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생페테르부르크 무소르그스키 오페라-발레극장(Mussorgsky Opera and Balle

정준극 2007. 9. 19. 08:56

생페테르부르크 무소르그스키 오페라-발레극장(Mussorgsky Opera and Ballet Theater)


 

무소르그스키 오페라극장

 

생페레트부르크에는 제정러시아 당시 건설한 세 곳의 중요한 오페라-발레극장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리인스키극장은 1860년 완성되었으며 알렉산더 2세의 왕비 마리아 페도르비나(Maria Fedorvina)를 기념하여 건설한 아름다운 극장이다. 에르미타쥬(Hermitage)극장은 겨울궁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알렉산드린스키(Alexandrinsky)극장이라고도 불린다. 표트르1세가 1802년 완성하였다. 다른 하나가 나중에 무소르그스키 오페라-발레극장이라고 불리게 된 미하일로프스키(Mikhailvsky)제국극장이다. 니콜라이1세 황제의 동생인 미하일로프스키를 기념하여 1833년 지은 극장이다. 콘서트를 위주로 하는 유서 깊은 극장도 있다. 생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으로 1801년에 완공되었다. 이 연주회장은 나중에 쇼스타코비치 기념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830년대의 무소르그스키 오페라극당(당시 미하일로브스키 제국극장) 

 

생페테르부르크의 중심지역인 미하일로브스키 광장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미하일로브스키 제국극장은 초창기에 자체 오페라단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로 독일과 프랑스 오페라단이 찾아와 거의 진을 치고 공연했다. 10월 혁명 이후 미하일로브스키 제국극장에 상주하던 프랑스 오페라단이 철수했다. 미하일로브스키 제국극장은 오페라 전용극장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것도 몇 달 가지 못했다. 정치상황이 복잡하여 불안정한 세월을 지내야 했다. 1918년 다시 문을 연 미하일로브스키 국가극장(State Theater)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공연하여 ‘우리도 할수 있다’를 보여주었다. 몇 년후 이 극장은 대대적인 보수를 통하여 진짜 거의 새롭게 태어났다. 미하일로브스키 국가극장은 인민들이 좋아하는 쉽고 재미난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 극장의 이름도 국가코믹오페라극장(The State Comic Opera Theater)이라고 바꾸었다. 그러다가 1922년에는 말리 아카데미극장(Maly Academic Theater)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다시 레닌그라드 아카데미 말리 극장(Malegot)이라고 변경했다.

 

 무소르그스키 오페라극장 오디토리엄

 

1920년대 중반에 새로운 경제정책과 함께 인민들의 한숨은 한층 깊어졌다. 인민들은 무거운 오페라보다는 가벼운 오페레타를 찾았다. 레가(Legar)의 ‘노란 바지’라는 오페레타는 최고의 인기였다.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적, 심리적 환경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기는 현대음악의 발굴에 중점을 둔 기간이었다. 크세네크(E. Kshenek), 드레쎌(E. Dressel),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의 작품에 비중을 두었다. 1930년대에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으로 말레고트(Malegot)는 소비에트 오페라의 실험실이 되었다. 이 때에 쇼스타코비치의 ‘코’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프로코피에프의 ‘전쟁과 평화’와 같은 걸작들이 세계 초연되었다. 한편 말리(Maly: Little)라는 단어는 이 극장의 이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1989년 ‘레닌그라드 아카데미 말리극장’(말레고트)이라는 명칭은 ‘생페테르부르크 무소르그스키 국립아카데미 오페라-발레극장’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명칭이 너무 길어서 보통 ‘무소르그스키극장’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이름의 극장은 라 트라비아타와 같은 전통적인 레퍼토리 이외에도 란도브스키(Landowsky)의 르 푸(Le Fou), 메헴(Mechem)의 타르투페(Tartuffe)등을 제작하였다. 이제 무소르그스키극장 오페라단은 세계 정상의 오페라단으로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스, 네덜란드, 일본 등을 순방하였다.

 

 무소르그스키 오페라극장 무대 리허설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