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반세기
지금으로부터 50년전, 윈스톤 처칠 수상은 미국을 방문하여 저 유명한 ‘철의 장막’ 연설을 했다. 2차대전 중 히틀러 독일을 상대로 하여 함께 싸웠던 연합국 소련을 적대국으로 간주한 과감한 선언이었다. 처칠 수상의 ‘철의 장막’ 연설은 앞으로 펼쳐질 동․서 냉전의 긴박한 국제정세를 예견한 것이었다. 50년전, 필라델피아에서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가 일반에게 선보여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 천국에 살도록 해 준 엄청난 이벤트였다. 50년전, 국제연합 첫 회기가 런던에서 막을 올렸다. 바야흐로 ‘한지붕 한가족’을 추구하는 뜻깊은 모임이었다. 50년전, 트루만 대통령은 미국원자력위원회(AEC)를 설립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세계적 좌표를 설정해 준 결단이었다. 그리고 50년전, 시카고 남쪽 르 몽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미국 최초의 원자력연구소인 알곤국립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가 역사적인 출범을 했다. 이 연구소는 미국 정부출연연구소의 효시일뿐만 아니라 현대과학기술연구소의 모델이기도 했다. 같은 때에 해방 이듬해를 맞은 우리나라는 사회전체가 찬탁이니 반탁이니 하여 한껏 소란했고 게다가 사상 유례가 없는 콜레라의 만연으로 전국이 초상집이었던 안쓰러운 입장에 있었다.
시카고는 마피아의 알 카포네(Al Capone)로도 유명했지만 세계 원자력계로서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도시로서 기억에 남는 곳이다. 1942년 12월, 시카고대학교 실내 스쿼시 경기장에 세계 최초의 원자로가 설치되었고 이 원자로를 통하여 핵분열 연쇄반응을 사람의 손으로 조절하는 엄청난 일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943년,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 르 몽트지역 숲속에 군용 콘세트 몇 개를 세우고 금속연구실이란 자그마한 간판을 내 걸었다. 맨하탄 프로젝트의 한 파트를 맡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이 연구실 부근 지역을 아르곤(Argonn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원래 아르곤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두어 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 숲이 우거진 지역의 이름이다. 1차대전 중 프랑스가 이곳에 비밀무기 개발기지를 두었던 적이 있다. 미국은 맨하탄 프로젝트를 위해 세운 금속연구실의 위치, 그리고 이 연구실이 하는 일을 밖으로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 이 지역을 아르곤이라고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금속연구실의 명칭도 자연히 아르곤연구실이라고 바뀌었다. 초대 아르곤연구실의 실장은 저 유명한 엔리코 페르미(Enroco Fermi)박사였고 동료연구원으로는 나중에 플루토늄을 발견한 글렌 씨보그(Glenn Seaborg)박사, 그리고 레오 스칠라드 박사, 월터 친박사 등 쟁쟁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2년후인 1945년초 페르미 박사는 맨하탄 프로젝트에 본격 참여키 위해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로 떠났다. 이와 함께 아르곤곤연구실은 면모를 새롭게 하여 이듬해인 1946년 봄 아르곤국립연구소로서 정식 출범하였다. 그러므로 올해는 아르곤국립연구소가 설립된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아르곤국립연구소(ANL)는 오늘날까지 50개 성상을 헤아리면서 여러 가지 국책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여 빛나는 성과를 거둠으로서 ‘과연 아르곤!’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특히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양성한 일은 괄목할 만한 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곤을 거쳐간 노벨상 수상자만 하더라도 페르미 박사를 비롯, 씨보그박사,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박사 등이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아르곤국립연구소는 국제원자력학교를 설치하여 개발도상국의 원자력요원들을 교육 훈련 했다. 상당수의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이 학교를 거쳤으며 필자도 아르곤 출신이다.
오늘날 아르곤국립연구소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자꾸 줄어들고 있고 사업도 여의치 않다. 6천여명이라는 인력은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실정에 있다. 아르곤국립연구소는 지금 몇가지 새로운 국책사업도 도전하고 있다. 그 중 한가지는 첨단광자쏘스(Advanced Photon Source)시설을 건설하여 강력하고도 새로운 X-선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밖에도 일체형고속로 개발사업, 원자력신소재 개발사업, 생명공학과 환경공학 연구, 신에너지 개발사업 등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연구개발 사업들이 과연 아르곤국립연구소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타당한 것이냐는 논란도 있다. 언젠가는 50주년을 맞이할 우리 연구소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떻게 변해 있을까? (199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