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로브의 피라미드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마쓰로브(Masslow)박사는 인간의 욕구를 여섯단계로 나누고 이것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비유하였다. 즉 피라미드의 제일 아래쪽에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놓았으며 그 위로는 그 다음 단계의 욕구들을 차례대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을 사회학에서는 ‘마쓰로브의 피라미드’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욕구중에서 가장 근본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욕구가 ‘마쓰로브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쪽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마쓰로브교수는 생존(Survival)에 대한 욕구라고 단정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욕구 중에서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는 다른 어떠한 욕구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욕구 분출이 마치 유행처럼 되었다. 그럴때마다 ‘생존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인 ‘생존’ 문제를 터치하므로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고자 하는 속셈이다. 믈론 ‘생존권보장’ 욕구에는 누가 보더라도 정당한 것이 있다. 그러나 혹가다가는 비정상적인 것도 있어서 답답하다. 환경을 파괴당한 농어민들이 생존권을 내걸고 환경을 되살려내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주장은 농어민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을 갖게 해준다. 그러나 순전히 이기적인 입장에서 생존권 보장의 카드를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들 자녀에게 영향을 준다는니, 또는 집값이 떨어진다느니 하면서 자기 마을에 고아원이나 장애자 재활원 같은 사회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생존권 침해’ 운운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경우이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서면 주변 수십킬로미터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된다고 하면서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것은 가관중에서도 일등가관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마쓰로브의 피라미드’으로 돌아가 보자. 생존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로는 생물학적(Biological)욕구를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종족보존을 위한 욕구, 성(性)에 대한 욕구, 건강에 대한 욕구.... 그 다음 단계는 안전보장(Secutiry)에 대한 욕구이다. 도둑과 테러와 폭행으로부터 자기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은 안전보장에 대한 인간의 기본욕구이다. 그 다음단계는 사회생활(Social Life)에 대한 욕구이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면 그 다음으로는 이른바 특별지위(Special Status)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명해지고 돋보이려고 하는 욕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다른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구가 그것이다.
‘마쓰로브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치관(Value)에 대한 욕구이다. 일부 학자들은 가치관이야말로 생존권보다도 더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만큼 가치관이란 것은 인간생활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가치관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여 사람의 도리를 말한다. 도덕과 윤리, 정의와 봉사, 희생과 박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 평생 고생하여 번돈을 육영사업을 위해 선뜻 내놓은 이름 없는 할머니, 철길에서 노는 아기를 다가오는 기차로부터 살리고 자기는 목숨을 버린 어느 어머니, 물에 빠져 허덕이는 아이들을 구하고 자기는 대신 익사한 어느 선생님.... 이들의 가치관은 다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그 무엇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례를 올바른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가치관이 전도되어도 정말 말할 수 없이 크게 전도된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례들이다. 외국에서 나라 망신을 시키는 일부 꼴불견 관광객의 행태, 조직폭력배들의 치졸한 권력다툼, 인면수심의 성폭행사건, 졸부들의 꼴사나운 사치와 허영,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일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및 무사안일 겸 책임회피 태도, 그리고 기술보국(技術報國)이니 과학입국(科學立國)이니 하면서 천신만고 자립한 기술은 일부러 와해시키고 오히려 외국기술에 종속되기를 바라는 일부 몰지각하고 매국적이며 이기적인 작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가치관은 과연 어떻게 생겼길래 그런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9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