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아 카를로 펠리체극장(Teatro Carlo Felice)
Carlo Felice Theater in Genoa
카를로 펠리체 극장
제노아의 피아짜 데 페라리(Piazza de Ferrari)에 있는 카를로 펠리체극장은 제노아에서 가장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오페라극장이다. 극장의 명칭은 후원자였던 카를로 펠리체 대공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카를로 펠리체 대공은 제노아의 예술 활동을 진작키 위해 제노아공국에 극장담당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운 극장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위원회는 1824년 12월 24일 발족되었다. 위원회는 새로운 극장을 산 도메니코(San Domenico)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짓기로 했다. 교회에서 살고 있던 도미니카 수도승들은 지체없이 아무 곳이든 떠나야 했다. 그리하여 1826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2년후인 1828년의 개관 기념 공연은 벨리니의 Bianca e Fernando(비안카와 페르난도)였다. 2,500석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의 음향은 당시 다른 모든 극장에 비하여 가장 우수했다.
베르디는 1853년부터 거의 40년동안 겨울을 제노아에서 보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카를로 펠리체극장과는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고 지냈다. 1892년 제노아시는 콜럼버스의 미국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를 계기로 카를로 펠리체극장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 새로 단장한 카를로 펠리체극장은 베르디에게 마땅한 기념 작품을 만들어 줄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러나 베르디는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서 작곡하기가 어렵다고 하며 모처럼의 영광스런 일을 거절했다.
카를로 펠리체 극장
1941년 2차대전이 한창일때 카를로 펠리체극장의 지붕 돔과 오디토리엄은 영국전함이 쏜 함포 한방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개관이래 한번도 손상된 일이 없이 곱게 간직되어온 건물이었기에 뜻밖의 파손은 충격이었다. 19세기 로코코 양식의 화려함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2년후인 1943년 8월 또다시 폭격을 받아 이번에는 백 스테이지가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귀중한 무대장치와 의상, 소도구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몰려와서 극장에 남이있는 물건중 쇠붙이가 되었든 목재가 되었든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가는 바람에 극장은 피폐해졌다. 전쟁이 막바지였던 1944년에 극장은 다시 한번 공중폭격을 받았으며 이로써 겨우 외벽만 남아 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재건이 시작되었다. 1977년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에게 설계를 맡겼으나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또 몇 년을 허송세월해야 했다. 알도 로씨(Aldo Rossi)가 마지못해 설계를 맡았다. 외관은 원래대로 보수하였으나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으로 바꾸었다. 대극장(2,000석)과 소극장(200석)을 둔 카를로 펠리체시립극장은 1991년 6월 재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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