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Mirella Freni (미렐라 프레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금세기 최고의 테너라고 한다면 미렐라 프레니는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이다. 미렐라 프레니를 소프라노의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역할도 할 수 있고 풀 리릭 소프라노도 할수 있으며 스핀토면 스핀토, 수브레토면 수브레토 무엇이든지 소화할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미렐라 프레니는 하늘이 낸 디바이다. 미렐라 프레니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라 보엠등 여러 편의 오페라에 함께 공연하여 불후의 음반을 남겼지만 그 보다고 두 사람은 대단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고향이 같으며 같은 해에 태어났고 가족들간에 아는 사이였다. 미렐라 프레니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935년 이탈리아의 북부 모데나(Modena)에서 태어났다. 생활이 어려웠던 미렐라 프레니의 어머니는 모데나 담배공장에서 일했다. 이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여인이 있었으니 파바로티의 어머니였다. 이들은 서로 자기 아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힘든 일을 참고 지냈다. 대단한 인연이다.
'돈 카를로'에서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
1935년 2월 27일 모데나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렐라는 1980-90년대를 풍미한 세계적 소프라노이다. 그의 음성은 세월을 뛰어 넘으면서 언제나 힘차고 젊은 기색을 유지했다. 그는 연기에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 노래와 연기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미렐라의 오페라 레퍼토리는 역 40편에 이른다. 주로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이다. 하지만 유진 오네긴의 타티아나와 같은 역할도 훌륭히 소화하였다. 미렐라는 오래전 불가리아 출신의 베이스 니콜라이 기아우로프(Nicolai Ghiaurov)와 결혼하여 오페라 출연과 레코드 취입을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라 보엠'에서 파바로티와 함께
미렐라는 어릴때부터 노래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0살때에 라디오 성악경연대회에서 Un Bel Di Vedremo를 불러 두각을 나타내었다. 테너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가 어린 미렐라에게 어릴때부터 그런 힘든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에 무리가 갈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들때까지 기다리라고 조언을 해주기까지 했다. 이같은 조언을 마음에 담았던 미렐라는 17세가 될 때까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미렐라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세 때인 1955년 고향 모데나에서였다. 카르멘에서 미카엘라 역을 맡았다. 대성공이었다. 그후 여러 극장에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미렐라는 경력 쌓기는 잠시 덮어두고 그의 성악 선생인 레오네 마지에라(Leone Magiera)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 두었다. 결혼한지 몇 년후 미렐라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1958년 토리노에서 미미를 맡아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듬해부터 2년동안 미렐라는 네덜란드 오페라단에 전속되어 여러 편의 오페라에 출연하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미렐라를 세계 오페라계에 알린 것은 글린드본(Glyndebourne)에서 거장 프랑코 제피렐 리가 제작의 ‘사랑의 묘약’에서 아디나를 맡고부터였다. 같은 시기에 미렐라는 수잔나(피가로의 결혼)와 체를리나(돈 조반니)를 맡아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랑의 묘약'에서 아디나
1961년, 미렐라는 활슈타프의 난네트를 맡아 로열오페라하우스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는 대망의 라 스칼라에 데뷔하였다. 거장 제피렐리가 제작하고 허버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라 트라비아타였다. 이로부터 미렐리는 카라얀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프라노중의 한 사람이 되어 여러 오페라와 콘서트에서 함께 공연했다. 1965년에는 메트로폴리탄에 라보엠으로 데뷔하여 갈채를 뜨거운 받았다. 미렐라는 1970년대부터 무거운 역할을 맡기 시작하였다. 돈 카를로의 엘리자베타,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시몬 보카네그라의 아멜리아, 그리고 에르나니의 엘비라 역을 맡아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완벽한 표현을 하였다. 두 번째 남편인 베이스 기아우로프와의 결혼은 1981년이었다. 미렐라는 1990년에 비망록인 ‘나의 사랑 극장’(Mio Caro Teatro)를 펴낸다. 미렐라는 같은 해에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대십자가 기사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는 1993년 미렐라에게 뢰종 도네르 훈장을 수여하였다. 미렐라 프레니는 50대 중반이면서도 새로운 역할을 마스터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밀라노, 파리, 뉴욕에서 아드리아나 르쿠브르를 공연하였으며 특히 밀라노에서는 죠르다노의 훼도라를 공연하여 만장의 갈채를 받았다. 미렐라 프레니는 타고난 음성과 재능이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진실한 자세로 오늘날 불멸의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로서 인정받고 있다.
미미 나비부인
로미오와 줄리에서 프랑코 코렐리와 함께
'장미의 기사'에서 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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