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신동 모차르트

모차르트 메달

정준극 2016. 1. 16. 11:05

모차르트 메달(Mozart Medal)

UNESCO가 제정하여 유공자에게 수여

 

유네스코가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을 기념하여 제정한 '모차르트 메달'. 뒷면은 유네스코 로고이다.

 

유네스코는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을 기념하여 '모차르트 메달'을 제정하고 세계적으로 음악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 또는 단체에 수여하기로 했다. 1991년에 첫번째로 '모차르트 메달'을 받은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인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였다. 첫번째로 받은 사람이 오스트리아인이라는 것은 의미있는 처사였다.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1915-2006)는 사실상 당시 프러시아의 포젠(Posen) 지방에 있는 야로친(Jarotschi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고 베를린에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1945년 종전이 되자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획등해서 오스트리아 국민이 되었다. 그로부터는 비엔나의 슈타츠오퍼에서 프리마 돈나로서 활동했다.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모차르트 메달'이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시가 수여하는 '모차르트 메달'(Mozart Medaille), 도메크문화연구소(Domecq Cultural Institute)와 아카데미아 메달라 모차르트(Academia Medalla Mozart), 그리고 멕시코 주재 오스트리아대사관이 주관하는 '모차르트 메달',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국제재단이 주관하는 '모차르트 메달', 비엔나 모차르트 협회(Mozartgemeinde Wien)가 주관한 '모차르트 메달'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 유네스코가 제정한 '모차르트 메달'이 가장 권위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제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수여받은 개인 또는 단체로서는 누가 있는지 소개한다.


유네스코 메달 다음으로는 비엔나의 모차르트협회(Mozartgemeinde Wien)가 수여하는 모차르트 메달이 가장 권위가 있다고 말할수 있다. '모차르트해석상'(Mozartinterpretationspreis)이라고도 한다. 1963년에 시작하여 일단은 1999년까지 상을 주었다. 주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주는 또 하나의 권위있는 모차르트 메달은 잘츠부르크의 모체르테움이 주는 것이다. 금상과 은상으로 구분하며 일찍이 1941년에 시작하였으나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띄엄띄엄 시상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당국이 마련해서 주는 모차르트 메달은 지금까지 몇번 시상을 하지 않았다. 멕시크 시티가 주는 모차르트 메달은 계속되고 있으나 주로 멕시코 출신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1991년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1915-2006)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 오스트리아로 국적을 바꾸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독일계 영국의 소프라노이다. 왜냐하면 영국의 유명한 레코드 프로듀서인 월터 레거와 결혼해서 영국 국적을 취득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적상의 이름은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레거였다. 그러다가 종전이 되자 1945년에 비엔나에서의 음악활동을 위해 오스트리아로 국적을 바꾸었다. 슈봐르츠코프는 남편 월터 레거가 1979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그 이듬해에 무대에서 은퇴하고 오스트리아 서쪽 끝의 포아아를버그주의 슈룬스(Schruns)에서 지내다가 그곳에서 향년 90세로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났다. 슈봐르츠코프는 모차르트 음악의 가장 뛰어난 해석자로 정평났었다. 특히 그의 '백작부인'은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적의 역할이었다. 슈봐르츠코프는 근세에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성악가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한때 나치당원이었기 때문에 그 그림자가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물론 슈봐르츠코프는 나치당에 가입했다가 얼마후에 탈퇴하였다. 슈봐르츠코프는 영국 국적으로 있을 때에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DBE(Dame of British Empire)의 작위를 받았다.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오른쪽)와 마리아 칼라스. 1957년 밀라노. EMI 주관으로 라 스칼라 팀과 함께 푸치니의 '투란도트' 취입차. 슈봐르츠코프는 류의 역할을 맡았다.

 

○ 알리시아 테르치안(Alicia Terzian). 1995년

알리시아 테르치안(1934-)은 중세아르메니아 음악의 연구로서 귀중한 업적을 남겼으며 또한 유네스코와 아르헨티나에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여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알리시아 테르치안은 아르메니아계의 아르헨티나 지휘자, 음악학자, 작곡가이다. 테르치안은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1954년에는 피아노로 학위를 받았고 1958년에는 작곡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후 이탈리아로 간 그는 전자음악을 공부했으며 이어 베니스에서 산 라짜로 델리 아르메니(San Lazzaro degli Armeni)의 메키타리스트 수도원(Mekhtarist Monastery)에서 중세 아르메니아 교회음악을 공부했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음악원, 라 플라타 국립대학교, 콜론극장 예술연구소 등에서 후진들을 양성하며 작곡활동을 했다. 그는 1968년에 EIMC 페스티발을 창설하였으며 이어 1979년에는 그루포 엔쿠엔트로스(Grupo Encuentros)를 설립했다. EIMC는 '국제현대음악재단'(Fundacion Encuentros Internacionales de Musica Contemporanea)을 말한다. 그는 유네스코 음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유네스코 국제여성위원회의 부의장, 아르헨티나 작곡가협회 부회장, 아르헨티나 음악학협회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라틴 아메리카 음악회의(Latin America Music Council)을 창설했다.

 

알리시아 테르치안

 

○ 엘피 폰 다사노브스키(Elfi von Dassanowsky). 1996년.

엘리 폰 다사노브스키(1924-2007)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성악가, 피아니스트, 영화 제작가, 인본주의자였다. 다사노브스키는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5세에 비엔나음악원(현재의 비엔나국립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아마 여성으로서는 가장 나이어린 입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 시절에 영화감독인 칼 하르틀(Karl Hartl)은 다사노브스키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영화베우 쿠르드 위르겐스의 피아노 레슨 선생으로 추천하였다. 그래서 쿠르드 위르겐스는 하르틀이 제작감독한 모차르트 일대기 영화에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경력은 그가 나치 기구의 멤버가 되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고 실제로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얼마후 그는 베를린의 영화사로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UFA으로부터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역시 거절하였다. 한편, 그는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장크트 푈텐 시립극장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를 맡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또한 연합군을 위해서 콘서트를 주관하기도 했다. 22세 때에는 비엔나에서 벨베데레 영화사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아마 가장 젊은 영화제작자였을 것이다. 그는 진실로 전후 오스트리아의 예술문화를 진작시키는데 헌신했으며 특히 영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기여했다. 그로 인하여 오스트리아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국제여성센터(Women's International Center)의 '살아있는 전설 상'(Living Legacy Award)을 받았고 유네스코로부터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다사노브스키는 2007년 하와이를 방문했다가 평생의 질병인 색전증이 발생하여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후 로스안젤레스에서 요양을 하다가 몇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엘피 폰 다사노브스키(오른쪽)와 피아니스트 마리아 프린츠. 2006. 2월 캘리포니아의 산 마리노.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 이고르 알렉산드로비치 모이세예프(Igor Alexandrovich Moiseyev). 2001년

이고르 알렉산드로비치 모이세예프(1906-2007)는 20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캐릭터 댄스의 안무가이다. 캐릭터 댄스라는 것은 고전 발레에 속한 하나의 장르로서 주로 유럽 국가들의 전통 민속춤, 국가적인 춤을 보다 전문적이며 스테이지에서 펼쳐 보일수 있는 춤으로 발전시킨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차르다스, 마주르카, 플라멘코, 타란텔라 등을 클래식 발레의 개념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키에프의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난 모이세예프는 여덟살이 될때까지 부모와 함께 파리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러시아로 돌아와서 볼쇼이극장발레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24년부터 1939년까지 볼쇼이극장에서 춤을 추었다. 그후에는 1954년 은퇴할 때까지 안무가로서 활동하였다. 모이세예프는 세계 음악문화에 기여한 공적으로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전설적인 안무가인 이고르 모이세예프.

 

○ 한나 쿨렌티(Hanna Kulenty). 2003년

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에서 태어난 한나 쿨렌티(1961-)는 폴란드가 자랑하는 현대적 클래식 음악 작곡가이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바르샤바의 '카롤 치마노브스키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후 이어 바르샤바의 '프리데릭 쇼팽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그후 네덜란드로 가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역시 작곡을 공부했다. 작곡가로서 쿨렌티는 지금까지 5편의 오페라 또는 무대음악, 12편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그리고 수많은 실내악곡, 독주악기위한 작품 등을 작곡했다. 오페라 중에서 1996년의 뮌헨 비엔날레에서 초연된 '검은 날개가 달린 꿈의 어머니'(The Mother of Black-Winged Dreams)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 그는 폴란드 작곡계의 주도적인 인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한나 쿨렌티

 

○ 티콘 크레니코프(Tikhon Khrennikov). 2003년

티콘 니콜라예비치 크레니코프(1913-2007)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소련작곡가협회의 회장으로 많은 활동을 한 사람이다. 작곡가로서 그는 세편의 교향곡, 4편의 피아노 협주곡, 2편의 바이올린 협주곡, 2편의 첼로협주곡, 오페라, 오페레타, 발레, 실내악, 극음악, 영화음악 등을 작곡했다. 크레니코프는 1930년대에 이미 소련 작곡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부각되었다. 그래서 당시 반형식주의 운동의 리더인 안드레이 츠다노프는 크레니코프를 소련작곡가연맹의 사무총장으로 임명했고 크레니코프는 그 직위를 1991년까지 유지하였다. 크레니코프는 말년에 고르바체프의 개방정책(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 신랄한 비난을 했다. 반면에 스탈린에 대하여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향년 94세로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는 13편을 남겼다. 첫 오페라는 1939년에 완성한 '폭풍 속으로'(In the Storm)이다. 마지막 오페라는 2003년에 완성한 '전쟁후 오후 6시'(At 6 P.M. After the War)이다. 오페라라기 보다는 뮤지컬이다. 티콘 크레니코프는 소련 음악계를 위한 기여로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티콘 크레니코프

 

○ 퍼셀음악학교(Purcell School of Music). 2003년

'청소년 음악도를 위한 퍼셀 음악학교'(The Purcell School for Young Musicians)는 영국 남부에 있는 재능있는 어린이 음악도를 위한 특수 음악학교로서 이런 종류의 학교로서는 영국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2003년 유네스코는 청소년 음악도를 위한 교육에 헌신한 공적으로 '모차르트 메달'을 수여하였다. 이 학교의 후원자인 챨스 왕세자가 학교를 대신하여 메달을 받았다. 이 학교의 명예 교장은 지휘자인 사이몬 래틀 경이다. 이 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대개 왕립음악원, 왕립음악대학에서 전문 공부를 한다. 이 학교를 나온 저명 음악가들 중에서 몇몇만 소개하면 2014년도 올해의 BBC 청소년 음악가로 선정된 마틴 제임스 바틀레트(Martin James Bartlett), 2010년도 올해의 BBC 청소년 음악가로 선정된 라라 멜다(Lara Melda), 한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이루마(Yiruma: 1978-),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인 올리버 루이스(Oliver Lewis) 등등이다.

 

퍼셀음악학교의 오케스트라 연습

 

○ 모하마드 레자 샤자리안(Mohammad-Reza Shajarian). 2006년

모하마드 레자 샤자리안(1940-)은 이란 출신으로 성악가이며 작곡가이다. 그는 특히 페르시아 음악의 오스타드(마스터)이다. 샤자리안은 '페르시아 전통음악의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마스터'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샤자리안은 페르시아 음악의 발굴, 계승, 발전에 지대한 공적이 있어서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샤자리안은 페르시아 서예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또한 박애주의 활동에도 열심을 다하고 있다. 샤자리안은 이란의 마슈하드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 때부터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에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이란 전역의 사랑을 받았다.

 

모하마드 레자 샤자리안

 

○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2007년

므스티슬라브 레오폴도비치 '슬라바'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는 소련의 첼리스트이며 지휘자이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간주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전의 해석과 연주 테크닉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새로운 음악에 대한 놀라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폭넓은 레퍼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는 생전에 첼로 신작을 약 1백편 이상이나 초연하였다. 그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앙리 뒤틀루, 비톨드 누토슬라브스키, 올리버 메시앙, 루치아노 베리오, 크르치츠토프 펜데레키, 알프레드 슈니케, 노르버트 모레, 안드레아스 마크리스, 벤자민 브리튼 등 여러 나라의 여러 작곡가들과 교분을 함께하며 풍요로운 연주생활을 하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인권운동가였다. 그리하여 1974년에는 국제인권연맹상을 받기도 했다. 부인은 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이다.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유네스코의 '모차르트 메달'을 수여함은 당연한 처사였다는 것이 음악문화계의 한결 같은 주장이었다.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 메리반 알리예바(Mehriban Aliyeva). 2010년

미모의 메리반 알리예바(1964-)는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다르 알리예브 재단'의 총재이며 아울러 아제르바이잔 현대통령인 일람 알리예브의 영부인이다. '헤이다르 알리예브 재단'(HAF)은 아제르바이잔의 정치가인 헤이다르 알리에브의 정치적 이념을 증진하기 위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교욱사업과 자선사업도 폭넓게 추진하고 있다. HAF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문교부보다 더 많은 학교를 지어주었고 보건부보다 더 많은 병원들을 지었다. 그리고 문화부보다 더 많은 문화행사를 개최하였다. 그만큼 막강한 재단이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활동도 빼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 슈트라스부르 대성당의 복구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알리예바는 2004년에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2005년에는 아제르바이잔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정치적으로 볼때 메리반 알리예바는 남편의 뒤를 이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1995년에 '아제르바이잔 문화친구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은퇴 음악가들을 돌보는 일도 하지만 음악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의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퍼스트 레이디이기도 한 메리반 알리예바

 

○ 타마스 바사리(Tamás Vásáry). 2012년

타마스 바사리(1933-)는 헝가리의 콘서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서 그의 재능과 음악에 대한 헌신은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세계적인 가치관과 부합하므로 모차르트 메달을 받았다. 헝거리의 데브레센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바사리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8세 때에 이미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무대에서 연주하였다. 당시 헝가리 음악의 대부라고 하는 에르뇌 도나니는 바사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어린나이이기 때문에 그런 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후 바사리는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바사리는 이곳에서 현대 헝거리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졸탄 코다이의 조수로서 일했다. 졸탄 코다이는 바사리의 재능을 높이 치하하여서 슈타인웨이 피아노 한대를 선물할 정도였다. 바사리는 14세 때에 부다페스트음악원이 주관하는 프란츠 리스트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얼마후 그는 더욱 공부하기 위해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에 정착하였다.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피아노 연주로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도이체 그라마폰 등을 위해 레코드 취입을 하였는데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 로맨틱 레퍼토리에 특히 뛰어났다.

 

가리 출신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타마스 바사리

 

■ 비엔나 모차르트 협회 주관의 모차르트 메달(최우수 모차르트 해석상) - Mozart Medal(Mozart Medaille)

Mozartinterpretationspreis. Mozartgemeinde Wien(Vienna Mozart Society)가 주관하고 오스트리아 교육문화성이 후원하는 상


- 1966 랄프 봐이커트(Ralph Weikert: 1940-). 오스트리아 지휘자

- 1970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 1946-). 체코 출신의 피아니스트

- 1973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2014). 이탈리아 지휘자

- 1978 퀴흘 사중주단(Kuchl-Quartett). 비엔나음악협회 4중주단. 라이너 퀴흘(Rainer Kuchl)이 창설.

- 1979 외르크 데무스(Jorg Demus: 1928-).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 1987 프란츠 바르톨로메이(Franz Bartolomey). 오스트리아 첼리스트

- 1989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Arnold Schonberg Chor). 1972년 에르빈 오르트너(Erwin Ortner)가 창설

- 1991 한스 페터 베르티츄(Hans Peter Wertitsch: 1939-1996). 오스트리아 작곡가, 예술품 수집가

- 1992 코러스 비엔넨시스(Chorus Viennensis). 비엔나소년합창단 출신 남성합창단. 1952년 설립

- 1993 안젤리카 키르슐라거(Angelika Kirschlager: 1965-).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 1994 슈테판 블라다르(Stefan Vladar: 1965-). 비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 1998 틸 펠너(Till Fellner: 1972-). 비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비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틸 펠너


■ 모차르테움이 주는 모차르트 메달 - 국제모차르트테움재단(Mozarteum International Foundation)이 주관

금상 수상자


- 1941 헤르만 칠르허(Herman Zilcher: 1881-1949).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 작곡가, 지휘자, 음악교사

- 1981 알베르트 리하르트 모르(Albert Richard Mohr: 1911-1992).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단 자문

- 1985 레오폴드 노바크(Leopold Nowak: 1904-1991). 비엔나 출신 음악학자, 안톤 브루크너 전문가

- 2002 헬무트 에더(Helmut Eder: 1916-2005). 린츠 출신 작곡가

- 2012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 1953-). 헝가리 출신 영국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안드라스 쉬프가 베토벤을 가르치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시당국이 주는 모차르트 메달(Mozart-Medaille der Stadt Frankfurt)


- 1982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 1983 마우리체 카겔(Maurice Kagel)

- 청소년독일필하모니(Junge Deutsche Philharmoinie)


청소년독일필하모니 멤버들의 휴식시간


■ 멕시코의 모차르트 메달(Medalla Mozart). 멕시코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 아카데미아 메다야 모차르트 주관.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으로 설립

 

- 1991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스페인 출신 테너, 지휘자, 예술감독

- 1991 엔리크 바티스(Enrique Batiz: 1942-). 멕시코 출신 지휘자, 피아니스트

- 1991 마누엘 데 엘리아스(Manuel de Elias: 1939-). 멕시코 출신 작곡가, 지휘자

- 1991 마리오 라비스타(Mario Lavista: 1943-). 멕시코 출신 작곡가, 작가

- 1991 프란치스코 아라이사(Francisco Araiza: 1950-). 멕시코 출신 오페라 테너, 가곡 성악가

- 1993 비엔나소년합창단

- 1994 리카르도 촌 물돈(Ricardo Zohn-Muldoon: 1962-). 멕사코-미국 작곡가

- 1995 카를로스 프리에토(Carlos Prieto: 1937-). 멕시코 출신 첼리스트, 작가

- 1999 자비에르 토레스 말도나도(Javier Torres Maldonado: 1918-). 멕시코-이탈리아 작곡가

- 2002 펠릭스 카라스코(FElix Carrasco: 1955-). 멕시코-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 2006 세르지오 벨라 마르티네스(Sergio Vela Martinez: 1964-). 멕시코-미국 오페라 감독, 디자이너, 라디오-TV 호스트, 변호사


세르지오 벨라 마르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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