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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꼬바도의 그리스도

정준극 2007. 5. 22. 15:01
 

꼬르꼬바도의 그리스도


브라질의 리우 데 쟈네이로에는 꼬르꼬바도(Corcobado)라고 하는 산봉우리가 있다. 리우는 바다에 면한 도시이지만 해변 가까운 이곳저곳에 기묘한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서 있는 천혜의 명승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풍광이 어느 곳보다도 멋있는 도시이다. 꼬르꼬바도라는 말은 꼽추라는 뜻이다. 산봉우리가 마치 꼽추의 등처럼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꼽추 산이 세계적 명소로서 이름나게 된 것은 산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념상 때문이다. 높이가 무려 38미터나 되는 기념상이다. 해발로 치면 몇백미터가 넘는 높이의 산정에 있는 것이므로 리우시내 어디서나 알아볼 수가 있다. 이 기념상은 약 1백년전, 리우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정성을 기울여 세운 것이다. 1천톤이 넘는 시멘트가 들어갔으며 완성까지는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손을 활짝 펼치고 저 멀리 바다 쪽을 바라보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코파카바나는 원색의 육체들이 길게 뻗은 백사장에서 난무하는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이파네마는 리우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부촌이다. 각종 유흥업소가 즐비한 곳이다. 반대쪽, 즉 예수 그리스도의 등 뒤 쪽으로는 유명한 리우의 빈민촌이 언덕마다 꽉꽉 들어차 있다. 마치 피난시절 부산의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그런 꼬방촌이다. 꼬방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향해 두 손을 벌려 바라보고 있지 않고 대신 저 부장 동네만 바라보고 있는데 대하여 불만을 터뜨렸다. 부자들만 사람이고 자기들은 사람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어떤 신부님이 재미난 해석을 해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쪽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아무런 불평을 할 필요가 없다.’


이번엔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사람들이 발끈했다.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야말로 교회를 위해 헌금도 많이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도 많이 했으며 나라를 위해서도 세금을 많이 내서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을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저쪽 사람들은 구제불능이어서 아예 외면하고 계신 것이다’라고 내세웠다. 그러니까 또 빈민가측은 ‘봉사 좋아하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했다.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헐벗고 굶주리며 억눌린 사람들 편이다’라고 응수했다.


얼마전 국제원자력기구(IAEA)회의가 있어서 리우에 갔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시간을 내어 꼬르꼬바도를 등정해 보았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 멀리 한반도를 바라보고 계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는 만일 목천의 독립기념관쯤해서 예수 그리스도상이 서 있다면 서울쪽을 향하고 계실꺼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일 서울쪽을 바라보고 계시다면 국회와 방송국과 증권회사들이 들어서 있는 여의도 쪽과 로데오 거리와 수입 옷과 가구, 보석 따위가 진열대마다 넘쳐 있는 백화점의 거리 압구정동쪽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대덕연구단지의 힘없고 착하기만 한 연구소들은 등 뒤로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했다. (1996년 11월)

 

리우 데 자네이로에 있는 꼬르꼬바도의 그리스도 상 앞에서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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