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홍보가 기가막혀

정준극 2007. 5. 22. 15:00
 

홍보가 기가막혀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이 서로 단체싸움을 하게 됐다. 누가 이겼을까? 소방관들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소방관들과 장님들이 집단싸움을 하게 됐다. 어느 편이 이겼을까? 장님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번엔 장님들과 나의 많으신 노인들이 싸우게 됐다. 물어보나마나 뻔하게 노인들이 이겼다. 막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란다. 노인들과 환경단체가 훈수를 두는 지역주민들이 싸우게 됐다. 어느 편이 이겼을까? 지역주민들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님비(NIMBY)주장을 꺽을 어떠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란다. 님비라는 것이 과연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한다하는 국책사업도 님비 앞에서는 맥을 못쓰니 말이다.


님비라는 말은 잘 아는대로 Not In My Backyard의 머릿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영국의 저명한 원자력계 인사인 월터 마샬경이 그의 강연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영국에는 님비(Nimby)라는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님비라는 단어가 일반사람들에게 전혀 생소한 느낌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에는 지역주민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룰루(LULU)라고 표현하는 수가 있다. Lulu는 Locally Unwanted Land Use의 머릿 글자이다. ‘지역에서 원하지 아니하는 부지사용’이란 뜻이다. 원래 Lulu라는 단어는 루이자라고 하는 여자이름의 애칭이다. 통상적으로는 예쁘고 재치있는 아가씨를 비유하여 부를 때 룰루라고 한다. 마치 프랑스에서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를 미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렇듯 님비라든지 룰루라든지 하는 단어가 일반사람들에게는 사랑스럽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것이지만 어찌된 셈인지 오늘날에는 고약한 지역이기주의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어서 기분이 언짢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님비와 룰루의 대표국가이다. 정말이지 언제부터 우리 국민들이 국가사업을 뒷전으로 제쳐두고 ‘나’와 ‘우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백성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김포매립지 건설사업, 인천국제공항 건설사업,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 경주 대현댐 건설사업,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선정사업등등.... 뿐만 아니다. 지체장애자 학교, 맹아학교, 고아원, 양노원, 정실질환자 병원, 가정쓰레기 처분시설 등등 모두 반대이다. 심지어는 전주(電柱)를 세우는 것도 반대이다. 어느것을 보아도 님비씨와 룰루양 때문에 속을 썩힐대로 썩히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원자력사업은 정말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미 허가가 났던 영광 5, 6호기의 건설허가를 영광군수가 돌연 취소한 것은 바로 님비와 룰루현상의 대표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지역주민과 환경반핵단체의 집단반대투쟁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이들의 행동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이들이 어느 나라 백성들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든 처사였다.


돌이켜보건대 그동안 원자력관련기관들은 일반국민, 특히 지역주민들의 국가원전력사업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높이고 아울러 협조를 얻기 위해 각고의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원자력홍보를 해오면서 성과도 있었지만 실은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기가 막힌 일들도 많이 경험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반대주민들이나 환경반핵단체들의 행태 때문이었다. 인신공격,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공갈협박, 폭력행위, 재산파괴, 공공기물파손, 학생들의 등교금지, 주민들간의 상부상조 중지 등등.... 이런 일들을 당하면서까지 왜 원자력홍보를 해야 하는지....  그래서 원자력홍보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해봤자.... 그래도!”라는 자조적 코멘트가 표출되기도 했다. 아무리 해봤자 소득이 없지만 그래도 안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홍보라는 의미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흥부가 기가막혀’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지 않던가?


근자에 정부는 원전건설사업과 같은 국책사업들이 님비나 룰루 때문에 차질을 빚게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자각하여 이른바 ‘국책사업특별법’을 만들 작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가 결정한 국책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면 그건 결국 국가를 위해 큰 손실 아닌가? 그래서 국책사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별도 인․허가권을 배제토록 한다는 새로운 법을 만들기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법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내노라 하는 환경단체들과 시․도의회를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단체가 미리부터 결사반대를 외치지 시작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급하고 필요한 국책사업이라고해도 자기지역에만은 안된다는 어불성설의 주장이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원전건설사업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사업의 갈 길은 어디란 말인가? 참 딱하다. 그러나 어쨌든 ‘사업경험이 풍부한’회사가 그 일을 맡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아무리 님비와 룰루가 판을 치더라도 ‘풍부한 사업경험’으로 끄떡없이 처리해 나갈 것이니 우리는 그저 기대를 갖고 지켜만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1996년 6월)

 

*원자력연구소가 수행하던 방사성폐기물관리 사업을 한수원으로 이관한다는데 대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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