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명테너

투리두의 이미지를 창조 Fernando Valero (페르난도 발레로)

정준극 2008. 3. 1. 22:54
 

▒ 투리두의 이미지를 창조 Fernando Valero (페르난도 발레로)

 

 

스페인이 낳은 테너 페르난도 발레로는 1854년 세빌리아의 에시하(Écija)마을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했으나 성악적 재질을 아까워하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탐버리크(Enrico Tamberlick)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첫 오페라 데뷔는 1878년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Teatro Real)에서 오버(Auber)의 프라 디아볼로중 로렌조(Lorenzo)를 맡은 것이었다. 2년후, 그는 이탈리아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출연은 볼로냐에서 폰키엘리의 I Promessi Sposi였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라 화보리타, 파우스트, 청교도, 몽유병자 등에 출연하여 성가를 높여갔다. 발레로의 명성은 아르헨티나, 비엔나, 생 페테르부르크에까지 넓게 퍼졌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데뷔는 1993년 파우스트(구노)로였으며 이로부터 그는 10여년간 라 스칼라의 스타로서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밀라노 시민들은 ‘작은 가야레’(Il Piccolo Gayarre)라고 불렀다. 가야레는 당대 최고의 스페인 테너였다. 라 스칼라에서 그는 ‘진주잡이’의 이탈리아어 버전 첫 공연에 출연하였으나 나아가 1891년에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초연에서 투리두를 맡아 세계 오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그가 최고의 인기를 모은 역할은 1895년 라 스칼라에서 베르테르를 맡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발레로만한 베르테르가 없었다는 평을 받았다.


발레로는 세계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여러 역할 중에서 가장 대단한 역할은 1901년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이었다. 넬리 멜바가 질다였고 장 라살레(Jean Lasalle)가 리골레토였다. 1901-03년 시즌에는 메트로에 등장하였다. 메트로에서의 첫 역할은 투리두였다. 그러나 메트로에서 그의 가장 찬란한 역할은 돈 호세였다. 1897년,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수 없었다. 폐질환이 걸려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02년 은퇴하여 생 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오페라 생활 20년만에 평온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셍 페테르부르크에서 음악원을 개설하여 후진들을 가르치다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에 이국땅인 러시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국 스페인의 위대한 테너 훌리안 가야레(Julian Gayarre)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라 스칼라에서는 ‘작은 가야레’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발레로는 가야레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감미로운 고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저음은 당당했으며 안정되어 있었다. 그는 호흡이 대단히 길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 보다도 음을 길게 끌수 있었다. 그는 위대한 리리코-스핀토였다. 돈호세, 투리두, 데 그류(마농 레스코)는 그러한 역량을 충분히 보여준 역할이었다. 푸치니는 특별히 그의 데 그류 역할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푸치니, 마스카니, 베르디와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오페라에서도 리릭 테너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베르테르(마스네)는 대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