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잘츠캄머구트

천상의 잘츠캄머구트

정준극 2020. 3. 4. 10:17

천상의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캄머구트는 아릅답고 신비스런 자연 그 자체를 말한다. 비엔나를 방문한 사람들은 비엔나를 대충 둘러 본 후에 하루 이틀의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나 체코공화국의 프라하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개중에는 오스트리아를 좀 더 많이 보기 위해 비엔나 이외의 도시들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잘츠부르크이다. 아마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를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 다음이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인스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의 그라츠 일것이다. 그런데 비엔나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볼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잘츠캄머구트라고 말한다. 여름에 피서가기도 좋고 겨울에는 겨울에만 느낄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는 것이다. 잘츠캄머구트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상의 장소라고 극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잘츠부르크를 가는 중에 잘츠캄머구트에 속한 바트 이슐이나 몬트제 등을 잠시 들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잘츠캄머구트의 일각일 뿐이다. 기왕에 오스트리아를 알고 싶다면 비엔나도 중요하지만 잘츠캄머구트를 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다. 이제부터 간략하나마 잘츠캄머구트가 어떤 곳인지 소개코자 한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만사제쳐 놓고 제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잘츠캄머구트는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명칭은 '잘츠캄머구트문화경관'(Kulturlandschaft Hallstatt-Dachstein/Salzkammergut: Hallstatt-Dachstein/Salzkammergut Cultural Landscape)이다. 오스트리아는 현재 10곳의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그림과 같은 잘츠캄머구트의 할슈타트


잘츠캄머구트는 도대체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인가? 오스트리아 행정구역상의 한 지역인가? 행정구역은 아니다. 잘츠캄머구트는 잘츠부르크로부터 동쪽으로 알프스 포어랜드(Alpine Foreland: 알프스 갑)와 북부 석회암 알프스(Northern Limestone Alps)를 품에 안고 다흐슈타인 산맥(Dachstein Mountains)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잘츠캄머구트를 가로 지르는 강은 트라운(Traun)강이다. 다뉴브(도나우)의 오른편 지류이다.잘츠캄머구트 지역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알프스 포어랜드는 간혹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바바리아 포어랜드 또는 바바리아 플라토(Bavarian Plateau)라고 불리는 곳이다. 바바리아 지방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바바리아 알프스 포어랜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일어로는 바이에리셰스 알펜포알란트(Beyerisches Alpenvorland)이다. 이 지역은 대체로 평평한 고원지대로서 남서쪽으로는 독일의 남부에 연결되어 있다. 모양으로는 삼각지와 같다. 그래서 서쪽으로는 콘스탄스 호수(보덴 호수)에서부터 시작해서 동쪽으로는 다뉴브에 자리잡고 있는 린츠에 이르기까지이다. 알프스 포어랜드의 남쪽이 본격 알프스이다. 


아름다운 알프스 포어랜드


북부 석회석 알프스(Nördliche Kalkalpen)는 영어로 Northern Calcareous Alps 라고도 불리는 지역이다. Calcareous라는 단어는 '석회질의', '칼슘의' 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의 서부에서 독일 남동부의 바바리아 지방에까지 붙어 있는 지역이다. 구체적으로는 동부 알프스 산맥에 연결되어  있는 지역들을 말한다. 이 지역의 산맥들은 대체로 석회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알프스의 높은 산정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다흐슈타인 산맥(Dachsteingebirge)은 북부 석회석 알프스의 지역이면서 오스트리아 알프스 클립에 속해 있는 곳을 말한다. 다흐슈타인 산맥에는 다흐슈타인 마시프(Massif), 그리밍(Grimming), 자르슈타인(Saarstein)과 같은 고지대를 포함한다. 다흐슈타인 마시프에서 가장 높은 산정은 호에르 다흐슈타인(Dachstein)으로 해발 약 3천 미터이다. 그리밍은 해발 2,350 미터 지대로서 상부 슈티리아 엔스 계곡(Upper Styrian Enns Valley)의 동쪽이다. 자르슈타인은 비교적 해발이 낮은 지대로서 트라운 강안의 북쪽을 말한다. 이렇게 설명해도 어디가 어딘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도로 간략히 소개한다.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캄머구트 지역. 사각표시.


잘츠캄머구트에는 10여 개에 이르는 호수가 있다. 그리고 온천이 여러 곳에 있다. 바드 이슐, 바드 아우스제, 바드 고이제른 등이다.

                      

독일어의 Salzkammergut는 영어로 Salt demesne(솔트 디메인)이라고 번역할수 있다. 독일어에서 Salz는 소금이고 Kammer는 방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광산이라고 번역할수 있으며 Gut는 '좋다'(Good)라는 뜻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경우에는 소유지, 영지를 말하는데 특히 왕실 소유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Salzkammergut는 '왕실 소유의 소금광산'이란 뜻이다. 어떤 해석에 의하면 Kammergut라는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여서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예속된 군주 또는 영주의 소유지를 말한다. Kammergut는 특히 근세의 합스부르크 왕조에 속한 영지를 말한다. 그리하여 잘츠캄머구트의 소금광산은 1745년부터 1850년까지 그문덴에 있는 제국소금청(Imperial Salzoberamt)이 관리하였다.


할라인의 소금광산


잘츠캄머구트는 오스트리아의 공식적인 행정구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잘츠캄머구트에는 분명한 경계가 없다. 역사적으로 잘츠캄머구트는 어떤 경계선이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있는 합스부르크 소유의 소금광산을 말하는 명칭이었다. 그러는 중에 2002년에 바드 이슐에 사무실을 둔 '잘츠캄머구트 관광 마케팅회사'(Salzkammergut Tourisus-Markting GmbH)가 잘츠캄머구트 지역에 대한 정의를 내놓았다. 이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3개 주에 걸쳐있는 58개 마을을 잘츠캄머구트에 포함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오베르외스터라이히 주에 속하며 슈티리아 주와 잘츠부르크 주에는 작은 부분만이 잘츠캄머구트에 속한다고 되어 있다. 오베르외스터라이히 주에서 잘츠캄머구트에 속하는 가장 큰 도시는 그문덴과 뵈클라브루크(Vöcklabruck)이다. 아무튼 '잘츠캄머구트 관광-마케팅 회사'는 잘츠캄머구트를 다음 10개 지역으로 나누었다.


세계 최대의 어름동굴. 잘츠부르크주 베르펜 마을 인근의 텐넨산(Tennengebirge)에 있다.


1. 아우스제어란트(Ausseerland): 바드 아우스제(Bd Aussee): 슈티리아주

2. 볼프강제 휴양지(Ferienregion Wolfgangsee): 볼프강제: 잘츠부르크주

3. 푸슐제 휴가지(Urlaubsregion Fuschlsee): 푸슐제: 잘츠부르크주

4. 다흐슈타인 휴양지(Ferienregion Dachstein): 할슈태터 제(Hallstätter See), 바드 고이제른(Bad Goisern), 할슈타트, 오베르트라운(Obertraun), 고자우(Gosau):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5. 트라운제 휴양지(Ferienregion Traunsee): 트라운제: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6. 아터제 휴양지(Ferienregion Attersee): 아터제: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7. 몬트제란트(MondSeeLand)- 몬트제/이르제(Mondsee/Irrsee): 몬트제 마을, 몬트제, 이르제: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8. 바드 이슐 휴양지(Ferienregion Bad Ischl): 바드 이슐: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9. 아터가우 휴양지(Ferienregion Attergau): 아터가우: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10. 알름탈 휴양지(Ferienregion Almtal): 알름탈: 오베르외스터라이히주


바트 이슐의 카이절리헤 빌라(황제빌라). 이곳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씨씨) 공주와 약혼을 발표했고 1914년에는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서명되었다.


잘츠캄머구트 지역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오늘에 이르렀는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별로 흥미꺼리가 되지 않는 얘기이겠지만 오스트리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알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간략히 소개한다. 우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잘츠캄머구트 지역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았던 곳이라는 점이다. 아마 지천으로 널려 있는 소금 때문인지 또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 때문인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았다.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 발자취가 지금의 몬트제(Mondsee) 일대에 남아 있다. 지주 가옥이 있었다는 흔적이 그것이다. 지주 가옥(Stilt house)이란 늪지대나 호수의 얕은 지역에 기둥을 박아 지은 집을 말한다. 야생동물이나 기타 해로운 생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조사에 따르면 몬트제 일대에는 기원전 3천년 쯤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태고에 바닷물이 빠져나가지 못해서 생긴 소금 광산들이 산재해 있다. 사족이지만, 이 지역에는 hall 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지명들이 있는데 독일어에서 hall 이라는 단어는 소금 광산을 말한다. 예를 들어 Hallstatt(할슈타트), Hallein(할라인) 등이다. 이 지역에 처음 들어와서 살았던 족속은 켈트족이라고 한다. 켈트족이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켈트족들은 지금의 할슈타트 인근에 정착해서 살았다. 이들이 남긴 문화를 켈틱 할슈타트 문화(Celtic Hallstatt Culture)라고 부른다. 그후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관장하면서 역시 소금을 캐내어 이익을 보았다. 로마 제국은 이 지역을 기원전 15년에 켈트왕국에 속해 있던 노리쿰(Noricum)을 로마제국에 편입하였다. 할슈타트 인근에 로마인들이 와서 정착했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소금 증발시설이 무려 1백개에 이른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유의할 사항이다. 이 지역이 소금으로 중요해 지자 게르만 민족의 침략이 심심찮게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기원후 488년에 이탈리아의 왕 오도아체르(Odoacer)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게르만 족들을 모두 추방하였다. 


할라인 소금광산 투어. 할(Hall)이란 단어는 소금광산을 뜻한다.


서기 530년경에 서쪽으로부터 바바리(Bavarii) 족속들이 잘츠캄마구트 지역에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바바리 족속들은 그곳에 이미 들어와 살고 있던 알파인 슬라브 족들을 북쪽으로 밀어내고 그 지역의 주인 행세를 하였다. 바바리 족속들이 정착지는 훗날 바바리아 공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잘츠캄머구트 지역은 유럽에서 소금 생산과 무역으로 명성이 높아졌다. 소금무역은 트라운 강을 따라서 성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에 그 지역은 바바리아 공국에 속한 트라운가우(Traungau)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180년에 트라운가우 지역은 바바리아의 하인리히 사자공(Heinrich der Löwe)이 물러나고 오스트리아의 바벤버그 공국에 지배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오늘날 이 지역이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된 기원이다. 한편, 그때 아우스제어란트의 동남방 지대는 새로 수립된 슈티리아 공국에 남게 되었다. 1278년에 독일의 루돌프 1세는 보헤미아의 오토카르 2세가 장악하였던 바바리아 공국과 슈티리아 공국을 마르흐펠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서 넘겨 받았다. 루돌프 1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한 지파에 속한 인물이었다. 루돌프의 아들인 독일의 알베르트 1세는 라이발인 잘츠부르크 대주교 군주에 대항하여서 잘츠캄머구트를 지켜냈고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인지 바트 이슐을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트 백작부인에게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그후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1506년에 몬트제 수도원의 영지들을 잘츠캄머구트에 추가하였다. 그로부터 이리저리하여 잘츠캄머구트는 합스부르크 황실의 금고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문덴


합스부르크 관리들은 소금 업무를 위해 이슐 근처의 빌덴슈타인(Wildenstein)이란 곳에 본거지를 두었다. 합스부르크는 빌덴슈타인 인근 지역의 소금 광산들을 캄머구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비엔나에서 국가적인 소금 사업을 관장토록 했고 잘츠캄머구트 전역에 걸친 사업관리를 위해서는 그문덴에 소금청(Salzoberamt: 잘츠오버암트)을 설치했다. 실상 그문덴의 소금관리 업무는 15세기부터 시행되어 오던 것으로 17세기에 정식으로 정부의 외청으로 설치한 것이다. 그후 그문덴의 잘츠오버암트는 잘트캄머라는 명칭으로 격상되었다. 1745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칙령에 의해서였다. 사실상 잘츠캄머구트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싯점으로부터였다. 잘츠캄머구트의 중심 청사는 그문덴에 있었지만 지부 사무실을 이슐, 에벤제(Ebensee), 트라운제, 슈타들(Stadl), 람바흐, 벨스(Wels), 치츨라우(Zizlau), 엥하겐(Enghagen), 마우타우젠, 린츠에 두었다. 그러나 이들 소금관청들은 19세기에 해체되었다. 대신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1850년에 그문덴의 잘츠오버암트(Salzoberamt)를 k.k. Salinen- und Forstdirektion()으로 개칭하였다. 이 기구가 오늘날의 Salinen Austria AG의 전신이다. 이 새로운 기구는 1997년에 민영화되었다.


에벤제의 잘리넨 아우스트리아 주식회사(Salinen-Austria AG) 건물.


오스트리아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제국시대에 잘츠캄머구트가 국가재정의 중심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잘츠카머구트에는 황실과 정부의 중요인사들이 자주 왕래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문화예술의 허브가 되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바트 이슐에서 여름철 대부분을 보냈다. 황제가 머물던 곳이 카이저빌라로서 현재는 기념관 겸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증손자가 되는 마르쿠스 에마누엘 살바토르의 저택으로 되어 있다. 원래 이 빌라는 비엔나의 유명한 공증인인 요제프 아우구스트 엘츠의 소유였다. 그러다가 1850년에 의사인 에두아르트 마스탈리에가 매입했다. 그러는 중에 1853년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바바리아의 엘리자배트 공주(씨씨)가 바트 이슐에서 약혼을 하였다. 황제의 어머니인 조피 대공녀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여서 이 빌라를 매입하여 결혼선물로 주었다. 이 빌라에서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에 서명하였고 그로 인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황제는 이 빌라에 머물면서 전쟁시기의 정부를 총괄하였다. 바트 이슐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바트 이슐의 중심가


잘츠캄머구트는 과거에 소금산업으로 대단히 번창했지만 지금은 소금산업이 지방 경제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소금산업보다는 목재산업이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잘츠캄머구트의 산업도시로는 에벤제, 그문덴, 라아키르헤(Laakirchen), 슈타이어뮐(Steyermühl) 등이다. 물론 잘츠캄머구트 지역에는 전통적인 중소기업들의 활동이 활발하여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사실 이 지역의 중소기업은 예전의 소금광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도 잘츠캄머구트 지역은 관광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여름에는 여러 호수에서 수영을 비롯한 수상 스포츠가 인기이다. 그리고 사시사철 등산과 사이클링, 승마가 유명하여 겨울철에는 말할 나위도 없이 겨울 스포츠가 대인기이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온천들이 많아서 휴양과 건강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연중무휴이다.

 

바트 이슐의 어떤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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