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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을 위한 분열

정준극 2007. 5. 22. 14:57
 

융합을 위한 분열


세계 각국의 국가(國歌)중 가장 짧은 것은 일본의 기미가요라고 한다. 우리나라 애국가는 4절로 되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TV방송 시작하거나 끝날 때에는 총 연주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미국의 ‘성조기여 영원하라’도 긴편이며 프랑스의 ‘라 마르세에즈’도 만만치 않게 긴 편이다. 하지만 일본의 기미가요는 정말 짧다. ‘임금의 치세는 천세만세 계속되어 작은 돌이 조약돌이 바위가 되고 거기에 이끼가 낄 때 까지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것이 기미가요가사의 전부이다. 일본말로 하면 '기미가요와 치요니 하지요니 사자레이시노 이와토 나라테 코케노 무스마테'이다. 그래서 일본국가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노래가 과연 끝난 것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국가가 너무 짧다보니 보통 의식에서는 반복해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은 국가(國歌)가 짧아서 그런지 국기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흰 바탕에 붉은 태양을 동그랗게 그려 넣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태양을 그려넣은 일장기는 일본의 개국신화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건국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존재는 아마데라스 오미까미(天照大神)이다. 태양의 여신이다. 일본사람들이 태양을 ‘대지(大地)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아마데라스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 아마데라스가 무슨 심사가 났던지 하늘을 가려 일본 열도를 어둡게 한 적이 있다. 백성들이 어두워서 죽겠다고 난리를 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때 진무(神武)라고 하는 당돌한 인물이 큰 활과 화살을 지니고 아마데라스를 찾아가 태양을 돌려달라고 반 간청 반 협박한 결과 세상이 밝게 되었다고 한다. 진무는 백성들을 추스려 일본의 초대 덴노(天皇)가 되었고 현재의 임금(긴죠오․今上)인 아키히토(明仁)는 진무로부터 계산하여 1백 25대 천황이 된다. 태양의 여신이 일본의 개국을 도왔기 때문에 일본사람들은 태양이 곧 일본이라는 희한한 공식을 고안해내고 만족해 했다. 일본 황실의 태양숭배사상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으며 그런 생각은 오늘날 일본이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융합로(核融合爐)개발에 있어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핵융합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지상에 새로운 태양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의 핵융합연구는 일찍이 1960년대 초부터 본격 착수되었다. 일본원자력연구소(JAERI)가 주관했다. 원자력은 핵분열에너지 뿐만 아니라 핵융합에너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때문에 당연히 원자력연구소가 맡도록 했던 것이다. 일본원자력연구소는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한시간쯤 걸리는 나까(那珂)에 부설 핵융합연구소를 세우고 20년 대역사(大役事)로 JT-60이라는 대형 토카막 시설을 건설했다. 시설이 완성된지 얼마후 당시 천황이던 히로히토(裕仁)가 JT-60을 방문했다. 일본 근대 역사상 임금이 원자력시설을 방문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천황체제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원자력을 반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임금의 원자력시설 방문은 부담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핵융합연구소만은 안가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쇼오와 덴노(昭和天皇)인 히로히토는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어서 자중할 처지였지만 자기 시대에 핵융합연구가 본궤도에 오르자 그 사실이 흡족했던 모양인지 나까핵융합연구소를 시간을 내어 찾아가 JT-60 시설을 찬찬히 시찰했고 일본원자력연구소의 핵융합연구팀을 격려했다. 나까 핵융합연구소에는 외국의 원수급 귀빈들도 여러명이나 다녀갔다. JT-60건물안의 한쪽 벽에는 그동안 이곳을 다녀갔던 외빈들의 사진이 줄줄이 걸려있다. 쇼오와 덴노가 서서 시설를 구경하던 장소는 금줄을 쳐서 기념하고 있다. 누구도 그 자리에는 함부로 서지 않는다..


일본의 핵융합 연구개발은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착실하다. 2050년께에는 핵융합발전을 실현해야겠다는 것이 일본의 타겟이다. 전문가들은 더 먼훗날에 가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으나 ‘목표대로’라는 희망은 읺지 않고 있다. 그런가하면 최근 세계 여러 나라가 핵융합연구에 지쳐버린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 손에 잡힐지도 모르는 일을 가지고 빈독에 물붇기로 돈을 쓰고 있으니 지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꿈의 에너지’를 쓰고 싶은대로 마음껏 꺼내 쓸수 있는 날이 올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원자력전문가들의 ‘꿈’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핵융합연구는 1960년대말부터 우리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조금조금씩 차분히 다져왔다. 그리하여 소형 토카막인 KT-2까지 자력 설계하고 바야흐로 다음 단계를 위해 도약할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핵융합에 관심을 가진 기관이 이곳저곳 등장했다. 따라서 이제는 모두 합심하여 ‘꿈의 에너지’에 한 번 도전해보아야 할 그런 때가 된 것 같다. 다만 바라건대 그 도전이 분열만을 위한 융합으로 되어서도 안될 것이며 융합만을 위한 분열로 되어서도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1996년 7월)

 

*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줄곧 추진해오던 핵융합 연구를 떼어내서 다른 연구소에게 이관한다는 계획에 유감을 표명키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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