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디바와 디보

또 다른 베스트 10 오페라 성악가

정준극 2013. 8. 17. 05:15

또 다른 위대한 오페라 성악가 톱 10

20세기와 21세기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 성악가들은 누구인가? 미국 음악평론가클럽이 정한 위대한 오페라 성악가 10인의 리스트이다.

 

 

1.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 리릭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는 오페라의 어떤 역할이든지, 어떤 가곡이든지, 아무리 난해한 음악이라고 해도 명쾌하고 분명하게 해석하는 재능이 있다. 피셔 디스카우라고 하면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우선 생각하지만 그는 오페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누구보다고 월등한 해석으로 역할을 소화하였다. 그렇다고 가벼운 역할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었다. 탄호이저에서의 볼프람, 토스카에서의 스카르피아는 무거운 역할도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현대작품에 있어서도 놀랄만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의 레이놀드 한은 피셔 디스카우를 염두에 두고 오페라 '리어'를 작곡하였다. 초연에서 리어 왕의 역할을 피셔 디스카우가 맡았음은 물론이다. 그의 슈베르트 가곡해석은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외르크 데무스 또는 제랄드 무어의 피아노 반주에 의한 '마왕'은 아직까지도 가장 귀중한 음반으로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는 그를 '기적의 바리톤'이라고 불렀고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는 '신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피셔 디스카우는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로지 음악과 더불어 평생을 보냈다. 그가 취입한 음반의 숫자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음악적인 생활을 했는지 알수 있다. 그는 네번 결혼하였는데 마지막 부인은 소프라노 율리아 바라디(Julia Varady)였다. 

  

리릭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2.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 리릭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리릭 소프라노라고 규정하였지만 그는 마치 천의 얼굴을 가진 것처럼 드라마틱 소프라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스핀토 소프라노의 경지를 자유롭게 교통할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메조소프라노의 역할까지도 맡아 할수 있었다. 칼라스의 음성은 어딘가 세련되지 않았고 맑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매력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마리아 칼라스를 세계적 오페라 성악가의 반열에 포함하는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라 디비나(La Divina)라는 명칭에 적합한 여인이었다. 비록 54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이름은 만고에 길이 남는 것이 되었다.

 

 

마리아 칼라스 

 

3. 플라치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스핀토 테너.

플리치도 도밍고는 현대 테너들의 대부이다. 도밍고 자신이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도밍고의 역할과 영향력은 대단하다. 테너 중에서 도밍고 만큼 많은 오페라 역할을 맡았던 테너는 없을 것이다. 2011년으로 136개 역할을 맡아했고 2012년과 2013년에도 계속 새로운 역할을 맡아 했으므로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도밍고의 음성은 대단히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오텔로의 역할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도밍고만큼 뛰어난 오텔로 역할은 없었다. 특히 오텔로의 1막에서 오텔로가 '기뻐하라'(Esultate!)라고 외치는 장면은 도밍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 시피했다. 도밍고는 어느 역할이나 맡을수 있다. 바그너의 발퀴레로부터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화할수 있다. 그런가하면 레하르의 오페레타로부터 말러의 가곡 사이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플라치도 도밍고

                     

4. 조앤 서덜랜드(Joan Sutherland: 1926-2010).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는 파바로티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게 해 준 소프라노이다. 호주 출신의 조앤 서덜랜드가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된 것은 그의 고음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고음을 내고 있다. 대부분의 콜로라투라가 밝은 노래에만 치중하고 있는데 비하여 서덜랜드는 드라마가 요구하는 음색을 냈다. 그리하여 콜로라투라에 서정적인 면모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서덜랜드는 다른건 다 좋은데 대사가 분명치 않다는 불평이 있었으나 나중에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마스터하여 그런 문제도 스스로 해결했다. 서덜랜드는 특별히 벨 칸토 오페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La Stupenda 였다.

 

 

조앤 서덜랜드 

                   

5.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 리릭 테너.

파바로티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실로 글로벌 수퍼스타였다. 파바로티는 '하이 C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연대의 딸'에서 '친구여 오늘은 즐거운 날'(Pour mon ame)에서는 무려 아홉번이나  하이 C를 내야 했다. 파바로티의 레퍼토리는 도니체티의 벨칸토 스타일로부터 현대적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파바로티의 이름을 크게 날리게 해 준 것이었다. 파바로티는 '공주는 잠 못이루고'(Nessun dorma)를 불러서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6.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Kirsten Flagstad: 1895-1962). 드라마틱 소프라노. 바그너 소프라노.

바그너의 오페라라고 하면 그저 소리만 지르면 다 되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국보인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는 거칠다고 생각되는 바그너의 음악에 아름다움을 실어 주었다. 노르웨이가 얼마나 플라그슈타드를 찬양하고 있는지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노르웨이 항공에 플라그슈타드의 얼굴을 넣은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아무리 마리아 칼라스 아니라 칼라스 할머니가 유명하다고 해도 국가 비행기에 저렇게 홍보한 일은 없다.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는 바그너의 모든 역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식의 발성과는 다른 것이었다.

 

 

키르스텐 플라그슈타드. 비행기에는 Real Norwegian 이라고 썼다.

                       

7. 프릿츠 분덜리히(Fritz Wuderlich: 1930-1966). 리릭 테너.

한창 시절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프릿츠 분덜리히는 그 미성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모든 테너 중에서 가장 감미롭고 가장 서정적인 음성을 지닌 테너였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독일은 바그너 스타일의 영웅적인 테너를 선호하였고 분덜리히와 같은 서정적인 음성은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덜리히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모차르트를 추구하였다. '마술피리'에서 타미노 왕자 역할은 분덜리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프릿츠 분덜리히 

                    

8.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 1927-). 스핀토 소프라노.

미국 출신의 흑인으로서는 아마도 가장 성공한 오페라 소프라노일 것이다. 가장 성공했다기 보다는 가장 오페라에 적합한 소프라노였다. 프라이스의 '포기와 베스'에서 베스는 가장 적합한 역할이었다. 또한 '포기와 베스'에서 클라라의 노래인 '섬머타임'을 부른 것은 아직도 최고의 연주로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프라이스의 레퍼토리가 '포기와 베스'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베르디와 푸치니의 멜로드라마틱 소프라노로서 더 많은 활약을 했다.

 

 

레온타인 프라이스 

              

9. 니콜라이 겟다(Nicolai Gedda: 1925-). 리릭 테너.

스웨덴 출신의 겟다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 출연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뛰어난 미성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아돌프 아당의 'Mes amis, ecoutez l'histoire'(친구여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오)로였다. 테너 아리아 중에서는 가장 어렵다는 이 곡은 하이 D까지 나는 것이었다. 테너의 고음 영역은 하이 C가 상한선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고음이었다. 그는 오랜 경력을 통하여 수많은 레코딩을 하고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했다. 그는 2003년 7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를 녹음했다.

 

 

니콜라이 겟다 

               

10.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1915-2006). 리릭 소프라노.

세기적 미모의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는 프러시아의 포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하려다가 학교장이던 아버지가 나치에게 미움을 받아 학교에서 해고되자 더 이상 의학을 공부할수 없어서 원래부터 재능이 있던 음악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이다. 슈봐르츠코프가 처음 오페라에 출연한 것은 13세 때에 마그데부르크에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출연한 것이었다. 슈봐르츠코츠는 '고귀한 소프라노'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오페라의 역할도 '장미의 기사'에서 마샬린,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 등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역할이 많았다. 그런가하면 요한 슈트라우스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슈봐르츠코프의 서정성은 독일 가곡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는 슈베르트의 가곡에서부터  휴고 볼프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서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1945년에 오스트리아 시민이 되었으며 그후 잠시 영국에서 지내다가 2006년 오스트리아의 포라아를베르크에서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슈봐르츠코프는 1953년에 영국에서 EMI 대표인 월터 레게(Walter Legge)와 결혼하였다. 슈봐르츠코프는 월터 레게가 1979년에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