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천상의 아름다움 Lina Cavalieri (리나 카발리에리)

정준극 2008. 2. 27. 14:53
 

▒ 천상의 아름다움 Lina Cavalieri (리나 카발리에리)



오페라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디바로 알려진 리나 카발리에리는 187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날에 이탈리아의 라티움(Latium)에서 나탈리나 카발리에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15세 되던 해에 부모를 잃는 불행을 겪었다. 정부는 어린 카발리에리를 무의탁소녀가장으로 인정하여 가톨릭 고아원에 보내 살도록 했다. 명랑하고 활발한 그는 가톨릭 수녀들의 엄격한 교육과 생활지도에 힘들어하다가 마침 유랑극단이 지나가자 수녀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이들과 합류하였다. 노래 솜씨가 뛰어났던 소녀 나탈리나(Natalina)는 파리에 가서 자기의 이름을 리나(Lina)라고 간단하게 고친후 카페 콘서트에 가수로 취직을 했다. 리나는 타고난 미모와 뛰어난 음성으로 파리 음악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리나는 카페에서 뮤지컬에 출연하는 한편, 오페라 아티스트로의 공부에 전념했다. 오페라 수업을 받은 카발리에리는 소프라노로서 1900년 25세 때에 리스본에서 오페라에 첫 출연했다. 그해에 카발리에리는 러시아 왕족인 바리아톤스키 공자와 결혼했다. 부유한 남편의 후원을 받은 카발리에리는 전설적인 토스카인 에리클레아 다르클레(Ericlea Darclée)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과 같은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 몬테 칼로 오페라, 파리의 사라 베른하르트 극장 등에서 전설적인 엔리코 카루소의 상대역으로 조르다노의 '페도라'(Fedora)에 출연했다. 아무도 거역할수 없는 리나의 매력과 재능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한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카루소는 리나의 놀랄만한 재능과 미모를 사랑하여서 그를 뉴욕에 초청했고 1906년 메트에서 '페도라'를 함께 공연했다. 메트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마음껏 찬양하였다.  



리나는 뉴욕에 2년 더 머물면서 카루소와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를 공연했다. 이와 함께 리나는 당대의 가장 훌륭한 포토제닉 디바로서 인기를 얻었다. 뉴욕의 신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타이틀로 카발리에리에 대한 기사를 싣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행에도 민감한 리나는 몸매가 모래시계처럼 보이기 위해 코르세트로 허리를 잡아 매는 스타일을 뉴욕 상류사회에 널리 전파하였다. 리나의 첫 결혼은 10여년이란 긴 세월을 거친후 끝을 맺었다. 리나는 뉴욕의 명사인 아스터 가문의 윈드롭 아스터 챈들러(Winthrop Astor Chandler)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리나는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는 특히 혁명후의 생 페테르부르크와 우크라이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었다. 리나는 인기가 한창일때에 프랑스의 테너 루시앙 뮤라토어(Lucien Muratore)와 함께 오페라에 출연한 일이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1913년에 결혼하였다. 리나는 결혼후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하여 파리에서 화장품 상점을 차렸다. 이듬해 리나는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Femina라는 잡지에 여성화장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이 칼럼들을 모아 ‘나의 아름다움의 비밀’(My Secrets of Beauty)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또 다른 인기를 모았다. 1915년 리나는 이탈리아에서 영화촬영 요청이 오자 아예 고국인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살 결심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도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자 방향을 바꾸어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미국에서 여러편의 무성영화에 출연했다. 모두들 대단한 히트를 거둔 영화였다. 영화촬영 도중에 리나는 이탈리아 출신인 파올로 다르반니(Paolo d'Arvanni)라는 사람을 만나 네 번째 결혼을 했으며 결국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비올레타


어느덧 리나가 60대에 접어들었을때 이탈리아는 다시한번 전운에 휩싸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었다. 플로렌스의 교외에 살고 있던 리나는 자진하여 간호원으로 봉사하였다. 1944년 2월 7일, 그날도 리나는 플로렌스의 군병원에서 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려 했다. 그 때 생각지도 못했던 연합군의 공중 폭격이 시작되었고 리나의 집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리나 카발리에리는 폭격으로 그 순간에 파란만장한 세상을 하직하였다. 1955년 이탈리아의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The World's Most Beautiful Woman)이라는 영화에서 리나 카발리에리 역할을 맡아하였다. 2004년, 저명한 작가인 파울 프라이어(Paul Fryer)가 ‘리나 카발리에리: 오페라의 가장 위대한 아름다운 사람의 생애’(Lina Cavalieri: The Life of Opera's Greatest Beauty)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리나는 생전에 메트를 비롯한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 60회 이상의 공연을 하였으며 영화는 모두 7편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그중에는 1914년 만든 ‘마농 레스코’도 포함된다. 리나와 함께 오페라를 공연한 일이 있는 이탈리아의 세계적 바리톤 티타 루포(Titta Ruffo)는 ‘리나가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그 오페라는 신비한 생명력을 찾는다’라고 전하였다.


 

 

 

페도라                                                     마농 레스코

 

미뇽                                                             토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