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비엔나 하모니

정준극 2007. 5. 22. 14:58
 

비엔나 하모니


베토벤, 하이든,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비엔나에 있는 호텔 이름들이다. 베토벤호텔은 시내 중심지역, 노천식품 시장 겸 주말 벼룩시장이 열리는 나슈 마르크트초입에 있다. 한때 베토벤이 살면서 피아노 소나타 등을 작곡했다는 집이다. 바로 옆에는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가 역사적인 초연을 가진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등 여러 유명 작곡가들의 오페라가 초연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하이든호텔은 백화점 거리인 마리아 힐르퍼슈트라쎄에 있다. 말년에 하이든이 다니던 마리아힐프러(Mariahilfer)성당 바로 옆에 있다. 그 성당 문앞에 하이든 기념상이 우뚝 서 있다. 모차르트호텔은 구시가지 호프부르크궁전 부근 뒷골목에 있다. 모차르트가 그 주변의 집들에서 셋방살이 했다는 얘기다. 슈트라우스호텔은 유명한 ‘비엔나 숲’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식당도 겸하고 있다. 슈베르트호텔은 도심의 슈베르트 링 거리에 있다. 슈베르트가 선생으로 있었던 학교 옆에 있다.


비엔나처럼 음악과 관련과 기념관과 기념명소가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관련된 기념장소가 제일 많다. 이들이 잠시라도 살고 있었던 곳은 국가에서 모두 ‘역사 현장’으로 지정해 놓였기 때문이다. 하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같은 사람들은 워낙 가난해서 이리저리 셋방을 옮겨 살아야 했고 그래서 기념관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거리 이름도 음악가의 이름을 따왔거나 또는 유명한 작품이나 오페라의 주인공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레하르거리(오페레타 메리위도우의 작곡가), 에로이카거리(베토벤의 영웅교향곡), 트라우트거리(슈베르트의 현악5중주 송어), 파파게노거리(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의 주인공) 따위가 그것이다.


이렇듯 비엔나에는 어디를 가도 음악의 향취가 남아있다. 그 중에서 중앙공동묘지는 특별하다.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71번 전차를 타고 한참 내려가다 보면 광대한 첸트랄후리드호프(Zentralfredhof)를 만난다. 중앙공동묘지이다. 워낙 잘 가꾸어 놓았기 때문에 마치 아늑한 공원과 같다. 이곳의 한 구석에 음악가 묘역이 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휴고 볼프, 후란츠 주페 등등 누구나 만나고 싶어하는 세계적 음악가 들이 한쪽 구역에 고스란히 모여 잠들어 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세계적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는 도시로서도 이름나 있다. 국제 원자력기구(IAEA)본부는 비엔나가 자랑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기구이다. 비엔나를 원자력의 메카라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IAEA본부는 UNIDO(유엔공업개발기구)본부와 함께 도나우 강변에 있다. 이곳을 비엔나 인터내셔널 센터(VIC), 또는 우노 씨티(UNO City)라고 부른다. 외교관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유엔기구 도시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VIC에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곁들여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국제기구 본부를 유치하여 막대한 부가가치와 부차적 이득을 얻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거창한 현대식 우노시티 건물을 건설했다. 다만, 임대료는 1년에 단돈 1실링(우리 돈으로 약 80원). 형식적인 제스처였다. 매년 연말이면 유엔기구의 사무국 대표가 비엔나시에 1실링을 봉투에 잘 넣어 전달한다는 것이다.


매년 9월 셋째 월요일부터 열리는 IAEA정기총회는 19976년으로서 장장 제40차를 기록한다. 종전에는 IAEA정기총회가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프부르크(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 대회의실에서 열렸지만 근자에는 VIC옆에 새로 건설한 오스트리아센터(ACV)에서 열리고 있다. 호프부르크 대회의실(대축제실)에서 열린 15년전의 제25차 정기총회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오스트리아 수상이 나와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열리는 원자력 회의가 음악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처럼 조화있는 화음을 창조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는 원자력 분야에 있어서도 동서 냉전이 유별나던 시기였다. 그러한 때에 한 나라의 수상이 딱딱하고 정치적 줄다리기가 가득 찬 국제원자력기구 총회에서 음악 얘기를 서두에 내세웠다는 것은 역시 재치 있는 비엔나 사람만의 ‘비엔나 기질’(Wienerblut)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모니이다. 하모니는 서로 협조할 때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사업이관 이슈 등등 실로 우리 연구소에게는 많은 현안과 난관이 있지만 비엔나 기질처럼 산뜻한 하모니를 이루면서 조화 있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지나친 욕심일까? (1996년 9월)

 

 

비엔나 호프부르크 대회의장에서 열린 IAEA 정기총회 장면 (1984년 9월)

 

'보덕봉 메아리 > 보덕봉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보가 기가막혀  (0) 2007.05.22
알칼리 토끼  (0) 2007.05.22
마쓰로브의 피라미드  (0) 2007.05.22
융합을 위한 분열  (0) 2007.05.22
치자  (0) 200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