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속의 공주 Lillian Nordica (릴리안 노르디카)
릴리안 노르디카는 오페라의 동화속 공주처럼 화려한 삶을 살았던 소프라노였다. 다만 일반 동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인인 그는 메인주의 화밍턴(Farmington)에서 릴리안 노턴(Lillian Norto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바이로이트에 출연한(로엔그린의 엘자) 바그너 소프라노였다. 그는 ‘양키 디바’로서 코카콜라 선전에도 등장하여 신데렐라에 버금하는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공부한 그는 10대의 소녀기를 갓지난 시절에 이미 미국과 영국전역(1875-78)을 순회하며 독창회를 가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를 동화속의 공주라고 불렀다. 사랑스런 모습에 뛰어난 재능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하였기 때문이었다. 영국 순회 연주회를 끝낸 그는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밀라노에서 본격적인 성악 수업을 받았으며 노튼(Norton)이라는 원래 이름을 노르디카라고 바꾸고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1879년 이탈리아의 만조니극장에서 돈나 엘비라(돈 조반니)를 맡은 것이었다. 신데렐라와 같은 노르디카의 출현에 사람들은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이어 생 페테르부르크에 전속되어 휄리나(미뇽), 마르게리트(위그노), 이네즈(아프리카 여인), 베르타(예언자), 아멜리아(가면무도회), 밤의 여왕(마적), 술라미(시바의 여왕), 케루비노(피가로의 결혼), 시모네(들리브의 장 드 네비유), 프린세스 유도시(유태여인), 이사벨라(마이에르베르의 로베트 르 디아블) 등의 역할을 맡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북쪽 지방인 러시아에서는 노르디카라는 매력적인 이름과 함께 ‘눈의 공주’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882년은 노르디카가 파리 오페라계에 데뷔한 역사적인 해였다.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트를 맡아 콜로라투라로서 파리 음악계에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때부터 그의 음성은 폭이 넓고 웅장한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징조를 보여준 것이었다. 노르디카의 메트로 데뷔는 1891년 위그노에서 발렌틴을 맡은 것이었다. 그후 노르디카는 바그너 오페라에 괄목할만한 강점을 보여 주었다. 브륀힐데는 바그너 소프라노로서의 노르디카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어 준것이었다. 그는 이밖에도 엘자, 비너스, 쿤드리, 이졸데등 바그너의 거의 모든 주인공 역할을 놀라운 재능으로 소화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에 이르기까지 메트로의 빼놓을수 없는 바그너 소프라노로서 갈채를 받았다. 바그너 소프라노로서 노르디카는 특별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물흐르는듯한 레가토를 사용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이탈리아 벨칸토 스타일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매우 아름다운 바그너로서 사랑을 받았다. 동화속의 공주는 영웅적인 바그너의 여성으로 변모하였다.
릴리안 노르디카는 자상하고 부드러우며 사랑에 넘친 마음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지만 세 번에 걸친 결혼은 모두 행복하지 못했다. 두 번째 결혼은 졸탄 돔이라는 테너였지만 이 결혼이 가장 행복하지 못했다. 성격차이였다. 노르디카는 자녀를 무척 갖고 싶어 했지만 끝내 아무런 자녀도 두지 못했다. 그는 이 때문에 마음이 우울해졌고 슬픔을 삼키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공연은 1913년 보스톤에서 이졸데였다. 노르디카는 1909년 보스턴 오페라극장의 개관식때 라 조콘다에 출연한 일이 있어서 보스턴 시민들은 그를 열열히 환영하였다. 이듬해 그는 미국과 남미, 그리고 멀리는 호주에 이르기까지 순회연주를 떠났다. 시드니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항구에서 거의 배를 타지 못할뻔했다. 배가 이미 출항했기 때문이었다. 노르디카는 무전으로 배를 불러 다시 항구로 오도록 하여 가까스로 승선할수 있었다. 그것이 운명의 승선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노르디카가 탄 타스만호는 산호초에 좌초하여 3일 동안 발이 묶여 있게 되었고 그 기간동안 그는 열대의 더위에 피곤이 겹쳐서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며칠후 자바섬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1914년 이국땅 자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졸데 아이다
브륀힐데 엘자(로엔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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