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신동 모차르트

비엔나의 모차르트 기념명판 총점검

정준극 2017. 2. 1. 05:53

비엔나의 모차르트 기념명판 총점검


비엔나에서 모차르트와 관련이 있는 장소는 여러 곳이 있지만 그 중에서 기념 명판이 붙어 있는 곳만을 점검해 보았다. 비엔나에는 모차르트 기념상, 모차르트 분수, 모차르트 기념관(모차르트 하우스 비엔나), 모차르트의 이름을 붙인 카페, 식당, 호텔 등 수많은 기념장소가 있지만 다른 항목에서 대부분 소개하였으므로 이번에는 기념명판(게덴크타펠) 만을 집중 점검한다. 모차르트 순례를 위한 가이드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연도별로 소개한다. 연도별로 정리하였지만 만일 비엔나에 가서 이들을 순방코자 한다면 주소를 잘 알아두어서 교통이 편한대로 방문해야 할 것이다.


○ 1구 암호프(Am Hof) 13번지. 모차르트는 1762년 10월 둘째주에 이 집에서 비엔나에서는 처음으로 일반인을 위한 연주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해서 비엔나는 모차르트의 제2의 고향이 되었고 그의 운명도 비엔나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 내용의 명판을 모차르트협회가 1956년에 명판으로 제작해서 설치했다.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trat  in der zweiten Oktober Woche des Jahres 1762 in diesem Hause erstmals vor die Offentlichkeit der Stadt die ihm einst Heimat und Schicksal werden sollte.....Mozartgemeinde Wien 1956


암 호프 13번지 건물.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모차르트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암 호프 광장의 암 호프 교회 옆에 있는 건물이다.


○ 3구 렌베그(Rennweg) 91번지의 교회.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절에 이 집은 고아원과 고아원교회였다. 모차르트는 고아원교회의 봉헌을 축하하여서 그가 열두살 때인 1768년 12월 7일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참석한 가운데 그의 첫 미사곡을 직접 지휘하여 연주했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두번째 만난 행사였다. 오늘날 이 집은 교회로만 사용되고 있으며 교회의 외벽에 비엔나 슈베르트연맹이 1931년에 제작한 명판이 붙어 있다. 


Der zwolfjahrige W. A. Mozart dirigierte in seinem Gotteshaus gelegentlich der Einweihung am 7. XII 1768 in Anwesenheit der Kaiserin Maria Theresia seine erste Festmess....Wiener Schubertbund 1931


렌베그 91번지의 고아원교회(봐이젠하우스 키르헤: Waisenhaus Kirche).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모차르트의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교회 입구에 Komm zu uns(내개로 우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1구 티퍼 그라벤(Tiefer Graben) 18번지. 모차르트가 1779년 여름, 세번째로 비엔나 연주여행을 왔을 때 묵었던 집이다. 그러한 내용을 기록한 명판이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오늘날 이 집은 '다스 티그라'(Das Tigra) 호텔이다.


In diesem Hause wohnte Wolfgang Amadeus Mozart wahrend seines dritten Wiener Aufenthaltes im Sommer des Jahres 1779. Das Erleben der Musik Wiens entschield hier seinen Weg zum Meister deutscher Kunst.


티퍼 그라벤 18번지의 다스 티그라 호텔. 왼편에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기념명판이 있다.


○ 1구 징거슈트라쎄(Singerstrasse) 7번지. 도이체스오르덴스하우스(독일기사단의 집). 이 건물은 오늘날 독일기사단(수도원) 기념관, 교회 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모차르트 당시에는 잘츠부르크를 통치하였던 콜로레도 대주교의 저택이었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온 모차르트는 당장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이 집에서 1781년 3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콜로레도 대주교의 하인들과 함께 기거했다. 그런 내용의 명판이 건물안 현관쪽에 붙어 있다.


Wolfgang Amadeus Mozart wohnte im Deutschen Hause vom 16. März bis zum 2. Mai 1781.


징거슈트라쎄 7번지 도이체스오르덴스하우스의 현관 벽면에 붙어 있는 모차르트 기념명판.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


○ 1구 밀르흐가쎄(Milchgasse) 1번지. 모차르트는 1781년 이 집에서 하숙을 했고 요제프 2세 황제의 요청으로 이 집에서 지낼 때에 독일어 오페라인 '후궁에서의 탈출'(Entführung aus dem Serail)을 작곡했다. 페터스키르헤 뒷편이다. 그러한 내용이 이 집의 입구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명판에 적혀 있다. '후궁에서의 탈출'은 1782년 7월 16일 현재의 미하엘러플라츠 한쪽에 있었던 부르크테아터에서 모차르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In diesem Haus wohnte Wolfgana Amadeus Mozart im Jahre 1781 und komponierte hier seine Enführung aus dem Serail.


밀르흐가쎄. 오른쪽 끝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모차르트 기념명판이 있다. 가운데 하얀 건물은 페터스키르헤의 뒷편이다.


○ 1구 슈테판스플라츠(Stephansplatz) 1번지 슈테판성당 내의 성캐터린카펠레.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에 온 모차르트는 처음에 두어달 동안 잘츠부르크 대주교인 콜로레도 대주교의 비엔나 저택에서 지냈으나 마땅치 못해서 하숙을 구해 나갔다. 하숙집으로 구한 곳이 1구 밀르흐가쎄 1번지의 집으로 이 집은 옛날에 모차르트가 만하임에 갔을 때 알게 된 베버씨 미망인이 하숙을 하는 집이었다. 모차르트는 하숙집 셋째 딸인 콘스탄체와 1782년 8월 4일 결혼식을 올린다. 슈테판성당의 성캐터린카펠레에서였다. 이들의 네번째 자녀인 요한네스와 여섯번재 자녀인 프란츠는 슈테판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마도 성캐터린카펠레에서였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슈테판성당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일이 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12월 6일에 슈테판성당의 성십자가카펠레에 시신을 안치해 놓고 진혼곡을 연주하여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이같은 내용의 명판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06년에 슈테판성당이 새롭게 설치했다.



Wolfgang Amadeus Mozart und Constanze Weber wurden am 4. August 1782 in Ihrer Wohnpfarre St. Stephan getraut. Ihr viertes Kind Johannes und ihr sechstes Kind Franz empfingen im Stephansdom die Taufe. Nach Mozarts Tod am 5. Dezember 1791 - Kurz davor hatter er sich noch um die Kapellmeister-Adjunktstelle bei St. Stephan beworben - wurde am 6. Dezember das Requiem gefeiert und sein Leib in der Kreuzkappele eingesegnet.....Aus Anlass seines 250 Geburtstages. Die Domkirche St Stephan. AD MMVI.


○ 1구 유덴플라츠(Judenplatz) 3-4번지. 이 건물은 예전에 244번지였다. 이곳에 있었던 집에서 모차르트가 가족들과 함께 1783년에 잠시 살았다. 그러한 내용의 명판을 1929년에 비엔나 숙박업소연합회(Genossenschaft der Gastwirte)가 설치했다.

 

An dieser Stelle stand das Haus Nr. 244, in dem W.A. Mozart im Jahre 1783 wohnte.....Genossenschft der Gastwirte 1929


유덴플라츠의 레싱 기념상이 있는 곳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모차르트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 9구 배링거슈트라쎄(Währingerstrasse) 26번지. 이곳에 예전에 모차르트가 1788년 여름부터 1790년 가을까지 살았던 정원이 있는 집이 있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와 교향곡 G 단조, Es 장조, C 장조 등을 작곡했다.


Hier stand das Gartenhaus wo Mozart vom Sommer 1788 bis Herbst 1790 wohnte und Cosi fan tutte sowie die Simphonien G moll Es dur und C dur mit der Fuge schrieb.


배링거슈트라쎄 26번지의 집. 모차르트가 '여자는 다 그래' 등을 작곡한 집이다.


○ 1구 힘멜포르트가쎄(Himmelpfortgasse) 6번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개인 요리사였던 프란츠 얀(Franz Jahn)이라는 사람이 1788년에 이 장소에 살롱과 같은 고급 레스토랑(Noobelrestaurant)을 오픈했다. 식당이름은 트라이토이리(Traiteurie)라고 했다. 식당에서는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가 있어서 손님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모차르트도 1788년에 헨델의 파스토랄레를 연주했다. 그런 내용의 명판이 이 건물에 설치되어 있다. 베토벤의 '4개의 금관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5중주'는 1797년 이곳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1788 grundete hier der Leibkoch der Kaiserinn Maria Theresia, Franz Jahn ein Nobelrestaurant, eine sogennate Traiteurie, wo berühmte Konzerle stafffanden. Wolfgang Amadeus Mozart führte hier 1788 ein Pastorale von Händel und Ludwig van Beethoven 1797 ein Quintett fur vier Blaser un Pianoforte auf.


힘멜포르트가쎄 6번지. 지금은 카페 프라우엔후버이다.


○ 1구 라우엔슈타인가쎄(Rauhensteingasse) 8번지. 이 장소에 1849년까지 있었던 집에서 모차르트가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런 내용의 명판을 비엔나악우회가 1927년에 제작해서 설치했다. 현재 새로 지은 집은 슈테플(Steffl) 백화점의 후문 옆에 붙어 있다. 슈테플백화점의 정문은 캐른트너슈트라쎄 쪽에 있다.


In dieser Stelle stand bis 1849 das Haus in welchem Mozart am 5. Dezember 1791 gestroben ist....Gesellschaft der Musikfreunde Wien 1927


라우엔슈타인가쎄 8번지 벽에 붙어 있는 모차르트 기념명판.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붙어 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라우엔슈타인가쎄 8번지의 집(오른쪽). 18세기 말 모차르트 당시의 그림.  모차르트는 1층(우리 식으로는 2층)에ㅔ서 1년이 넘게 살았다.


○  1구 슈테판스플라츠(Stephansplatz) 1번지. 슈테판스돔의 뒷편.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시신은 이튿날 슈테판성당에서 영결미사를 가졌다. 슈테판성당 내에서 영결미사를 올린 카펠레(작은 예배처)가 어느 곳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하나의 주장은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 성당기념품상점이 있는 쪽, 항상 철책문이 닫혀져 있는 성십자카펠레라는 것이다. 오이겐공자의 묘지가 있는 장소이며 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수염이 자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또 다른 주장은 지금은 슈테판성당의 후면, 산 조반니 카페스트리노 기념상이 있는 곳의 옆에 보이는 작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곳에 비엔나 슈베르트연맹이 1931년에 설치한 명판이 붙어 있다.


An dieser Statte wurde des unsterblichen W.A. Mozart Leichnam am 6. Dez. 1791 eingesegnet....Wr. Schubertbund 1931


슈테판성당의 후면 산 조반니 카페스트리노 기념상이 있는 곳의 옆에 지금은 철책으로 막아 놓은 곳에 모차르트의 영결미사가 거행되었다는 명판이 있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의 안쪽에 있다.

철책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되어 있으며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있는 명판이 모차르트의 영결미사를 거행했다는 내용이다.


○  1구 미하엘러플라츠(Michaelerplatz) 5번지. 미하엘러키르헤(Michaelerkirche). 이 교회에서 1781년 12월 10일 모차르트에 대한 추도미사가 거행되었고 이어 모차르트가 미완성으로 남긴 진혼곡이 미완성인채로 처음 연주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기이한 모습의 부조 두 작품이 이교회의 들어서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미완성인 모차르트의 진혼곡은 나중에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르가 완성했다.


 

Am 10. Dezember 1791 wurde in dieser Kirche fur Wolfgang Amadeus Mozart....das Seelenamt gehalten, dabei erklangen Teile seines Requiem zum ersten Mal.


미하엘러키르헤의 회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모차르트 기념 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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