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3월의 성인과 축일

3월 17일: 성 패트릭(St Patrick)

정준극 2007. 8. 9. 11:17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상징: 보통 주교의 복장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 패트릭은 손에 지팡이와 클로버(샴록)를 들고 있으며 발로는 뱀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원래 영국에서 태어난 패트릭은 아버지가 교회 집사로서 마을 의원이었다. 패트릭은 젊을 때 비적들에게 납치되어 아일랜드로 노예로 팔려가 6년동안 극심한 역경 가운데서 지냈다. 어느날 밤, 그는 꿈에 역경을 이기고 노예생활에서 도피하게 된다는 음성을 듣고 주인집에서 탈출하였다. 그는 밤중에 거의 2백마일을 뛰다시피 도피하여 항구마을에 도착하였고 마침 프랑스의 골(Gaul)지방으로 가는 배가 있어서 태워 달라고 사정하였지만 선원들은 돈도 없는 사람을 태울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마치 기적처럼 배가 막 떠나려는데 선원이 패트릭에게 배에 올라타라고 허락하였다. 사흘동안 격랑에 시달린후 영국 땅에 도착한 그는  또다시 한달 동안 험난한 길을 걸어 겨우 고향집에 돌아 올수 있었다.

 

 성 패트릭


패트릭은 프랑스 배의 도움을 받은 것을 기억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수도원에 들어갔다. 레랭(Lerins)에 있는 수도원이었다. 얼마후 그는 오세레(Aixerre)에서 신학을 공부할수 있었고 나중에는 주교가 되었다. 얼마후 패트릭은 아일랜드로 돌아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마침 아일랜드에서 복음을 전하던 주교(성 팔라디우스)가 세상을 떠나 그 일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432년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주교로 서품을 받았다. 패트릭은 주로 북부 아일랜드에서 활동했다. 그는 우상섬기는 것을 타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아일랜드 드루이드(Druid)교의 태양신 숭배를 철저히 타파하는데 앞장섰다. 패트릭은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타라(Tara)에서는 부활절 축제를 반대하는 이교도 사제가 부활절 불을 계속끄려고 했지만 꺼지면 다시 켜지기를 계속하였다. 아일랜드의 왕 라오그헤어(Laoghaire)는 이같은 기적을 전해 듣고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패트릭은 라오그헤어 왕에게 토끼풀(샴록)을 이용하여 삼위일체의 진리를 가르쳤다.

 

다운패트릭에 있는 성 패트릭의 원래 묘소였던 자리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그는 여러 곳에 수도원과 수녀원을 세우고 아일랜드에 복음전파의 기틀을 굳건히 하였다. 물론 패트릭은 그 자신이 수도사가 된 일은 없었다. 학구열이 강했던 패트릭은 아르마(Armagh)에 대성당을 세우고 이곳을 신학교로 운영하였다. 아무튼 패트릭은 복음전파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46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일랜드 거의 전역을 기독교화 했다. 행정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업적을 이루었으며 이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조세를 대폭적으로 경감하는 일도 성사시켜 환영을 받았다. 패트릭은 그의 이름을 딴 다운패트릭(Downpatrick)이란 곳에 안장되었다. 패트릭의 유해를 모신 성당은 1539년 영국이 파괴하기 이전까지 아일랜드 기독교인들의 성지였다. 패트릭 기념 성당은 더블린의 국립박물관에 옮겨졌다. 이곳에는 그가 지녔던 작은 종과 그의 치아를 간직하고 있다.


패트릭의 권능은 가히 놀랄만하였다. 그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을 매주 목요일마다 일곱명씩, 매주 토요일마다 열두명씩 구원하였다. 패트릭은 이들 구원받은 영혼들을 마지막 심판의 날에 심판대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3월 17일의 성 패트릭 데이는 아일랜드 최대의 국경일로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날이다. 이날은 전국의 상점이나 학교가 모두 문을 닫고 초록색 축하의 대열에 합류한다. 평소 성당에 가지 않던 사람도 이 날만은 모두 성당을 찾아 간다. 성 패트릭 데이는 아일랜드 이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곳곳에서도 대대적으로 축하되고 있다. 성 패트릭은 지팡이로 아일랜드의 뱀을 모두 쫓아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지팡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패트릭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