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소프라노 대분석

오페라에서 소프라노 역할 톱 10 - 1

정준극 2019. 4. 16. 10:16

오페라에서 소프라노 역할 톱 10 - 1


오페라에서 소프라노의 역할 중에서 가장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빛나는 역할은 어떤 것일까? 여러 오페라 애호가들이 선정한 '톱 10'의 역할을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 이들 프리마 돈나들이 부르는 아리아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지 못하는 아리아들도 있지만 한 번 들어보면 '과연! 참으로 어려운 곡들이다. 하지만 참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곡이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 


1.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Königin der Nacht)의 역할.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은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  내 마음은 지옥의 복수심으로 끓어 오르고.


파미나 공주에게 단검을 주는 밤의 여왕(Sabine Devieilhe). 코멘트 가든


'마술피리'의 아리아들은 주요 등장 인물들에 대한 간결하고도 생생한 묘사를 하고 있다. 파파게노의 아리아인 '나는 새잡이'(Der Vogelfänger bin ich ja)는 간혹 그에 대하여 아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하여 매력적인 호감을 갖게 해주는 노래이다. 타미노 왕자의 열정에 넘친 아리아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ön)는 파미나 공주에 대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도덕성의 화신처럼 생각되는 자라스트로의 아리아 '오 이스스와 오시리스 신이여'(O Isis und Osiris)는 성악적으로도 깊은 저음의 노래여서 지극한 감동을 준다. 그런가하면 자라스트로의 또 다른 아리아인 '이 성스러운 홀에서'(In diesen Heil;gen Hallen)는 그가 얼마나 자상하고 온화한 사람인지를 표현해 주는 노래이다. 그리고 자라스트로의 적대자인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은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는 그가 사악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래이다. 모차르트는 대본가 겸 배우인 에마누엘 쉬카네더와 친구사이였다. 모차르트는 쉬카네더 극단의 공연을 보러 프라이하우스 테아터 안 데어 뷔덴(Freihaus Theater an der Wieden)에 자주 갔었다. 그러다보니 그 극장 무대의 특징에 대하여도 잘 알게 되었고 또한 쉬카네더 극단의 멤버들 중에서 몇명의 재능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얼마후 그 극장에서 쉬카네다 극단의 사람들에 의해 '마술피리'를 초연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밤의 여왕'을 쉬카네더 극단의 소프라노인 요제파 호퍼(Josepha Hofer)가 맡는 것으로 정했다. 요제파 호퍼는 실은 모차르트의 처형이었다.


'밤의 여왕(디아나 담라우)이 파미나 공주에게 단검을 건네주며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요제파 호퍼는 높은 음역을 가진 소프라노로서 유명했지만 어쩐 일인지 무대에서는 계속적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처형인 요제파 호퍼를 위해 뛰어난 음역과 뛰어난 기교의 정상급 소프라노임을 과시할수 있는 아리아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모차르트는 요제파 호퍼를 위해 '밤의 여왕'의 1막의 아리아 '오 떨지 말아요,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O zittre nicht, mein lieber Sohn)와 저 유명한 '지옥의 복수임...'을 작곡했다. '지옥의 복수...'는 '마술피리'에서 가장 핵심되는 음악일 뿐만 아니라 요제파 호퍼에게도 가장 중요한 아리아였다. 하이 C를 넘는 높은 음을 내야하고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아리아이지만 요제파 호퍼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제파 호퍼는 이 아리아로서 대번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1791년에 초연이 있은 후 거의 10년에 걸쳐 공연 때마다 '밤의 여왕'의 역할을 맡았다. 요제파 호퍼는 '밤의 여왕'의 대명사였다. 아무튼 그로부터 '지옥의 복수...'는 소프라노, 특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는 한번쯤 도전해야 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밤의 여왕의 궁전에 있는 별들의 홀. 1막 6장의 장면. 칼 프리드리히 쉰켈 디자인(1847-49년). 1791년 초연에서의 무대도 이와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밤의 여왕'은 이 아리아를 고승인 자라스트로에 대한 분노와 간절한 복수를 표현하기 위해 부른다. 모차르트는 이 아리아를 D 단조로서 작곡했다. D 단조는 일반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조성이다. 모차르트는 그의 유명한 '진혼곡'에서도 D 단조를 사용하였다. 아마도 '마술피리'에 이어 맞아야 하는 상태를 짐작이나 한듯 D 단조를 사용한 것이다. '지옥의 복수...'는 다이나믹한 대조를 보여주는 곡이다. 악센트가 마치 새가 땅에 내려 앉았다가 하늘 높이 올라가듯한 양상을 보여주는 곡이다. 그리고 반음계의 보컬 라인이 자주 사용된 곡이다. 그런데 이 아리아는 D 단조로 시작되었다가 곧이어 F 장조로 이동한다. F 장조는 D 단조의 친척이나 마찬가지여서 서먹하지 않다. 그리하여 스스로는 자신감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뢰를 준다. 이어서 성악적 스케일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고음을 마음대로 운용한다. '밤의 여왕'은 딸 파미나 공주에게 만일 자라스트로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딸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이럴 때에 '밤의 여왕'은 소프라노의 꽃이라고 하는 하이 C를 반복적으로 부른다. 뿐만 아니라 하이 C를 넘어서 하이 F 까지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뛰어난 음역을 보여준다. 아리아 후반부의 D 단조 카덴짜는 분노의 천둥번개가 치는 듯한 것이다. 아무도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멈추게 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밤의 여왕'이라고 해도 딸 파미나 공주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힘과 덕성의 가치에 대하여는 예상도 못했던 것 같다.


'밤의 여왕'(안나 시민스카)과 세부인들


2. 로시니의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에서 엘레나(Elena)의 역할. 엘레나의 아리아 '이 순간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Tanti affetti in tal momento).


'호수의 여인'은 로시니가 음악을,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가 대본을 만든 오페라이다. 평론가들은 이 오페라의 대본이 '깨끗하고 투명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본은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이 1810년에 완성한 서술형 시인 '호수의 여인'을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을 바탕으로 삼았다. 스콧의 작품들은 로맨틱하며 어떤 경우에는 고틱하기까지 하다. 19세기 초반에는 그런 로맨틱한 스토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스콧의 작품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수의 여인'은 이탈리아에서 스콧의 작품으로 오페라를 만든 첫번째 케이스이다. 로시니의 '호수의 여인'은 로시니가 로맨티시즘 작품에 열중하기 시작한 시초라고 볼수 있다. 과연! 스콧은 이탈리아 로맨틱 오페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서 '호수의 여인'가 나온 이후 거의 20년 동안에 스콧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가 무려 25편에 이른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1835년에 나온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이다. '호수의 여인'은 로시니가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로시니는 산 카를로 극장을 위해서 1815년부터 1822년까지 9편의 오페라를 완성했는데 '로수의 여인'은 그중에서 일곱번째가 된다. '호수의 여인'의 초연은 1819년 9월 24일에 산 카를로 극장에서였다. 이후 이 오페라는 1860년 쯤까지 유럽의 내노라하는 극장들에서 경쟁적으로 공연되었다. 심지어는 1850년대에 쿠바에서도 공연되었고 이어 남미의 여러 도시에서도 공연되었다. 그만큼 인기였다. 그러다가 어느해 부터는 무대에서 사라졌고 근대에 이르러 리바이발된 것은 1958년이 처음이었다.


호수의 여인. 조이스 디도나토


16세기에 제임스 5세가 통치하는 스코틀랜드는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불안한 상태였다. 대표적인 반란세력은 하일랜드에서 엘레나의 아버지인 더글러스가 이끄는 것이었다. 로드리고가 더글라스를 도와 반란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로드리고는 엘레나와 정혼한 사이이다. 그러나 엘레나는 말콤과 은밀히 사랑하는 사이이다. 말콤도 반란세력에 병사로서 합세하여 있다. 제임스 왕은 우베르토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스코틀렌드의 지역들을 자주 순찰하며 민심을 살폈다. 그러다가 하일랜드의 카트리느 호수(Loch Katrine)에서 엘레나를 보고 그 순수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엘레나는 우베르토(제임스 왕)에게 관심을 가질수가 없다. 사랑하는 말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제임스 왕(우베르토)은 엘레나가 반란세력의 리더인 더글라스의 딸이며 비록 로드리고와 결혼 약속이 되어 있지만 말콤이란 청년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란군과 국왕군이 전투을 벌어지고 로드리고가 전사한다. 더글라스와 말콤은 포로로 잡혀 스털링 성에 갇힌다. 제임스 왕은 다시 우베르토로 변장하여 엘레나를 만나서 반지를 주며 만일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이 반지를 보이라고 말한다. 엘레나는 혹시라도 우베르토가 준 반지가 아버지와 사랑하는 말콤을 석방시켜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스털링 성을 찾아간다. 엘레나는 스털링 성에서 우베르토가 제임스 왕인 것을 알게 된다. 제임스 왕은 엘레나의 하소연을 들은 후 반지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어 더글라스와 말콤을 자유롭게 해 준다. 그리고 엘레나와 말콤의 결합을 축복한다.


우베르토와 말콤 사이에서 번민하는 엘레나


엘레나의 아리아 '탄티 아페티'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최대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난곡 중의 난곡이다. 스케일과 파사지와 트릴 등 기술적으로도 그렇지만 음역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아름답고 활기에 넘쳐 있다. 이 아리아는 피날레 파트에서 제임스 왕이 반란에 주도적이었던 아버지와 말콤의 사면을 지시하자 감동에 넘쳐서 부르는 노래이다. Tanti affetti in tal momento! mi sifanno al core intorno, che l'immenso mio contento(이 순간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 나의 마음으로부터 소리쳐 나와요, 말로써 설명하기 어렵답니다, 나의 무한한 행복을).


피날레. 더글라스(그라두스)의 사면, 제임스 왕(플로레스)의 축복 속에 말콤(바르셀로나)과 엘레나(디도나토)의 결합. 메트로폴리탄.


3. 벨리니의 '노르마'(Norma)에서 노르마의 역할.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Casta diva).


'노르마'는 벨칸토 오페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오페라이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끊임없이 넘쳐 흐르는 감동의 오페라이다. 골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드루이드족은 로마제국의 점령으로부터 자유를 찾고자 봉기코자 한다. 로마군을 쫓아내고 사령관인 폴리오네는 처치할 작정이다. 드루이드들이 언제 봉기하느냐는 것은 순전히 신의 계시에 따라야 한다. 여사제인 노르마가 이르민술 신의 신탁을 받아야 한다. 노르마가 다른 여사제들과 함께 드루이드들을 인도하여 등장한다. 드루이드들은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결정되는 것으로 믿어서 마음들이 고조되어 있다. 군중들은 '노르마가 나타났도가'(Norma viene)라고 외치며 어서 속히 신탁을 듣고 싶은 심정이다. 노르마의 아버지로서 드루이들의 지도자인 오로베소도 노르마를 기다리고 있다. 군중들은 노르마가 나타나자 노르마가 입은 옷과 맨너에 대하여 얘기한다. 노르마가 군중들 앞에 서자 모두들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노르마가 전하는 말은 뜻밖의 것이다. '우리의 복수를 위한 시간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이다. 그러면서 로마는 언젠가 멸망할 것이므로 기다리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르마가 받은 신탁을 믿고자 한다. 노르마는 로마군 사령관인 폴리오네와 비밀 결혼을 하여 두 아이까지 둔 상황이다. 드루이드들이 봉기를 하게 되면 먼저 폴리오네를 죽일 것이 분명하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봉기를 미루어야 했다. 그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카스타 디바' 장면.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노브스키. 메트


노르마는 그런 말을 하고 난 후에 제단으로 향한다. 이어 달을 바라보며 간구하는 노래를 부른다. '정결한 여신'(카스타 지바)이다. 달을 정결한 여신으로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정결한 여신이여...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구름을 헤치고 베일을 벗어서 우리에게 돌리소서'라는 말로 노래를 시작한다. 이너 노르마는 여신께서 이 세상에 하늘에서 창조한 평화를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노르마는 군중들에게 이제 제사를 마치자고 요청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군중들에게 새로운 신탁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노르마는 자신에 대아혀도 소원을 말한다. 폴리오네를 해칠수 없다는 것이며 사태가 지난 날처럼 되기를 바란다. 이때 노르마의 카발레타가 '나에게 돌아오라, 오 아름다운 그대여, 우리의 진실한 사랑이 꽃피는 것처럼'(Ah! bello a me ritorno)이다. 군중들은 노르마의 조심스러운 선언에 수긍하여 흩어진다. [사족: 카스타 디바라는 이름의 휴양지 및 온천장이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지방의 코모에 속해 있는 블레비오(Blevio)에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자랑인 곳이다. 또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토리아에 있는 카스타 디바 호텔이다. 특실 중의 하나는 '노르마'라는 이름이다.]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 메트

                 

4.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에서 루치아(Lucia)의 역할. 루치아의 아리아 '여기, 아름다운 그 음성'(Eccola! Il dolce suono).


일명 '광란의 장면'(Mad scene)이라고 불리는 루치아의 아리아 '아름다운 그 음성'(Il dolce suono)은 오페라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감동적인 것이라고 할수 있다. 모든 소프라노들은 언젠가는 한번 이 아리아를 무대에서 부르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고 한다. 성악적으로 힘들과 정서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아리아이지만 가장 긴 소프라노 아리아 중의 하나이다. 연주 시간이 무려 15분이 넘는다. 어떤 경우에는 18분까지도 간다. 보통의 아리아라 3분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에 대단히 긴 아리아가 아닐수 없다. 그것도 미친 상태에서 불러야 하니 더구나 어렵다. 하지만 부르는 사람이야 힘들어 죽겠지만 듣는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지루하지 않고 아리아의 한 소절 한 소절을 마음에 새기면서 듣느니만치 과연 이 아리아는 오페라 아리아 중의 아리아라고 할수 있다. 아무튼 '아름다운 그 음성'은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곡이다. 일반적으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른다. 트릴이나 카덴짜나 룰레이드(빠른 연주)에 뛰어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몫이다. 대개의 경우 루치아의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들은 악보에 있는대로 노래를 부르려 하지만 어떤 소프라노들은 장식음을 사용하여 되도록이면 특별한 아리아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콜로라투라의 장식적인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고 악보에 있는 그대로를 부르려고 하지만 조앤 서덜랜드는 장식음을 비교적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광란의 장면. 소프라노 사라 코번.


이 아리아는 3막에서 루치아가 오빠의 강요에 의해 어쩔수 없이 아르투로와 결혼한 날 밤에 나온다. 루치아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고 또한 그토록 사랑했던 에드가르도가 배신을 했다고 믿어서 정신착란을 일으켜 단검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신랑 아르투로를 찔러 죽인다. 그런 후에 피가 흥건히 묻은 웨딩 드레스를 그대로 입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홀에 내려와서 아리아를 부른다.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는 노래이다. 홀의 한쪽에서는 결혼 축하 파티가 계속 열리고 있는 중에 루치아의 끔찍한 '광란의 장면'이 시작된다. 루치아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루치아는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에드가르도와 결혼하는 것을 상상하며 노래를 부른다. 에드가르도와 함께 지냈던 달콤하고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미친여인을 연기하며 그 어려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보통의 성악가로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치아의 역할은 오페라에서 가장 어려운 역할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달라스 오페라. 광란의 장면. 엘레나 모수크


도니체티는 중세의 고틱풍의 문학작품을 선호하였다. 고틱풍이란 과기, 공포, 음산한 중세적 분위기를 말한다. '람메무어의 루치아'는 고틱풍의 문학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라는 평이다. 원작인 월터 스콧의 '람메무어의 신부'는 고틱 장르의 요소들은 모두 갖춘 작품이다. 폭풍, 유령 이야기, 그리고 물론 저주받은 여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훗날의 무대 감독들은 도니체키의 코틱에 대한 매혹을 어떻게 무대에서 실현하느냐는 고민을 안고 있다. 무덤 장면이 모든 것을 압축하여 얘기해 준다. 처음부터 루치아의 마음 고생이 소개된다. 어머니의 죽음. 자기 자신이 괴물과 같은 짐승 때문에 죽을 뻔 했던 일, 무덤 저 편에서 들려오는 경고의 소리, 오빠가 에드가르도와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속인 일, 부자인 아르투로와의 결혼을 강요 당한 일, 에드가르도가 자기를 속였다고 믿은 일 등등 이 모든 것이 '광란의 장면'에서 함축되어 펼쳐진다.


안나 네트렙코. 메트로폴리탄

         

5.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에서 아비가일(Abigaille)의 역할. 아비가일의 아리아 '나도 한때는 행복하게 살었어요'(Anch'io dischiuso un giorno).


오페라 '나부코'는 베르디의 첫 성공작이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oro, sull'ali dorate)는 외세의 통치를 받고 있는 분열된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가 되어서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곡이다. 잘 아는대로 나부코는 구약성경 예레미아와 다니엘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c 605 BC - c 562 BC)의 이탈리아식 이름인 나부코도노소르(Nabucodonodor)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강대한 바빌론 제국의 왕인 나부코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을 파괴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큰 딸이 아비가일(Abigaille)이며 둘째 딸이 훼네나(Fenena)이다.


자기의 신분을 밝혀주는 문서를 발견한 아비가일(Paoletta Marrocu), 팜 비치 오페라


예루살렘왕의 조카인 이스마엘은 예루살렘 왕국의 특사로 바빌론에 갔다가 훼네나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아비가일도 이스마엘을 사랑한다. 나부코 왕은 이스마엘을 간첩으로 믿어서 포로로 잡아 둔다. 훼네나가 이스마엘을 탈옥시켜서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바빌론은 예루살렘 왕국을 침공키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의 공주인 훼네나를 포로로 삼아서 바빌론과 평화협상을 벌이고자 한다. 아비가일이 변장을 하고 몇몇 병사들을 데리고 바빌론의 군대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잠입하여 훼네나와 함께 있는 이스마엘을 발견한다. 아비가일은 이스마엘에게 훼네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바빌론의 반역자로서 처형받도록 하겠다고 위협하며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청한다. 이스마엘이 거부하자 아비가일은 복수를 다짐한다. 얼마후 나부코 왕은 전쟁터로 나가면서 훼네나를 섭정으로 임명한다. 아비가일은 실망과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던중 아비가일은 우연히 한 장의 문서를 발견한다. 아비가일이 나부코의 적정 딸이 아니라 여노예의 딸인 것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나부코는 여노예가 아이를 낳자 두 사람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으나 아기인 아비가일은 살아 남았던 것이다. 아비가일은 저 유명한 '나도 한때는 행복하게 살었어요'(Anch'io dischiuso un giorno)를 부르며 복수의 집념을 불태운다. 격렬한 분노의 아리아이다. 그러다가 아스마엘에 대한 사람의 감정을 얘기할 때에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로서 노래한다. 그러므로 이 아리아는 분노와 복수의 격렬함과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애절한 감정이 복합되어 곡이다. 감정의 변화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역할이다. 또한 베르디 소프라노로서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정과 성악적인 테크닉을 유감 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아리아에 들어가기 전에 레시타티브가 나오며 정작 아리아는 Ben io t'invenni, o fatal scritto(오 운명의 문서를 찾게 되어 다행이로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Anch'io dischiuso un giorno를 부르는 아비가일(Liudmyla Monastyska). 코벤트 가든







ö  ü  ä  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