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이탈리아의 오페라

글룩의 개혁과 낭만시대 오페라

정준극 2013. 12. 23. 12:17

글룩의 개혁과 낭만시대 오페라

 

오페라 세리아는 나름대로 취약점이 있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성악가들을 위해서 지나치게 장식적인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게 한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오페라에 출연하는 성악가들은 자기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작곡가들에게 더 화려하고 더 장식적인 노래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오페라 세리아에서 무대배경과 장치가 지나치게 스펙터클한 것도 드라마의 순수성을 저해한다는 비평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프란체스코 알가로티(Francesco Algarotti: 1712-1764)의 1755년도 저서인 '오페라 에세이'(Essary on the Opera)를 보면 오페라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그는 오페라 세리아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이라는 것은 음악의 순수성과 드라마와의 연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알가로티는 모든 요소들, 즉 음악(성악과 기악), 발레, 무대연출 등은 모두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내세웠다. 이같은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개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같은 아이디어는 나중에 글룩의 개혁오페라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오페라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개혁오페라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혹시 오페라를 통해서 무슨 대단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혁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페라 형식상의 개혁이므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음반

 

니콜로 좀멜리(Niccolo Jommelli)와 토마소 트라에타(Tommaso Traetta)와 같은 당시의 일부 작곡가들은 알가로티의 이같은 아이디어를 자기들의 오페라에 반영코자 노력했으나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작곡가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bald Gluck: 1714-1787)이었다. 글룩은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개혁오페라를 주도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글룩은 '아름다운 단순성'(beautiful simplicity)을 이룩코자 노력했다. 이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글룩의 그같은 철학은 그의 첫 개혁 오페라라고 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에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헨델의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성악 파트의 장식적이고도 기교적인 요소는 단순한 하모니로서 대체되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평상적인 경우보다도 더 풍부하도록 했다.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글룩의 이같은 개혁은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폭넓은 공명을 얻었다. 베버, 모차르트, 그리고 특히 바그너가 글룩의 아이디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여러 면에서 글룩의 계승자라고 볼수 있는 모차르트는 드라마, 하모니, 멜로디, 그리고 대위법의 우수한 면만을 선택하여 결합하였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일련의 코미디 작품들인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Don Giovanni)에서 그러했다. 이들 세 작품의 대본은 모두 로렌초 다 폰테가 썼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튼 이 세작품은 세계 오페라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오페라에 속하여 있다는 것도 또 다른 흥미있는 일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케루비노

 

19세기에 들어서서 상상과 감정을 강조하는 이른바 낭만주의 오페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음악은 인간의 가장 심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음악의 위상이 드라마보다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연기를 잘 못하더라도 노래만 잘 부르면 박수를 받았다.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48)는 이탈리아 낭만주의 시대를 주도한 작곡가였다. 로시니가 처음 성공을 거둔 작품은 오페라 부파의 장르에 속하는 La Cambiale di Matrimonio(결혼계약서: 1810)이다. 로시니의 인기는 오늘날에도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 등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다. 로시니는 오페라 세리아도 작곡했다. '오텔로'(Otello: 1816)와 '귀욤 텔'(Guillaume Tell: 1829)이다.

 

로시니의 '결혼계약서'

 

이탈리아 벨 칸토에서 로시니의 뒤를 이은 사람은 빈센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와 게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그리고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이다. 베르디야 말로 오페라의  전체적인 성격을 바꾼 인물이다. 베르디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감동적인 음악과 극적인 드라마의 결합이었다. 베르디의 첫 성공작인 '나부코'(1842)는 극적인 활기와 아름다운 아리아들, 그리고 위대한 합창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인 Va, pensiero(날아라 황금날개를 타고)는 당시 이탈리아의 자주와 독립의 염원을 담은 것으로 여겨저서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Va, pensiero는 이탈리아의 제2의 국가(國歌)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베르디는 '나부코' 이후에 오페라의 소재들을 주로 애국적인 내용에서 가져왔으며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로맨틱 스토리를 주제로 삼았다. 예를 들면 1844년의 '에르나니'(Ernani: 빅토르 위고), 1844년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o Foscari: 바이론), 1847년의 '맥베스'(Macbeth: 셰익스피어) 등이다. 베르디는 음악적인 것과 드라마틱한 것을 가지고 실험을 하였다. 오페라만이 할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1877년에는 '오텔로'를 완성했다. 베르디의 '오텔로' 이전에 로시니의 '오텔로'가 있었지만 베르디의 '오텔로'의 그림자에 가려지게 되었다. 평론가들은 베르디의 '오텔로'를 이탈리아 로맨틱 오페라에서 전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오텔로'에서는 솔로 아리아들과 듀엣, 그리고 합창이 멜로디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흐름에 완전히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의 '오텔로' 무대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인 '활슈타프'(Falstaff: 1893)는 지난날의 관습적인 형태를 모두 깨트린 작품이다. 대사는 과장됨이 없이 보통 말하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음악이 그런 대사의 단어들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활슈타프'는 스피치 패턴이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게 표현된 새로운 오페라의 시기를 여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로부터 오페라는 예술과, 음악드라마가 결합된 형태로서 수많은 영광스러운 노래, 의상, 오케스트라 음악 등으로서 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것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는 바로크 시기의 개념으로부터 로맨틱 시기의 성숙함으로 변하였다. 오페라는 전래적인 이야기와 신화 등을 다시 찾아가 보는 도구가 되었다. 역사는 무대를 통해서 재현되며 상상력은 고취되었다. 그리고 이제 20세기에 들어와서 오페라는 보다 격렬하고 극단적인 시기로 들어선다. 베리스모이다.

 

베르디의 '활슈타프'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들을 작곡한 사람은 무어라해도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이다. 푸치니는 '마농 레스코', '라 보엠', '토스카', '마다마 버터플라이'(나비부인), '제비'(La rondine), '투란도트' 그리고 '수녀 안젤리카'와 '외투'와 '자니 스키키'를 남겼다. 이들 중에서 '제비'와 '투란도트'는 미완성이었다. 2002년에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가 '투란도트'를 완성코자 시도한 바 있다. 1994년에는 로렌초 페레로(Lorenzo Ferrero)가 '제비'의 세번째 오케스트라 버전을 완성했다. 베리오는 그 자신이 두 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Un re in ascolto(왕은 들을지어다)와 Opera(오페라)이다. 페레로도 여러 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Rimbaud(랭보 또는 le fils du soleil), La Conquista(콘퀴스타)이며 2011년에는 Risorgimento!(통일)을 작곡했다. 베르디의 생애와 작품을 이탈리아 독립운동과 연계한 내용이다. 기타 20세기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로서는 L'Orfeide와 Torneo notturno 를 비롯한 19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지안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Gian Francesco Malipiero: 1882-1973), Ulisse, Volo di notte, Il prigioniero 등을 작곡한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1904-1975), Al gran sole carico d'amore, Intolleranza 1960, Prometeo 등을 작곡한 루이지 노노(Luigi Nono: 1924-1990), La Racine, Nymphero, Bozzetto sicilianto, La passion selon Sade 등을 작곡한 다재다능의 실바노 부소티(Sylvano Bussotti: 1931-), Luci mie traditrici등을 작곡한 살바토레 스키아리노(Salvatore Sciarrino: 1947-)등이 있다.

 

살바토레 스키아리노의 '루시 미에 트라디트리치'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