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바그너 리릭 테너 Jess Thomas (제쓰 토마스)
1900년대 중반부터 상당기간동안 바그너 리릭 테너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던 제쓰 토마스는 스탠포드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개인적으로 성악을 공부하여 대성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는 1957년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지만 맡은 역할은 조역에 불과했다. 첫 역할은 샌프란시스코오페라에서 ‘장미의 기사’중 호프마이스터(집사)를 맡은 것이었고 다음에는 베르디의 맥베스에서 말콤(Malcolm)을 맡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독일로 무대를 옮긴 그는 칼스루에에서 로엔그린의 타이틀 롤을 맡아 본격적인 오페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가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60년대 초반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여러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파르지팔, 이어 로엔그린, 그리고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발터(Walther), 이어 탄호이저, 지그프리트를 차례로 맡았다. 이러한 역할로 그는 1963년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메달’을 받았다.
비르기트 닐쓴과 함께
바그너 테너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그는 비엔나 슈타츠오퍼, 베를린 도이치오퍼, 취리히오페라의 초청 테너로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1961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멤버가 되었으며 이 오페라극장의 재개관때에는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연출의 ‘그림자 없는 부인’에서 황제를 맡아 찬사를 받았다. 그런 연후, 그는 메트로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왔다. 메트로에서는 연속 15시즌을 무대에 등장하여 15개 역할을 맡아 95회의 공연을 가지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메트로에서 그가 주로 맡은 역할은 바그너 주인공들이었으며 이밖에도 휘델리오의 플로레스탄, ‘삼손과 델릴라’의 삼손를 맡아 갈채를 받았다. 그는 링컨 센터의 오프닝에서의 미국 작곡가 사뮈엘 바버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초연에서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상대역으로 안토니를 맡아 ‘야, 미국에도도 저런 훌륭한 테너가 있구나’라는 찬사와 함께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그는 메트로에만 만족하지 않고 잘츠부르크, 코벤트 가든, 파리 오페라에서 바그너 역할로서 무대를 압도하였다. 특히 잘츠부르크에서는 1964-65년 시즌에 거장 칼 뵘의 지휘로 바커스를 맡은 것, 그리고 1969-70년의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지그프리트를 맡은 것이 역사적인 공연으로 기억되고있다. 그의 고별 공연은 1982년 워싱턴에서 메트로오페라단이 공연한 파르지팔이었다. 1927년 사우스다코타의 핫스피링스(Hot Springs)에서 태어난 그는 199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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