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11월의 성인과 축일

11월 19일: 성 엘리자베트(St Elizabeth)

정준극 2007. 8. 9. 13:53
 

상징: 바구니 또는 앞치마에 가득 들어 있는 장미꽃 또는 빵 덩어리.


13세기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2세의 공주인 엘리자베트는 아직도 아기일 때에 궁정시인이 발라드 시를 써서 엘리자베트가 튜링기아의 루이4세와 결혼할 것이라며 축하한다고 했다. 이 발라드 시를 본 왕은 기뻐하여 그 혼사를 추진시켰다. 엘리자베트는 예언대로 결혼을 하였고 결혼생활을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보내는 것 같았다. 엘리자베트는 활동적이고 정열적이며 무슨 일에나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엘리자베트는 남편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다. 엘리자베트는 고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내핍의 생활을 했다. 옷은 거친 것이었으며 왕관을 쓰는 일은 없었다. 엘리자베트는 남을 도와주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만 보면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건네주었다. 때문에 남편인 왕자와 궁정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했지만 엘리자베트는 개의치 않았다. 엘리자베트는 고아원과 병원을 설립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온전히 힘을 쏟았다. 이렇게 되자 남편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나중에 왕비가 될수 있느냐면서 엘리자베트가 왕비가 되지 못하도록 서로 의견을 모았다.


어느날 왕궁에서 공식 연회가 있어서 엘리자베트도 참석해야 했지만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었다. 입고 있던 옷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남루한 겉옷 한 벌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트가 그 남루한 옷을 입고 용감하게 궁전의 홀을 걸러 갈 때 홀연히 광채가 나면서 엘리자베트의 옷이 화려한 왕비의 의상으로 변하였다. 어느 때는 엘리자베트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어머니가 엘리자베트에게서 책잡을 일을 찾던중 음모를 꾸며 어떤 문둥병자를 엘리자베트의 침실로 들여보냈다. 엘리자베트는 그 문둥병자의 환부를 친절하게 보살펴 주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이 닥쳤다. 그러자 그 문둥병자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조각으로 변하였다.


어떤 심하게 추운 겨울밤, 엘리자베트는 자기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과 옷가지를 가지고 밖에 나왔다. 마침 길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추운 밤중에 홑겹의 옷을 입고 다니는 부인에 대하여 몹시 화가 났다. 남편은 바구니에 든 물건이 무엇이냐고 다그쳤다. 바구니를 열어보니 장미꽃 송이들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남편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장미꽃은 엘리자베트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남편이 십자군 전쟁 당시 역병에 걸려 죽자 엘리자베트의 생활은 극적으로 변화하여 여러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그의 시동생은 엘리자베트가 재산을 빼돌려 낭비한다고 비난하고 아이들과 함께 엘리자베트를 거리로 내 쫓았다. 처음 몇주 동안 엘리자베트와 아이들은 돼지우리에서 지내야 했다. 엘리자베트의 시동생은 전 시민에게 아무도 엘리자베트에게 먹을 것이나 잠잘 곳을 제공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다. 엘리자베트는 외곽 변두리의 허술한 오두막집에 겨우 거처할수 있었다. 엘리자베트가 왕궁에서 축출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직도 아름다운 모습의 엘리자베트에게 청혼하는 사람들이 여러명이나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이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하고 프란체스코 수도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엘리자베트는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마르부르크의 콘라드(Conrad of Marburg)의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듯한 마음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보아도 없는 비정의 콘라드는 엘리자베트의 아이들을 모두 내보냈고 엘리자베트를 끝까지 따르던 두명의 신실한 시녀들도 내쫓았다. 대신에 고약한 성질의 여인 두명을 엘리자베트와 함께 있도록 했다. 이들 고약한 여인들은 엘리자베트가 조금이라도 게을리 일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가차 없이 몽둥이로 엘리자베트를 때렸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사랑의 매’라고 말했다. 엘리자베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물레를 감아 실을 뽑아내고 뜨개질을 하며 병원에서 일하면서 보냈다. 그 모든 생활이 콘라드의 혹독한 규율아래 금식과 고행으로 이루어 졌다.


얼마후 죽은 남편의 동료들이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왔다. 이들은 엘리자베트를 보호하는데 온갖 힘을 다 쏟았다. 동료 기사들은 엘리자베트를 왕비로 다시 올리려고 기도하였다. 그러할 때에 엘리자베트를 추방한 시동생이 그동안의 죄과를 크게 뉘우치고 자기의 조카인 엘리자베트의 아들을 다음 후계자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엘리자베트에게는 너무 늦은 일이 었다. 얼마후 엘리자베트는 24세의 아름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트는 그림에서 한손으로는 빵 덩어리를 뒤로 감추고 있고 앞치마 폭에는 장미꽃 다발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른 그림에는 한 손에 두 개의 왕관을 들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 다른 그림은 거지들에게 둘려쌓여 있는 모습이다. 엘리자베트의 유해는 마르부르크에 있다.

 

 구제에 힘을 쓰고 있는 성 엘리자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