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콘트랄토

최고의 암네리스 Rosa Olitzka (로사 올리츠카)

정준극 2008. 2. 28. 14:23
 

▒ 최고의 암네리스 Rosa Olitzka (로사 올리츠카)

 


로사 올리츠카는 아마도 오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암네리스(아이다)일 것이다. 그는 한 해에 암네리스만 50회 이상 맡아하였다. 매주 한번 이상 아이다에 출연하였다는 계산이다. 그는 또한 중간 사이즈에서부터 대형 사이즈에 이르는 바그너 역할을 맡아 높은 찬사를 받았다. 메리(방랑하는 화란인), 오르트루트(로엔그린), 프리카(발퀴레), 브랑게네(트리스탄과 이졸데), 마그달레네(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등이다. 그러나 착실표 디바인 올리츠카는 대가이면서도 디바인척하는 다른 사람들이 잘 맡지 않으려는 작은 역할도 성실하게 맡아 존경을 받았다. 예를 들면 바그너의 링 사이클에서 노른(Norn) 중의 한사람, 발키리 중의 한 사람, 라인의 처녀중 한사람 등이다. 그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바그너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할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카르멘과 아주체나의 해석에 있어서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롤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맛달레나(리골레토)에서도 빛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런가하면 그는 ‘바지역할’에 있어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잘 알려진 바지역할, 즉 탄호이저의 목동, 파우스트의 지벨(Siebel), ‘로미오와 줄리엣’의 우르뱅(Urbain)과 스테파노, 미뇽의 프레데릭크, 심지어는 ‘마적’의 요정소년 역할도 맡아하였다.

 

카르멘

 

폴란드 후예인 로사 올리츠카는 1873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베를린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한 그는 아직도 10대의 소녀일 때에 파리로 가서 프랑스 오페라도 공부하였다. 파리에서는 유명한 데지레 아르토 드 파딜라(Désirée Artôt de Padilla)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하여 16세의 소녀로서 베를린에서 리사이틀을 가져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올리츠카는 풍부하고 벨베트처럼 부드러우며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 결코 흔들림이 없는 세련된 음성의 콘트랄토로 성장하였다. 그는 오페라 경력의 초기에 어떤 역할이든지 맡아 함으로서 나중에 폭넓은 레퍼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초기에 브르노(Brno, 당시는 Brünn), 하노버, 함부르크, 드레스덴의 무대에 섰으며 계속하여 무대의 폭을 넓혀 런던의 코벤트 가든, 생 페테르부르그, 베를린, 밀라노(라 스칼라), 브뤼셀, 그리고 특히 파리에서는 프랑스 대본의 ‘신들의 황혼’에서 발트라우트(Waltraute)를 맡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1894년 그는 담로슈(Damrosch) 오페라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순회하였다. 1895년부터 1901년까지의 6년동안은 메트로에서 수많은 오페라 팬들을 구름같이 모여들게 했다. 그리하여 결국 미국에 머물러 살기로 작정했고 보스턴과 시카고의 오페라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시카고에서 은퇴하여 1949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시카고에서 살았다. 로사 올리츠카는 ‘오페라의 황금시기’를 장식한 수많은 디바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주요한 공연의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기재되는 사랑을 받았다. 어떤 경우, 그는 5-6명의 탁월한 오페라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황금시기’인 당시, 미국의 오페라 무대에는 메가톤급 스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콘트랄토에 있어서는 슈만-하인크, 줄리아 라볼리(Giulia Ravogli), 유제니아 만텔리(Eugenia Mantelli), 소피아 스칼키(Sofia Scalchi)와 같은 거인들과 경쟁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줄밖으로 밀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