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신 밤의 여왕 Wilma Lipp (윌마 리프)
1926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윌마 리프는 1940년대 후반 가장 뛰어난 ‘밤의 여왕’으로 이름을 떨쳤던 리릭 콜로라투라이다. 비엔나와 밀라노에서 공부한 그는 1943년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로지나(세빌리아의 이발사)로 데뷔하였고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부터 슈타츠오퍼의 주연급 단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윌마 리프는 두명의 유명한 음악교사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한 사람은 드라마틱 소프라노였던 안나 바르-밀덴부르크(Anna Bahr-Mildenburg)였고 다른 한 사람은 베이스-바리톤인 알프레드 예르거(Alfred Jerger)였다. 안나 바르-밀덴부르크는 구스타프 말러가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을 있을때 이름을 떨쳤던 소프라노였으며 알프레드 예르거는 당시 가장 뛰어난 베이스-바리톤 겸 배우였다. 1948년 비엔나에서의 ‘밤의 여왕’ 데뷔는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장관을 이룬 무대설정이었으며 이에 걸맞게 윌마 리프의 아리아는 슈타츠오퍼의 갤러리를 넘어 밤하늘에까지 높이 솟아올랐다. 1950년 라 스칼라에서의 데뷔도 ‘밤의 여왕’이었다. 이 공연 역시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어느 누구도 윌마 리프만큼 ‘밤의 여왕’을 완벽하게 표현한 콜로라투라는 찾아 볼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코벤트 가든에서 질다(리골레토)를 맡았다. 역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다음해에는 파리 오페라에서 역시 ‘밤의 여왕’을 맡았다. 파리의 화제였다. 그는 ‘밤의 여왕’을 두 번이나 레코딩하였다. 1950년 허버트 폰 카라얀과 함께 하였고 다른 하나는 1955년 칼 뵘과 함께 레코딩하였다.
윌마 리프의 또하나의 대표적인 역할은 ‘박쥐’에서 로잘린데였다. 가장 제격의 역할이라는 평을 받았다. 힐데 귀덴(Hilde Güden)과 함께 콤비를 이룬 ‘박쥐’는 대단한 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마치 귀부인과 같은 지성적이고 온화한 풍모를 지닌 윌마 리프의 미국 진출은 196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4개의 각각 다른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장미의 기사’에서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마샬린)와 함께 조피(Sophie)를 맡은 것이었다. 미안하게도 그다지 뛰어난 노래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더구나 슈바르츠코프의 우아함에 눌려 상대적으로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중들은 비엔나 출신의 윌마 리프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환호를 보냈다. 대신 활슈타프에서의 난네트는 대성공을 기록하였다. 미국 공연을 마치고 비엔나로 돌아온 그는 슈타츠오퍼로부터 Kammersängerin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수여 받았다. 1982년 윌마 리프는 완전히 무대에서 은퇴키로 결정하고 잘츠부르크 모차르토임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 진면목을 보여준 역사적인 소프라노였다.
근년의 윌마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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