각 볼트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샤를르 6세의 관의 장식

                              

○ 설립자 볼트(Die Gründergruft: Founder's Vault)

    카이저그루프트에서 가장 오래된 볼트이다. 1632년 카푸친교회가 세워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거의 4백년이나 된 볼트이다. 교회 본당 회중석의 왼편 황제의 예배처(카이저 카펠레)가 있는 곳의 지하이다. 설립자 볼트는 바로크 볼트로부터 바로크 문을 통해 볼수 있다. 설립자 볼트에는 글자그대로 카이저그루프트의 설립자인 마티아스 황제와 그의 부인인 안나 황비의 석관이 놓여 있다. 안나 황비의 석관은 카이저그루프트에 있는 전체 관들을 일련번호로 정리했을 때 1번이다. 설립자이기 때문이다. 마티아스 황제의 관은 2번이다.

 

   마티아스 황제(Matthias: 1557-1619)는 막시밀리안 2세 황제의 셋째 아들로서 한때 오스트리아가 관할하는 네덜란드의 총독이었다. 마티아스는 오스트리아의 세력을 더 동부인 헝가리와 모라비아까지 확장하였다. 헝가리와 모라비아는 마티아스의 형인 루돌프 2세가 관장하고 있었지만 마티아스가 무능하고 자격이 없는 형을 1608년에 밀어내고 세력을 확보하였다. 마티아스 황제는 비엔나의 남쪽에 황실 사냥숙사를 새로 건조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쇤브룬 궁전이다. 마티아스의 시신은 카이저그루프트에 있지만 그의 심장은 단지에 넣어 아우구스틴 교회(Augustinerkirche)에 보관되어 있고 그의 장기들은 슈테판성당의 '공작납골당'(Ducal Crypt)에 보관되어 있다.

 

   마티아스 황제의 부인인 안나 황비(1585-1618)는 티롤공작인 페르디난트 2세의 딸로서 남편 마티아스는 삼촌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마티아스와 안나는 사촌간이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에 마티아스는 안나보다 28세나 나이가 많았다. 안나는 30세 초반의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죽음에 임박하게 되자 1617년에 유언장에 비엔나에 카푸친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의 지하에 납골당을 만들어 나중에 자기와 남편 마티아스를 안치해 달라고 말했다. 안나 황비는 그러한 유언을 한지 1년 후에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 마티아스 황제도 안나 황비가 세상을 떠난지 3개월 후에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카이저그루프트의 첫 입주가가 되었다. 마티아스와 안나 사이에는 후사가 없었다. 안나의 심장은 단지에 넣어 아우구스틴 교회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으며 장기들은 넣은 단지(항아리)는 역시 슈테판성당의 납골당에 보관되어 있다.

 

마티아스 황제와 안나 황비의 관

                               

○ 레로폴드 볼트(Die Leopoldsgruft: Leopold Vault)

    카푸친교회의 회중석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볼트이다. 1657년 레오폴드 1세 황제로부터 시작된 볼트이다. 레오폴드 1세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3세는 칙령으로 모든 합스부르크 황실 사람들은 카푸친교회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되어야 한다고 했다. 레오폴드는 세명의 부인과 16명의 자녀들을 두었기 때문에 당시의 카이저그루프트의 규모로서는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레오폴드 볼트를 만들어 사용토록 했다. 그러자 차후로 합스부르크 황실 사람들을 위해 지하 납골당의 확장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 칼 볼트(Die Karlsgruft: Karl's Vault)

    칼 볼트는 1710년에 요셉 1세 황제가 건조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720년에는 샤를르 6세(칼 6세) 황제가 거장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에게 지시하여 확장하였다. 그래서 칼(샤를르) 볼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장 건축가들이 카이저그루프트의 확장공사에 참여하기는 이 때부터였다.

 

○ 마리아 테레지아 볼트(Die Maria Theresien Gruft: Maria Theresa's Vault)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1754년에 당시의 카이저그루프트를 확장하여 새로운 볼트를 만들도록 했다. 그러므로 그렇게 확장된 볼트를 마리아 테레지아 볼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인 프란시스(프란츠) 스테판 1세의 합관은 카이저그루프트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볼트는 다섯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운데에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시스 스테판 1세의 화려한 관이 있다. 이곳에는 모두 16개의 관이 있다. 종전에는 44개의 관과 2개의 심장 단지가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볼트의 위치는 교회의 뒷편이다. 이 볼트의 천정 돔은 카푸친 수도원 정원의 아래에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시스 1세 황제의 관

                    

○ 프란츠 볼트(Die Franzensgruft: Franz's Vault)

    1824년 프란츠 2세(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 오스트리아제국 황제)가 공간을 확장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78개의 관과 3개의 심장 단지가 있었다. 프란츠 2세는 이곳을 8각형의 납골당으로 개축하였다. 새로 만든 납골당은 비더마이어 양식이었다. 이곳에는 1940년까지 프란츠 2세의 외손자가 되는 라이히슈타트 공작인 프란츠 요셉 칼(1811-1832)의 관이 있었다. 이름은 프란츠 요셉 칼이지만 나폴레옹 1세의 아들이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에 프란츠 요셉 칼의 관을 프랑스로 보내도록 했다. 현재 프란츠 요셉 칼의 관은 파리의 앵밸리드에 아버지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관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프란츠 2세는 6백년 역사의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삼은 황제이다.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과의 관계를 위해 자기의 딸인 마리 루이제를 나폴레옹과 결혼시켰다. 그리하여 태어난 아들이 라이히슈타트 공작이 프란츠 요셉 칼이다. 나폴레옹의 아들인 프란츠 요셉 칼은 비엔나에서 줄곧 지내다가 21세의 젊으 나이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란츠 2세 황제는 외손자인 프란츠 요셉 칼이 비록 합스부르크의 직계는 아니고 나폴레옹의 아들이지만 합스부르크로 간주하여 프란츠 요셉 칼이 세상을 떠나자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토록 했었다.

 

○ 페르디난트 볼트(Die Ferdinandsgruft: Ferdinand's Vault)

    페르디난트 볼트는 1842년에 투스칸 볼트와 함께 확장되었다. 위치는 수도원 건물의 아래가 된다. 현재는 거의 몇 개에 불과한 관들이 안치되어 있지만 전에는 전체의 4분의 1정도가 이곳에 있었다. 페르디난트 볼트의 벽면에 책장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서 그곳을 활용했기 때문에 공간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페르디난트 1세의 관

                                

○ 투스카니 볼트(Die Toskanagruft: Tuscan Vault)

    페르디난트 볼트와 함께 1842년에 건조되었다. 현재는 14개의 관이 있지만 그 전에는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볼트가 생기는 바람에 그곳으로 보냈고 또 일부는 1960년에 전체 배치를 재정리하면서 페르디난트 볼트의 책장과 같은 시설에 포함하였다. 투스카니 볼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레오폴드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기 전에 투스카니 대공을 지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여러 아들 중에 둘째 아들인 페르디난트 3세도 투스카니 대공을 지냈기 때문이다. 레오폴드 2세의 큰아들인 프란시스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 2세 황제이며 나중에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 1세 황제가 된 사람이다. 프란시스 2세(프란시스 1세)는 별도의 프란츠 볼트에 안치되어 있다.

 

○ 신 볼트(Die Neue Gruft: New Vault)

    신 볼트는 1960-62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위치는 수도원 건물의 지하가 된다. 상당한 규모여서 넓이가 280 평방미터에 이른다. 다른 볼트에 밀집되어 있는 관들을 정리해서 그중 무려 140개를 신 볼트에 재배치하였다. 그리고 다른 볼트에 있었던 심장 단지 4개와 화장 후 유분을 담은 단지도 함께 안치하였다. 이 곳에는 대부분 금속관이 있다. 그래서 에어콘 시설을 하여 금속의 부식을 방지토록 했다. 신 볼트는 페르디난트 볼트를 통해 들어간다. 그러나 나올 때는 프란츠 요셉 볼트의 뒤로 나오게 되어 있다. 현재 신 볼트에는 26개의 관이 있다.

 

노이에 그루프트(신 볼트)

                                                           

○ 프란츠 요셉 볼트(Die Franz Josephs Gruft: Franz Joseph's Vault)

    프란츠 요셉 볼트는 1908년에 완성되었다. 이와 함께 부속으로 납골당 예배처가 마련되었다. 프란츠 요셉 볼트는 프란츠 요셉 황제의 즉위 60년을 기념하여서 완성되었다. 프란츠 요셉 볼트는 신 볼트의 동남쪽 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이곳에는 1916년에 세상을 떠난 프란츠 요셉 황제, 1898년에 암살당한 엘리자베트 황비(1837-1898), 1889년에 31세의 나이로 자살한 루돌프 황태자(1858-1889)의 관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프란츠 요셉 1세 황제, 엘리자베트 황비, 루돌프 황태자의 관

                                        

○ 납골당 카펠레(Die Gruftkapelle: Crypt Chapel)

    이곳에 있는 성모상은 1899년에 헝가리의 귀부인들이 엘리자베트 황비를 추모하여서 설치한 것이다. 카펠리의 오른쪽 끝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1887-1922)의 흉상이 있다. 카를 1세는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섬의 푼샬(Funchal)에 있는 노사 세뇨라 도 몬테(Nossa Senhora do Monte)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신앙심이 돈독했던 카를 1세는 나중에 교황청으로부터 복자의 칭호를 받았다.

 

카이저그루프트의 예배처(그루프트카펠레)

                                

○ 비엔나 이외의 지역에 안치되어 있는 합스부르크 인물들 - 1633년 카이저그루프트가 오픈되기 이전

 

- 프레데릭 3세(Frederick III: 1415-1493) 황제: AEIOU 라는 표기로 유명한 프레데릭 3세의 아름답고 장엄한 대리석관은 슈테판성당의 강단소 오른 쪽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m I: 1459-1519) 황제: 프레데릭 3세의 아들로서 비너 노이슈타트의 장크트 게오르그카테드랄레(St Georgskathedrale)에 안치되어 있다.

- 브루근디의 메리 대공녀(Duchess Mary of Burgundy: 1457-1482): 막시밀리안 1세 황제와 결혼한 부르군디의 공주이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합스부르크는 부르군디까지 세력권을 넓히게 되었다. 브뤼제의 성모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 카스티유의 필립 1세 왕(King Philip I of Castille: 1478-1506): 막시밀리안 1세 황제와 부르군디의 메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황실교회(Capilla Real)에 안치되어 있다.

- 샤를르 5세(Charles V: 1500-1556) 황제: 카스티유의 필립 1세 왕의 큰 아들이다. 마드리드의 엘 에스코리알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이후 필립 1세의 후손들은 대부분 엘 에스코리알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했다.

- 페르디난트 1세(Ferdinand I: 1503-1564) 황제: 카스티유의 필립 1세의 둘째 아들이며 샤를르 5세 황제의 동생이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St Vitus) 대성당에 안최되어 있다.

- 막시밀리안 2세(1527-1576)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이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 안최되어 있다.

-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 황제: 막시밀리안 2세 황제의 아들.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

- 슈티리아의 샤를르 2세 대공(Archduke Charles II of Styria: 1540-1590): 페르디난트 1세 황제의 셋째 아들. 제카우(Seckau)의 수도원교회(Stiftsbasilika)에 안치. 제카우의 수도원교회에는 인너 오스트리아 가계인 샤를르 2세의 후손들이 안치되어 있다.

 

슈티리아의 제카우에 있는 수도원교회. 합스부르크의 인너 오스트리아 가계의 사람들이 안치되어 있다.

 

○ 1633년 비엔나에 카이저그루프트가 오픈 된 이후에 비엔나 이외의 지역에 안치된 합스부르크의 사람들

 

- 페르디난트 2세 황제(1578-1637): 슈티리아의 샤를르 2세 대공의 장남. 그라츠의 그라츠 대성당(Grazer Dom)에 안치. 페르디난트 2세에 의한 오스트리아 가계의 주요인물들은 그라츠 대성당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 마리 앙뚜아네트 왕비(1755-1793):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시스 1세의 열다섯번재 자녀인 마리 앙뚜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는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파리의 생드니 교회(Saint Denis Basilica)에 안치되어 있다.

 

파리의 생드니교회에 있는 마리 앙뚜아네트의 묘지 조각. 그 옆에는 남편인 루이 16세가 있다.

 

- 투스카니 대공, 페르디난트 3세 대공(1769-1824): 레오폴드 2세 황제의 아들.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산 로렌초 바실리카에 안치.

- 모데나 공작, 프란시스 4세 대공(1779-1846): 페르디난트 칼 안톤 대공의 아들. 이탈리아 모데나의 산 빈센초 키에서에 안치.

- 라이너(Rainer) 대공(1783-1853): 레오폴드 2세 황제의 아들. 이탈리아 볼차노의 마리아 승천교회(Maria Himmelfahrtskirche)에 안치.

- 라이히슈타트 공작, 프란츠 요셉 칼 왕자(Prince Franz Joseph Karl: 1811-1832):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마리 루이제 오스트리아 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처음에는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되었으나 1940년에 히틀러가 프랑스로 보내라고 지시함. 현재 파리의 앵밸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파리의 앵밸리드에 있는 나폴레옹 2세의 묘지. 그는 비엔나에서 21세로 세상을 떠났다.

 

- 테센 공작, 프리드리히 마리아 알브레헤트 빌헬름 칼 대공(1856-1936): 칼 페르디난트 대공의 아들. 헝가리의 알텐부르크(현재는 모손마쟈르오바르)에 있는 교구교회에 안치.

- 오스트리아 에스테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1863-1914): 칼 루드비히 대공의 큰 아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로 확정되었으나 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함. 그로 인하여 1차 대전이 발발함. 니더 외스터라이주의 아르트슈테텐의 슐로스카펠레(궁정교회)에 안치.

- 호헨버그 대공녀 조피(Duchess Sophie of Hohenberg: 1868-1914): 호테크(Chotek) 백작부인이었으나 오스트리아 에스테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결혼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 확정자의 부인으로 장차 제국의 황비가 될 인물이었으나 남편과 함께 사라예보를 방문 중 암살 당함. 남편과 함께 아르트슈테텐의 슐로스카펠레(궁정교회)에 안치됨.

- 칼 1세 황제(1887-1922): 1916년에 프란츠 요셉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가짐. 그러나 1차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공화국이 되고 더구나 헝가리가 분리된 이후 오스트리아로부터 추방 당하였고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섬에서 세상을 떠남. 마데이라의 푼샬(몬테)에 있는 노사 세뇨라 도 몬테(Nossa Senhora do Monte) 교회에 안치됨.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섬의 푼샬에 있는 노사 세노랴 도 몬테 성당. 합스부르크 마지막 황제인 칼 1세가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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