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의 혜성 Salvatore Licitra (살바토레 리치트라)
1968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살바토레 리치트라는 부모가 이탈리아의 시실리 출신이었다. 그리하여 리치트라는 어릴때부터 밀라노에서 자랐다. 그는 오페라에 대하여 우연히 집착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자기의 성악적 재능과 음성에 대하여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기라성과 같이 수많은 테너들과 경쟁하여 성공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래픽 아티스트로서 활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19세때부터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성악 레슨 선생은 그의 재능이 보통이 넘는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하라고 권고하였다. 리치트라는 디자인회사를 그만 두고 파르마(Parma)음악원에 등록하였다. 파르마에서 8년간의 성악공부를 마친 그는 그만하면 됐다는 레슨 선생의 말을 듣지 않고 오페라와 가곡을 더 공부하기 위해 부세토의 카를로 베르곤치(Carlo Bergonzi)성악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리치트라는 1998년, 30세 때에 파르마에서 ‘가면무도회’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카를로 베르곤치 음악원의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공연이었다. 비록 학생들 공연이었지만 리치트라는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베로나에서 가면무도회, 아이다, 리골레토에 출연하는 급성장을 보였다. 관중들의 환호와 갈채에 힘입은 그는 라 스칼라에서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오디션을 받았다. 무티는 즉석에서 리치트라를 라 스칼라의 새로운 제작인 ‘운명의 힘’에서 알바로를 맡도록 채용했다. 리치트라는 1999년 3월, 라 스칼라에서 리카르도 무티 지휘아래 알바로를 맡아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부터 그는 가히 기하급수적인 형태로 스타돔에 올랐다. 같은해에 그는 베로나에서 토스카와 나비부인에 출연하여 찬사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다시 라 스칼라에서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아래 카바라도씨를 맡아 열연을 하였다. 이같은 활동으로 그는 베로나에서 ‘올해의 최우수 테너상’을 받았으며 밀라노는 그에게 명예시민증서를 수여하였다. 그는 베르디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는 ‘베르디의 해’(Anno Verdi)의 첫 공연인 라 스칼라의 일 트로바토레에 출연하여 '베르디의 해'를 오픈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공연에서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리치트라에게 3막의 카발레타(Cabaletta)인 ‘타오르는 불꽃’(Di quella pira)에서 하이 C 음을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주문하였다. 원래 악보에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리치트라는 지휘자의 주문에 따라 Di quella pira를 전통적인 방식대로 불렀다. 그러자 객석이 소란해지더니 관객들은 지휘자의 그러한 결정을 비난하는 야유를 보냈다. 6개월후, 리치트라는 베로나에서 다시 만리코(Manrico)를 맡았으며 이번에는 Di quella pira에서 하이 C 음을 장쾌하게 냈다. 관중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갈채를 보냈으며 리치트라는 열화와 같은 앙코르를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한번 하이 C 음으로 그 아리아를 불렀다.
2002년 5월 12일, 마침 리챠드 터커음악재단 26회 기념 갈라 콘서트에 출연하느라고 미국에 머물고 있던 리치트라에게 메트로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그날 저녁 토스카의 공연에 파바로티가 출연을 취소하는 바람에 대신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막이 오르기 불과 2시간 전이었다. 원래 리치트라는 2004년에 메트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토스카 공연에서 리치트라가 Recondita armonia (오묘한 조화)를 부르고 나자 관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기록적인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마지막에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을 부르자 더 기록적인 기립박수를 받았다. 리치트라는 1998년 데뷔이래 기록적인 단기간에 정상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는 리치트라에 대하여 ‘제2의 파바로티’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진정한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테너’라고 입을 모았다. 테너이면서도 바리톤과 같은 깊은 저음, 그러면서도 밝고 힘찬 고음, 유연한 레가토...이 모든 것들은 리치트라에게 가장 적합한 설명이었다. 최근 그는 ‘제2의 도밍고’라고 불리는 마르첼로 알바레즈(Marcelo Alvarez)와 두엣 앨범을 냈다. 그랑디 테노리(Grandi Tenori)로서 놀라운 멋을 보여주는 음반이다.
알바레즈와 함께 내놓은 듀엣 음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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