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230. Respighi, Ottorino (레스피기) [1879-1936]-화염 (라 휘암마)

정준극 2007. 7. 4. 17:38

오토리노 레스피기

 

화염(라 휘암마)


타이틀: La Fiamma (The Flame, 화염). 3막의 멜로드라마. 한스 비어스-옌쎈(Hans Wiers-Jenssen)의 희곡 Anne Pedersdotter, the Witch(마녀 안네 페데르스도터)를 바탕으로 클라우이도 과수탈라(Claudio Guastala)가 대본을 썼다.

초연: 1934년 로마 로열 오페라 하우스. 당대의 소프라노 쥬세피나 코벨리(Giuseppina Cobelli)가 주인공 실바나(Silvana)역할을 했으며 작곡자 자신이 직접 지휘했다.

주요배역: 아네스(마녀), 실바나(옷감을 짜는 아름다운 여인), 바실리오(비잔틴 태수를 지냈던 부유한 사람), 도넬로(바실리오의 아들), 유도시아(바실리오의 어머니), 모니카(하녀)

베스트 아리아: The sun, the sea and the wind(S), The Meadow where I used to play(S+T)

사전지식: 이 오페라가 로마에서 초연되었을 때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오페라의 타이틀처럼 화염과 같은 갈채를 받았다. 레스피기가 발표했던 어느 작품보다도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시카고에서 무대에 올려 졌고 이듬해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와 부다페스트에서, 그 다음해에는 베를린, 그리고 드디어 비엔나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으로 이어졌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첫 공연 이래 30회가 넘는 연속 공연을 기록할 정도였다.


라 휘암마는 후기 낭만주의 그랜드 오페라이다. 레스피기가 이 오페라의 제목을 The Witch(마녀)라고 하지 않고 La Fiamma(화염)이라고 한것은 이 오페라의 주제가 마녀라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불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막과 3막의 피날레 장면은 거의 같은 스타일로서 매우 장엄하다. 특히 마녀를 재판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비잔틴 시대의 종교음악 스타일이다. 레스피기가 바로크 이전의 옛 음악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오페라에서도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은 음악이 나오는 것은 좋은 예이다. 오케스트라 편성에 있어서는 고대 악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무용에 있어서도 바로크의 무용을 인용하였다. '라 휘암마'는 이러한 옛 스타일과 레스피기 특유의 인상주의가 조화를 이루어 그랜드 오페라로 전환되어 장관을 이루는 작품이다. '라 휘암마'에 대한 스토리는 1945년에 영화 ‘분노의 날’(Day of Wrath: Vredens Dag)로 만들어졌으며 노르웨이 작곡가 플리플레트 브레인(Fliflet Braein)은 주인공 마법사의 이름인 ‘앤느 페더스도터’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실바나(Monica Minarelli)는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느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줄거리: 무대는 7세기 비잔틴시기의 라벤나(현재는 이탈리아)에 있는 바실리오(Basilio)의 여름 별장이다. 바실리오는 비잔틴제국의 태수를 지냈던 사람으로 지금은 대형 옷감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 별장의 앞에는 푸르른 바다가 펼쳐있고 뒤쪽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음악은 어둡고, 숙명적이며 위협적이다. 초자연적인 으스스한 분위기이다. 하녀들이 옷감을 짜면서 노래를 부른다. 동양적인 신비한 멜로디이다. 바실리오의 늙은 어머니 유도시아(Eudossia)가 하녀들이 옷감을 짜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치 훈계를 하듯 잔소리를 한다. 하녀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실바나(Silvana)는 무언가 억누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며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가련하게 여긴다.

 

 바실리오의 아들인 도넬로와 실바나가 서로의 심정을 얘기하고 있다.

 

 젊고 아름다운 실바나는 바실리오의 둘째 부인이다. 유도시아가 방에서 나가자 감미롭고 조용한 목가적인 음악이 나온다. 여인들은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재잘거린다. 실바나는 밝은 태양과 푸른 바다와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지냈던 옛날을 회상하며 이곳 바실리오의 저택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때 부르는 실바나의 아리아가 참으로 아름답다. 갑자기 밖에서 사람들의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마을의 노파인 아네스 디 체르비아(Agnese di Cervia)를 잡기 위해 �아가는 소리이다. 사람들은 아네스를 마녀이며 유아 살해범으로 고발한 상태이다. 공포에 질리고 히스테리적인 음악이 무대를 압도한다. 사람들한테 �기는 아네스가 실바나의 방으로 도망쳐 들어온다. 아네스는 예전에 한마을에 함께 살았던 일이 있는 실바나에게 제발 자기를 숨겨 달라도 애원한다. 마침내 실바나가 아네스를 불쌍히 여겨 숨겨주기로 한다. 다만, 실바나는 아네스에게 절대로 악마와 계약을 맺지 않겠음을 약속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네스는 그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도넬로와 실바나가 강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바실리오의 아들인 핸섬한 도넬로(Donello)가 멀리 나가 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다. 도넬로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실바나를 처음 만나 보고나서 옛날에 우연히 만났던 기억을 되살린다. 두 사람이 부르는 ‘내가 놀던 푸른 초원’은 대단히 아름다운 듀엣이다. 실바나가 처음 도넬로를 만났던 때는 실바나가 어린 소녀였을 때였다. 도넬로는 부상당한 친구와 함께 실바나가 살고 있는 마을에 나타났었고 그때 실바나가 이들을 지금은 마녀라고 지탄받고 있는 아네스의 오두막집으로 데려갔었다. 음악은 그 당시를 회상하듯 감미롭다. 유도씨아가 들어와 오랜만에 보는 도넬로와 인사를 나눈다. 유도씨아는 도넬로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듯 지나치게 종교적인 태도로 인사를 나눌 뿐이다. 두 사람은 교회에 대한 얘기, 이렌느여제에 대한 충성 얘기, 그리고 바실리오는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제국의 영원한 번영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그러는중 숨어 있는 아네스가 발각된다. 사람들이 아네스를 처형장으로 끌고 간다. 아네스는 거의 신경질적으로 자기의 무고함을 항변하지만 합창은 마치 유죄를 확인이나 하듯 아네스의 가냘픈 소리를 덮어 버린다. 피날레는 군중들의 ‘화형을!’이라고 외치는 소리와 성당에서 울리는 수도승들의 합창이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콘서트 스타일의 '라 휘암마' 연주. 모니카 벨루치


제2막. 도넬로가 하녀들에게 짓궂은 농담을 하며 이방 저방을 돌아다닌다. 도넬로는 하녀들에게 이 궁전의 어느 방에 가면 옷을 입은 조각상이 하나 있는데 처녀들이 지나가면 점잖게 그대로 있지만 바람기가 있는 여자들이 지나가면 저절로 옷이 벗겨진다고 얘기해준다. 이때에 나오는 가볍고 명랑한 음악은 다음에 나올 어둡고 음울한 음악의 전주곡이다. 실바나가  이 집안의 하녀인 모니카(Monica)와 만난다. 모니카는 실바나에게 실은 도넬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실바나는 도넬로가 그저 이 여자 저 여자와 함께 불장난이나 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면서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해준다. 결국 실바나는 모니카를 수녀원으로 보낸다. 음악은 실바나의 보이지 않는 질투심을 표현하고 있다. 옷감공장 주인인 바실리오가 수하의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다. 바실리오는 정교회(Orthodox) 신앙의 수호자로서 자기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로마 교황과 전쟁을 치러야할 입장이다.

 


 

사람들이 나가고 바실리오, 도넬로, 실바나만 남게 된다. 실바나는 도넬로에게 아네스가 화형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도넬로는 실바나가 무언지 아네스의 일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음을 확인이나 하듯 아네스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말해준다. 아네스는 실바나가 자기를 숨겨 주었다고 털어 놓았으며 실바나의 어머니가 자기의 딸을 바실리오와 결혼시키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바실리오는 몹시 화를 내며 누구든지 마녀 아네스의 얘기를 입 밖에 내어 퍼뜨리면 혀를 잘라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잠시후 바실리오가 자리를 뜨자 도넬로는 실바나에게 실은 실바나의 형용하기 어려운 매력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실바나를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그 때문에 그로부터 참회와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바나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당황하고 두려웠지만 자기에게 과연 그러한 놀라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한 심정이 된다. 실바나는 자기에게 아무에게도 없는 마력이 있다고 믿고 한번 테스트해 보기로 한다. 실바나가 나지막하게 도넬로의 이름을 부르자 밖에 나가있던 도넬로가 나타나 실바나의 팔에 안긴다. 2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음악은 치솟는 마치 비옥의 불길과 같다.

 

 라 휘암마 음반


제3막. 도넬로의 방이다. 도넬로와 실바나만이 있다. 음악은 불륜의 열정과 금지된 비극을 표현이나 하듯 대단히 극적이다. 이제 실바나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듯 섹스의 화신이 되어있고 도넬로는 실바나의 마력에 의한 성적 환희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념의 포로가 되어있다. 두 사람이 부르는 듀엣은 R. 슈트라우스의 관능적인 것과 푸치니의 탐미적인 요소의 합작이라고 볼수 있다. 그때 바실리오의 어머니 유도시아가 나타난다. 유도시아는 두 사람의 사이를 다 알고 있다는듯 앞으로 불운이 닥칠것을 예고한다. 얼마후 바실리오가 도착한다. 그는 이제 늙고 허약한 존재일 뿐이다. 아버지 바실리오와 아들 도넬로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바실리오는 이렌느여제가 자기를 다시 비잔틴으로 불렀다고 얘기하며 도넬로도 함께 갈것을 명령한다. 처음에 도넬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비잔틴 제국으로 가는 길만이 자기의 열정을 해방시키는 길이라고 믿어 속히 자리를 뜬다. 실바나는 바실리오와 둘만이 남게되자 도넬로를 자기로부터 떨어트리려는 것이 늙은 노파 유도시아의 음모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며 유도시아를 비난한다. 실바나는 바실리오에게 자기의 청춘을 훔쳐갔다고 비난하며 바실리오가 죽음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내뱉는다. 실바나의 아리아 ‘나에게 손대지 마세요!’는 멜로드라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튼 실바나의 놀랄만한 비난에 바실리오는 그만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 자리에 쓰러진다. 유도씨아가 달려 들어와 바실리오를 껴안으며 실바나에게 ‘기어코 마법으로서 아들 바실리오를 죽였구나!’라고 소리친다. 실바나는 종교재판소에 끌려간다.

 

 

 실바나는 자기가 마녀도 아니며 살인자도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실바나는 자기가 살인자도 아니며 더구나 마녀도 아니라고 강력히 호소하면서 이 모든 사태가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도넬로도 실바나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유도씨아의 새로운 주장 때문에 사태는 일변한다. 유도씨아는 전에 아네스가 화형당할때 한 말을 상기하면서 만일 무죄라고 하면 성골함(성자들의 유골을 담아 놓은 함)에 대고 무죄를 맹세해보라고 주장한다. 도넬로도 오히려 유도씨아의 말을 들어서 실바나에게 그렇게 해보라고 강요한다. 실바나는 도넬로마저 자기의 무죄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을 보고 크게 상심하여 성골함 앞에서 맹세를 하지 못한다. 곧이어 대주교가 손을 들어 실바나가 마녀임을 선언한다. 1막의 피날레와 마찬가지로 화형을 기다리는 군중들의 소리와 성직자들의 찬송소리가 휘몰아쳐서 일대장관을 이룬다. 대주교가 실바나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실바나의 고뇌에 넘치고 독을 품을 듯한 항변이 뒤따른다. 실바나는 ‘사악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욕망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도넬로가 대주교에게 ‘이 여인을 풀어주고 대신 자기에게 심한 벌을 내려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소연도 유도시아의 반대로 소용없게 된다. 마침내 실바나는 저주를 받아 화염 속으로 스러진다.

 

캐나다 머큐리오페라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