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다른 성물들

아헨대성당의 마리엔슈라인(Marienschrein)

정준극 2015. 10. 28. 05:55

아헨대성당의 마리엔슈라인(Marienschrein)

성모가 입었던 옷, 그리스도의 허리 두르개, 세례 요한이 죽을 때 입었던 옷 간직

 

아름다운 마리엔슈라인

 

독일 아헨 대성당(Achener Dom)의 쾨이어 앞에는 마리엔슈라인이라고 하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커다란 함이 놓여 있다. 마치 커다란 관처럼 생겼다. 성모 마리아의 유물을 보관해둔 용기이다. 기독교(가톨릭)에서는 그리스도 또는 성인들의 신체 일부를 함에 귀중하게 보관하는 관습이 있다. 머리칼, 치아, 뼈마디 등등을 신주모시듯이 보관한다. 이를 성체용기(聖體容器)라고 부르고 성골함(聖骨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Shrine이라고 하며 독일어로는 Schrein이다. 마리엔슈라인은 마리아의 유물을 넣어 둔 함을 말한다. 아헨대성당의 성체용기에는 네가지 중요한 성물들이 들어 있다. 마리아가 남긴 물건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황공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물건, 세례 요한과 관련된 물건도 들어 있다. 마리아의 유물은 마리아가 입고 있던 옷이다. 유태여인들이 평상시에 입고 다니던 옷이라고 보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물은 그가 십자가상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걸치고 있었던 허리 두르개와 팬티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예수께서 허리에 천을 두르고 계시며 또한 팬티 비슷한 것을 입고 계신다. 하리 두르게는 영어로 Loin cloth(로인 클로드)라고 부르며 독일어로는 Lindentuch(린덴투흐)라고 부른다. 팬티처럼 생긴 옷은 Nappy(내피)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건 주로 기저귀를 말하는 단어여서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다른 적당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저 내피라고 부른다. 그래도 하여튼 예수 그리스도의 로인 클로드 또는 내피라고 하는 말이 나오면 그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달리셨을 때 걸치고 계셨던 허리 두르개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한개의 성물은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하셨을 때 허리에 걸치셨던 천, 그리고 팬티처럼 입고 계셨던 천을 말한다. 한편, 성경에는 세례 요한이 낙타 털옷을 입었다고 적혀 있다(마태복음 3: 4). 그러나 아헨대성당에서 보관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옷은 낙타 털옷이 아니라고 한다. 세례 요한이 참수되었을 때 입고 있던 긴옷이라고 한다. 아마 세례 요한이 붙잡혀서 지하 옥에 갇히게 되니까 제자들이 마련해서 입으시도록 했던 모양이다.

 

마리엔슈라인은 아헨대성당의 중앙제단 안쪽 콰이어(성가대석이 있는 곳)에 있다.

 

아헨대성당의 성물들은 성모수도회의 한 지파가 1220년에 아헨대성당에 기증한 것이다. 이 성물들은 1239년에 아름다운 함을 만들고 그 안에 넣어서 제단 앞에 봉헌되었다. 마리엔슈라인은 금으로 세공된 것이다. 13세기에 유행했던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틱 양식 중간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함이다. 성체용기의 양 옆에는 열두제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용기 자체는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값으로 따질수 없는 대단한 보물이다. 또한 성체용기의 네 면에는 그리스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교황 레오 3세, 샬레마뉴 대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레오 3세는 서기 800년에 샬레마뉴(샤를르 1세: 칼 1세) 대제에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로 임명하는 대관식을 집전해준 교황이다. 성체용기의 지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표현한 여러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성체용기를 잠그는 자물쇠에는 열쇠가 두개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하나는 대성당 참사회가 가지고 있고 하나는 시장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 7년마다 순례자들에게 공개할 때에는 자물쇠를 망치로 부순다고 한다. 그후 다시 자물쇠를 만들어서 잠근다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허리 두르개. 접어서 묶어 놓았다. 아헨대성당은 매 7년마다 한번씩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1349년에는 이 지방에 역병이 크게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때에 마리아의 옷 등등 성물들을 보고 기도를 드렸더니 어느틈엔가 역병이 물러갔다고 한다. 그래서 대성당측은 역병이 돌 때마다 마리아의 옷 등등 성물들을 일반에게 내보여서 기도를 드리도록 했다. 그러다가 일반 순례자들의 집요한 요구가 있어서 매 7년마다 일반에게 공개키로 하여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19세기까지는 이 성체용기에 '놀리 메 탄제레'(Noli me tangere) 함을 넣어두는 콘테이너로 사용되었다. 여러가지 성물들을 넣어둔 은제 용기라고 한다. '놀리 메 탄제레'는 '나를 만지지 마라'라는 뜻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일 새벽에 무덤에 갔더니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나 반갑고 놀래서 예수의 몸을 만지려고 했더니 예수께서 '놀리 메 탄제레'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다. '놀리 메 탄제레'와 관련된 성물들은 아마도 그런 장면을 그린 자그마한 그림 등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현재는 아헨대성당의 마리엔슈라인에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마리엔슈라인은 수백년 세월이 지나는 중에 훼손된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2000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 현재는 커다란 유리 상자 안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매년 한번씩 날을 잡아서 유리함을 열고 마리엔슈라인이 온전하게 잘 있는지 검사하며 청소도 한다고 한다.

 

아헨대성당. 규모는 쾰른대성당등에 비하여 작지만 내부는 말할수 없이 아름답고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