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경을 극복한 프리마 돈나 Emma Nevada (엠마 네바다)
아무리 유명했던 배우나 성악가라고 해도 1백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기기 십상이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엠마 네바다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잘 알려졌던 엠마 윗솜(Emma Wixom)의 경우가 그렇다. 캘리포니아의 외떨어진 광산촌에서 태어난 엠마 윗솜이 국제적으로 갈채를 받는 뛰어난 프리마 돈나로 인정받기 까지는 수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이 난관들을 용기를 가지고 극복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오페라의 황금시기’라고 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유럽에서 지냈다.
엠마 윗솜은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네바다시티(Nevada City) 부근의 알파(Alpha)광산촌에서 1859년 태어났다. 그마을 의사인 아버지는 원래 미시간주에서 살다가 금광 붐을 쫓아 네바다시티로 왔다. 네바다시티에서 훗날 엠마 네바다라고 이름을 고친 엠마 윗솜이 살던 집은 현재 ‘엠마 네바다 하우스’라는 식당겸 여관으로 변하여 기념되고있다. 엠마는 어린시절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고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다섯 살때에 마을 침례교회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것이었다. 그후 엠마네 식구들은 네바다주의 중심지역에 있는 은광마을 오스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엠마는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기회있을 때마다 마을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다. 몇 년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엠마를 캘리포니아주 오크랜드에 있는 밀스신학교(현재의 밀스 칼리지)에 보내어 정상적인 공부를 하게 했다. 이 학교에서도 엠마는 모든 음악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엠마는 18세때에 미국내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유럽으로 학습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배가 함부르크에 도착하기 직전, 인솔자 교수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다. 다른 학생들은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엠마는 기왕 독일에 온김에 유명한 마르케시에게서 성악 레슨을 받자고 결심하고 무작정 베를린으로 갔다가 계속하여 비엔나까지 찾아갔다. 엠마는 마르케시의 제자가 되었고 3년동안 강훈련을 받은 끝에 소원했던대로 실력을 쌓게 되었고 스승인 마르케시는 이제 무대에 등장해도 문제가 없다고 인정해 주었다. 이와 함께 엠마는 자기가 태어난 마을 이름을 따서 이름을 네바다라고 고쳤다.
1880년, 네바다가 21세때에 그는 런던의 여왕폐하극장에서 ‘몽유병자’의 아미나(Amina)로 데뷔하였다. 관중들의 반응은 더할수없이 고무적이었다. 평론가들은 네바다의 찬란한 앞날을 예견했다. 이어 네바다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트리에스테, 제노아, 플로렌스에서 오페라 무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1881년 봄, 베르디가 네바다의 공연을 보고 그의 뛰어난 성악적 및 연기적 재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베르디는 네바다를 라 스칼라에 추천하였고 네바다는 그곳에서 21회의 공연을 가졌다. 이듬해 그는 파리의 이탈리아극장에서 ‘람메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아 파리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884년, 네바다는 존 맥케이(John Mackay)여사의 영향을 받아 침례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맥케이여사는 버지니아시티에서 큰 재산을 모은 사람으로 네바다가 천주교로 개종할 때에 대모(代母)였다. 맥케이여사는 네바다를 권유하여 파리로 함께 가서 살기 시작했다. 맥케이여사는 떠오르는 스타인 네바다의 후견자를 자처하여 네바다에게 값비싼 선물도 주고 풍요롭게 해주었다고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비엔나에서 마르케시에게 레슨받는 비용조차 한푼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바다의 아버지 또한 별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딸 네바다의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무던히도 고생하며 지냈다. 네바다시티, 오스틴, 그리고 다른 광산마을 사람들도 네바다의 학비를 보태주었다고 한다.
1884년 가을, 파리의 음악애호가인 메플슨(Maapleson) 대령이 미국순회 오페라단을 구성하였다. 네바다는 아델리나 패티와 함께 주역 소프라노로 선발되었다. 이 오페라단은 미국에서 호화전용열차를 이용하여 뉴욕, 시카고, 뉴올리언스, 토페카, 쏠트레이크시티,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공연을 가졌다. 네바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파리로 돌아온 네바다는 의학박사인 레이몽 팔머와 약혼하였고 그해 10월 1일 대단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네바다가 26세때였다. 그리고 이듬해 딸 미뇽(Mignon)이 태어나다. 이들의 저택은 스승인 마르케시가 설립한 음악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미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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