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아프리카의 여왕 Emma Renzi (엠마 렌치)

정준극 2008. 2. 27. 09:06
 

아프리카의 여왕 Emma Renzi (엠마 렌치)

 

엠마 렌치는 아프리카의 남단에 있는 남아프리카 출신이다. 아프리카 대륙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오페라 무대를 제패한 영광스런 소프라노였다. 렌치는 1926년 남아프리카의 하이델버그(Heidelberg)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엠메렌티아 스키퍼스(Emmerentia Scheepers)였다. 렌치의 음악적 재능은 학생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그는 여학교에서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그는 세 악기에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어느때 음악 교사가 렌치의 성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으로의 길을 권면했다. 이로서 렌치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성악을 추가하였다. 렌치는 케이프 타운(Cape Town)의 음악대학에 들어가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그 때에 처음으로 오페라에 출연하는 경력을 쌓았다. 1947년 케이프 타운 음악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듬해 런던으로 떠나 국립오페라학교에서 3년동안 오페라를 집중 연마했다.

 

   

 산뚜짜                                            

 

렌치의 첫 오페라 데뷔는 줄리에타(호프만의 이야기)였다. 이후 몇 년동안 그는 잉글리쉬 오페라 그룹에서 활동했다. 이 오페라단은 벤자민 브리튼이 지원하는 단체였다. 이곳에서 맡은 역할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턴 오브 더 스크류’에서 가정교사를 맡은 것이었다. 런던 초연이었다. 1956년 렌치는 남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에든버러 페스티발에서 공연한 성악가가 되었다. 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출연하였다. 이듬해에 그는 헨델오페라협회의 멤버로서 모르가나(Morgana)를 맡았으며 알치네(Alcine)의 콘서트 형식의 연주회에서는 젊은 조안 서덜랜드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다. 1958년 그는 남아프리카에 금의환향하여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렌치는 아직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로 떠나 시실리에서 유명한 마에스트로 산토(Santonocito)에게 음성의 극적인 면을 증진하는 공부를 했다. 시실리에서의 연수와 테스트적인 공연은 그가 이탈리아 오페라에 최적이라는 결론을 얻게 해준것이었다. 1961년부터 66년까지는 칼스루에, 요한네스버그, 그리고 이탈리아의 여러 곳에서 베르디 등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결국 그는 라 스칼라에 정착하였으며 틈틈이 남아프리타를 방문하여 오페라에 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라 스칼라에 입성하게 된 역할은 나부코에서 아비가일이었다. 원래 그리스의 엘레나 술리오티스(Elena Suliotis)가 아비가일을 맡도록 되어 있었으나 사정상 출연하지 못하게 되자 렌치가 전격 기용된 것이었다. 라 스탈라에서의 아비가일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그는 포르투갈, 터키, 유고슬라비아, 미국, 프랑스, 남미, 스페인을 누비는 프리마 돈나가 되었다.

 

아이다


1971년 렌치는 케이프 타은의 니코 말란(Nico Malan)극장의 개관 기념공연에서 아이다를 맡아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뛰어난 프리마 돈나로 인정받은 그는 이탈리아의 여러 곳으로부터 빗발치는 듯한 초청을 받았다. 파르마, 베니스, 나폴리, 볼로냐, 팔레르모, 로마, 베로나 등이었다. 렌치는 라 스칼라에서 주역을 맡은 최초의 남아프리카 소프라노일뿐만 아니라 푸치니의 투란도트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모든 이탈리아 소프라노들을 제치고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를 맡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라 스칼라에서의 투란도트는 몽세라 카바예와 더블 캐스트였으나 나중에 카바예가 사정정 무대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렌치가 단곡 캐스트로서 무대를 압도하였다. 1978년 다시한번 남아프리카를 방문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렌치는 베로나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떠나 남아프리타로 영구히 돌아갔다. 이곳에서 그는 프레토리아(Pretoria)음악학교 오페라 센터의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승낙하여 오늘날 까지 후진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